201. 오사카 추오구 니시신사이바시 홋교쿠세이(北極星 心斎橋本店)
시계도, 나침반도, 지도도 없던 수천 년간 북극성(北極星)은 모든 여행객들을 위한 길잡이의 역할을 해왔다.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방향을 잡아주는 기준점이 되었고, 시간을 알려줬으며, 옆 길로 새지 않게 다독이는 존재이기도 했다. 이젠 더 이상 하늘을 보며 북극성을 찾지 않는 시대에 임했음에도 우리는 아직도 '북극성'이라는 단어를 '길잡이'라는 의미로 쓰고 있다.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오사카의 노포는 일본 양식계에서 길잡이 같은 역할을 하겠다고 자처하고 나선, 오래된 일본 양식집이다. 거기에 워낙 비싼 가격으로 부유층과 상류층만 찾던 양식(洋食)이라는 장르를 서민들도 쉽게 찾을 수 있는 음식의 장르로 외연을 확대시킨 집이기도 하다.
1922년(다이쇼 11년) '기타하시 시게오(北橋茂男)'씨는 '판야노쇼쿠도(パンヤ の食堂)'라는 이름의 빵집과 양식을 겸하는 식당을 개업하였다. 본래 '빵과 그릴의 가게 칸자키야(パン と グリル の店・神崎屋)'에서 근무하다 빵 소매를 함께 하는 식당을 차린 것. 당시 메뉴 가격은 요리 하나당 10전. 목욕탕과 소바가게의 가케우동이 10 전이던 시대였고, 양식집에서 스테이크가 80전에서 1엔을 받던 시기였으니 소위 '10전 양식(十錢洋食)'으로 서민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 참고_'10전 양식(十錢洋食)'은 대중식당형 저가 양식을 의미한다. 이와 유사한 '1전 양식(一錢洋食)'은
밀가루와 야채를 넣고 철판에서 구운 오코노미야키로 가기 전 형태의 간식을 의미함. 단, 10전양식은 요즘은
잘 쓰이지 않는 말로 문헌상에서 찾을 수 있는 말이다. 일전양식은 음식의 형태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고
십전양식은 가격대나 판매방식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오래된 노포들은 그들이 살아온 시간만큼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이 집 또한 세상에 널리 알려진 사연으로 일본 양식계에서 '오므라이스'의 원조집이라 인정받는 집이 되었다. 1925년경 이 집엔 오다카(小高)상이라는 단골손님이 있었는데, 이 사람은 항상 위장병을 달고 있었다고 한다. 항상 이 집을 찾아와 위에 부담이 적은 오믈렛과 화이트 라이스(白飯, 흰쌀밥)를 주문했는데, 매일 같은 메뉴만 먹이는 것이 미안했던 초대 대표가 토마토케첩으로 밥을 볶아 계란에 말아 내었다고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일본식 '오므라이스(オムライス)'의 시작이었으며 일본어 '오므라이스'도 이때 생겼다.
일본의 오므라이스의 기원에 대해선 두 가지 설이 있는데, 하나는 도쿄 긴자의 렌카테이(煉瓦亭)의 기원설이고 또 하나는 바로 이 집 홋교쿠세이(北極星)의 기원설이다. 렌카테이는 직원들의 식사 메뉴로 오므라이스를 만들었는데 홋교쿠세이의 오므라이스와는 재료와 만드는 방법, 그리고 형태에서 차이가 있다. 렌카테이의 오므라이스는 달걀물에 밥과 고기, 채소를 섞어 간장으로 볶아 오믈렛처럼 둥글고 통통한 모양으로 만들어 낸다. 재료나 형태상 초기의 오믈렛에 가깝고 밥이 추가된 것이 특징이다. 이런 이유로 일본에서도 현대식 오므라이스의 원형을 만들어 내며 '일본식 양식(和洋食)'을 정착시킨 홋교쿠세이의 오므라이스에 원조라는 무게를 더 두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1936년, 판야노쇼쿠도(パンヤ の食堂)는 '홋교쿠세이(北極星)'로 상호를 바꿨다. 이후 현재까지 이 이름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 이름은 이시카와 현 카나자와 출신의 나가이 야나기타로(永井柳太郎, 전 문부대신(현재의 문부과학성) 나가이 미치오 씨의 아버지)가 직접 지었다고 한다. '북극 하늘에 빛나는 밝은 별과 같은, 삶의 이정표가 돼라'는 의미를 담았다 한다.
