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 오사카 추오구 미나미센바 우사미테이 마츠바야(うさみ亭 マツバヤ)
우리에게 단군신화와 각 지방의 전설과 같은 이야기가 있듯이, 일본에도 다양한 신화와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그중에서 여전히 추앙받는 신들이 몇몇 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널리 알려진 신이 바로 '이나리신(稲荷神)'이다. 곡식과 먹을거리의 신이기에 가장 중요한 신이기도 했다. 아주 오래전, 지금과 같이 과학과 기술이 발달하지 못했던 시기, 먹을거리(5가지의 곡물)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자원이자 국가의 핵심 요소이기도 했다. 당연히 그 먹거리를 상징하는 신은 사람들의 숭배를 받았다.
그 이나리 신을 모신 신사(神社)가 '이나리 신사'다. 일본 전국에 3만 개 이상의 이나리신을 모시는 신사가 현존하고 있고 그 신사들을 이끄는 곳이 교토의, '붉은색 도리이'로 유명한 '후시미 이나리신사(伏見稲荷大社)'다. 이나리 신의 사자(使者) 또는 심부름꾼(권족, 眷族)이 바로 '키츠네(きつね)'라 부르는 여우다. 일본인들은 전통적으로 여우가 기름진 음식, 특히 유부를 좋아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이나리 신사에는 여우를 위한 재물로 유부를 바치기도 했다. 신의 사자에게 바치는 재물이니 신께 바치는 재물이기도 했다. 이런 풍습을 통해 유부는 '이나리'라 불리기도 하고 '키츠네'라 불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우동보다 스시에 이런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다. 이나리 즈시(稲荷鮨)는 달달하게 졸인 유부 주머니에 초밥을 넣은 음식을 뜻한다. 이나리는 신앙의 대상으로 남았고 음식에서는 '유부를 쓴 음식'의 상징이 되었다. 뒤를 이어 유부를 얹은 우동도 키츠네 우동이라 불리기 시작했다. '신들의 땅'이라 불리는 일본에 사는 사람들에게 세상 모든 것은 신이 깃든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즐기는 음식에도 신의 이름을 붙였다. 팔백만의 신들이 사는 땅에 사는 사람들에겐 이런 일들이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우사미테이 마츠바야(うさみ亭 マツバヤ)'의 창업자였던 '우사미 요타로(宇佐美要太郎)'는 원래 스시집에서 수행을 이어오던 사람이었다. 스시집에서 음식을 배운 경험을 바탕으로 '본포 마츠바야(本舗松葉家)'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가게를 개업한 것이 1893년(메이지 26년)이었다. 초대 대표는 스시집 시절 익숙했던 이나리즈시용 유부(달게 졸인 유부)를 '스우동(素うどん, 건더기 없이 맨 국물에 말아 낸 우동)'의 사이드로 냈다고 한다. 한데 손님들이 이 유부를 우동 위에 얹어서 먹는 모습에서 착안하여 메뉴화 시킨 것이 '키츠네 우동(きつねうどん)'의 기원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에서 두부가 전래되어 일본에서 처음 유부를 먹기 시작한 것이 '무로마치 시대(1338-1573)'였고 본격적으로 서민들의 식탁에 유부가 오르기 시작한 것이 에도시대(江戸時代)였다고 한다. 이 유부가 우동에 얹어지기까지 또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이나리 신을 모시는 신사들의 총본산이 교토(京都)에 있으니, 바로 옆 오사카(大阪)에서 '키츠네 우동'이 탄생한 것은 어쩌면 '신(神)'이 정한 숙명인지도 모르겠다.
오사카와 인근 간사이 지역의 우동(関西風うどん)은 국물이 맑고 황금빛을 띠며 부드러운 감칠맛을 가지는 것이 특징이다. 가다랑어포와 다시마를 사용하여 국물의 감칠맛을 극도로 끌어올린 것이 특징이기도 하다. 이런 간사이 우동의 전통을 이은 우사미테이 마츠바야(うさみ亭 マツバヤ)에서는 모든 것을 자신들의 손으로 직접 만든다. 홋카이도 리시리 섬의 다시마와 가쓰오부시를 사용해 육수를 끓이고 소금과 밀가루 그리고 물만 사용하여 직접 제면까지 한다. 유부는 유부 자체의 기름기를 제거한 후, 3일 동안 졸여 단맛을 베게 한다. 키츠네 우동을 만드는 모든 과정에 정성을 들인다.