홋교쿠세이(北極星) 본점은 시내 중심가에 자리하고 있어 찾아가기도 어렵지 않다. 오사카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몰리는 도톤보리(道頓堀)와 난바(難波) 그리고 신사이바시의 아메리카무라와 지근거리. 조금은 오래된 쇼핑 아케이드 거리 중간의, 작은 중정이 아름다운 일본식 가옥을 매장으로 쓴다. 원래 1975년까지 인근 백화점의 접대용 찻집(茶寮, 사료오)으로 사용하던 장소를 구입하여 본점을 옮겼다. 찻집으로 쓰던 공간이다 보니 외부와 완전히 분리된, 고즈넉하고 적막한 분위기가 인상적이다.
영업 개시 시간 30분 전부터 웨이팅 줄은 그 길이를 늘이기 시작한다. 별도의 예약도 받지 않기 때문에 이 집은 줄을 서서 기다리는 노력을 쏟은 자만이 맛볼 수 있다. '사람의 노력은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얻게 된다'는 교훈을 주고 싶었던 것일까? 요즘 일본의 식당들도 예약 앱이나 인터넷을 통한 예약 시스템을 사용하는 곳이 많아져 외국인과 노인들의 접근성이 떨어지는 것이 현실인데, 이 집은 오히려 시대의 흐름을 역행한다. 모두가 옳다고 따르는 방법을 가볍게 외면하고 자신만의 방식을 고수한다.
노포(老鋪)의 고집(固執)이다.
정각 11시 30분에 문이 열리고 인원수를 파악한 후, 차례대로 배정받은 자리로 안내받아 간다. 일본식 미닫이 문을 통과해 그 속으로 발을 디디면 마치 다른 세계로 들어오는 듯한 느낌이다. 좁은 통로로 앞장선 직원을 따라 미로 같은 복도를 걷다 보면 일본식 마루와 정원이 보이는 방으로 안내받는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다다미 향이 방을 코끝을 자극한다. 아주 오래전 여름마다 어머니가 다락에서 꺼내 방바닥에 깔아주시던 왕골 돗자리 향이 떠 올랐다. 코로나 시기의 가림막이 아직도 설치되어 있는 모습을 보니(25년도에 방문하였다) 우리가 어떤 시대를 거쳐왔는지 다시 한번 기억을 가다듬는다.
아주 오래전 이 집을 처음 찾았을 때 '치킨 오므라이스(チキンオムライス)'를 먹었던 기억이 아직 남아 있어 이번엔 다른 음식을 택하고자 마음먹었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주문한 것은 '새우튀김 오므라이스(エビオムライス)'와 맥주. 일본에서 새우튀김은 실패할 확률이 거의 없는 아이템이니 모험보다는 안정을 택했다고 할까? 거기에 시원한 맥주 한 잔이면 '북극성'에서 내는 오므라이스와 새우튀김의 맛을 제대로 느끼기에 더할 나위 없었다.
데미그라스나 하이라이스 소스가 아닌 토마토케첩과 토마토 페이스트로 만든 소스가 접시의 2/3을 채운다. 그 위로 너무나 깔끔하게 만들어진 오므라이스가 탄탄하게 자리를 잡고 있고, 그 위엔 에비 프라이(エビフライ) 3개가 올랐다. 소스의 맛을 먼저 맛보았다. 순간 '흣'하는 실소가 튀어나왔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익숙한 소스 맛이다. 일본 오므라이스의 원조인 집이니 당연히 우리나라에도 이 형태와 조리법이 일제 강점기 시절 즈음 들어왔을 것이고, 아마 맛도 그를 따랐을게다. 그러니 친숙하지 않을 수 없는 맛이다. 토마토케첩 특유의 시큼하고 달콤한 맛에 토마토 페이스트의 깊이가 더해진, 그러면서도 무겁진 않다.
함께 나온 미소시루(味噌汁)도 그리 튀지 않는 맛이다. 토마토의 맛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싶은 느낌이 들 때 즈음, 미소시루를 들고 한 모금만 들이키면 입안이 깔끔해진다. 실로 간단한 조합이지만 굉장히 잘 짜인 틀이다. 이런 세심하고 치밀한 조합은 일본인들의 특성이 만들어 낸 조합이지 싶다. 일본 각지를 돌아다니며 오래된 노포의 음식을 수없이 경험하다 보니 새삼 새로울 것 없는 미소시루 한 그릇도 허투루 내지 않는 일본인들의 세심함이 비로소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홋교쿠세이(北極星)는 일본의 음식사에 꽤 중요한 영향을 미친 곳이다.
우선 서양 요리를 일본인들의 '밥 문화' 속으로 자연스럽게 흡수한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다. 오믈릿이라는 서양식 음식의 외형을 따르지만 그 속에 흰 밥과 계란 그리고 토마토케첩을 결합해 '밥요리'로 다시 만들어 냈다. '밥'에 진심인 일본인들이기에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두 번째로는 서양에서 들어온 고급(값비싼) 음식을 서민의 음식으로 끌어내린 음식을 만든 집이기도 하다. 1920년대 당시 '십전양식(十錢洋食)'의 대표적 음식으로 거론될 만큼 대중적인 가격대의 양식을 냈고, 이는 일본식 패밀리 레스토랑이 생기게 되는 단초를 마련해 줬다.(참고로 일본 최초의 패밀리 레스토랑은 도쿄에 있다)
마지막으로는 오므라이스를 일본 국민 양식의 대표 메뉴로 성장시킨 가게이다. 오래전부터 일본 전국에 약 20여 개의 지점을 두고 운영할 정도로 규모가 컸었고 많은 사람들이 찾았다. 외국의 문물을 수입해 자신들에게 맞게 변형하여 자신들만의 것으로 만들어 내는 일본인들의 특성이 제대로 반영된 음식이 되었다. 외형상 서양의 음식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일본에서 만들어, 돈가스와 함께 '와요쇼쿠(和洋食)'를 대표하는 음식이 되었다. 초대 대표의 고향 마을에는 오므라이스를 만든 업적을 기념하여 초대 대표의 동상까지 세워졌다고 한다.
생각보다는 오사카를 찾는 한국 관광객들이 이 집에 대해서 그리 잘 알지 못하는 듯하다. 오사카라는 대도시에는 오므라이스를 제외하고도 너무나 많은 먹거리와 볼거리가 때문인 듯하다. 하지만 일본과 한국의 음식계 양쪽에서 모두 사랑받는 '오므라이스'라는 음식의 기원이 되는 집으로서 이 집은 충분히 찾아볼 가치가 있다. 게다가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관광지 바로 인근에 있으니 얼마나 찾기 편한가?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한국인의 입장이다. 일본인들에겐 오히려 더 자랑거리가 될 수 있다), 워낙 오래전부터 오므라이스 원조집으로 거대한 부(富)를 쌓아 홋교쿠세이의 초대 대표는 태평양 전쟁 시 비행기 등의 군수물자 구입해 헌납한 적이 있다(웹사이트에 이에 대한 자료가 남아 있다. 헌납한 비행기의 이름도 '북극성호'라 명명했다). 그 부분은 일제 침략의 피해자인 우리의 입장에서는 마음이 편치 않다. 한편으론 한국인으로서 같은 짓을 했던 인간들과 앞장서서 그 행위를 종용했던 신문이나 지식인들에 대한 처벌, 그리고 그 당시 얻은 경제적 이득에 대한 '적극적인 환수'도 못하는 우리의 현실이 더욱더 서글프게 느껴진다.
그런 것들만 논외로 하자면, 이 집은 반드시 들러야 할 일본의 노포 중 하나다.
[추가 팁]
1. 매장명 : 홋교쿠세이 신사이바시 본점(北極星 心斎橋本店)
2. 주소 : 2 Chome-7-27 Nishishinsaibashi, Chuo Ward, Osaka
3. 영업시간 : 월~일 11:30~21:30
4. 주차장 : 별도의 주차장은 없음. 인근 유료 주차장 이용.
5. 참고
- 예산 : 1인당 1,000~2,000엔(신용카드 가능)
6. 이용 시 팁
- 우리가 알고 있는 오므라이스의 원조집이다.
- 가장 유명한 시그니쳐 메뉴는 치킨 오므라이스다. 그 외에 부가적인 메뉴도 많이 있다.
- 난바, 도톤보리와 가깝고 아메리카 무라로 가는 길에 있어 접근성이 좋다.
- 오픈시간에 맞춰 식사를 원한다면 11시경부터 웨이팅 하는 것을 권장.
평일에는 식사시간 외에는 조금 한가한 편이다.
https://maps.app.goo.gl/UuQhkBSbY2VrWsht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