심지어 '우사미테이 마츠바야'에서 가장 저렴한 메뉴 중 하나인(650엔이었다) '키츠네 우동'을 만드는데 심혈을 기울인다. 마치 '음식을 만드는 정성이 중요하지 우리는 돈에 연연하지 않아!'라고 외치는 듯하다. 우리나라의 식당에서는 조금씩 보기 힘들어진, '장인정신(匠人精神)'이다. 그들의 말 한마디, 손님에게 음식을 내는 동작 하나하나에 기품이 깃들어 있다. 3대 사장님이 카운터에 가끔씩 모습을 보일 때면 '존경'이라는 마음을 담아 쳐다보지 않을 수 없었다. 홀을 맡은 사모님의 부드럽지만 여유 있는 서빙에도 무언가 숭고한 가치가 숨어있는 듯 보인다.
모든 게 기본에 충실한 그들의 태도 때문이다. 매장을 대표하는 기본 메뉴인 키츠네 우동 하나도 허투루 만들지 않는다. 경건함마저 느껴진다. 그래서 에비스(恵比寿, エビス) 맥주를 주문했다. '에비스(恵比寿)'는 일본의 칠복신 중 하나로 '복(福), 상업의 번창, 풍어, 길운, 웃음과 화평'을 상징하는 신이다. 겨우 두 번째 방문한 외국인이자 뜨내기 손님이지만 사장님 내외분의 그 경건함에 경의(敬意)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경의를 표하는 것은 오롯이 손님의 몫이다. '우사미테이 마츠바야'에 복과 번창과 길운과 웃음이 항상 끊이지 않길 빌었다. 구석자리에 홀로 앉아 조용히 잔을 들어 올렸다. 게다가 프리미엄 맥주로 유명한 에비스 맥주였으니 조금 더 고급진 경배였으리라.
객(客)으로 음식을 만들고 내는 분들에게 경의를 표현하는 방법은 그리 많지 않다. 에비스 맥주로 그들의 복(福)과 성공(成功)을 빌었으니, 다음은 맛있게 음식을 먹는 것이었다. 그것도 바닥이 모두 보이도록 맛있게. 앞서 이야기했듯 간사이의 우동은 간토의 그것에 비해 고급지고 부드러운 감칠맛이 더욱 도드라지는 국물을 가지고 있기에 국물까지 모두 비우는 것이 절대 부담스럽지 않다. 탱탱한 면을 한 가닥도 남기지 않고 모두 흡입한 후, 속 깊은 우동 그릇을 경배하듯 두 손으로 들고 국물을 들이켠다. '우마미(うまみ, 감칠맛)' 가득한 '키츠네(きつね, 유부)'는 치아 사이에서 기분 좋은 단맛을 토해낸다. 3일 동안 졸여 만든 자연스러운 단맛이 기분마저 상쾌하게 만든다. 단순한 음식이지만 결코 단순하지 않은 맛을 품고 있다.
공들여 만든 면(麵)과 다시, 그리고 유부의 3가지 요소가 한 그릇에 담겼지만 그 조화가 너무나 훌륭하다. 어느 것 하나 잘난 체하며 혼자 튀는 것이 없다. 우동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가 자신만의 영역을 굳건히 하면서도 서로 어울리고 보조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우동 한 그릇에 감히, '절제'와 '균형'이라는 단어를 쓸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다. 어쩌면 이런 균형감이 오사카 우동의 특징이라 해도 될 듯하다. 우사미테이 마츠바야가 오사카 우동씬을 대표하는 우동집이다 보니 충분히 가능한 가정일 게다.
그릇의 밑바닥에 남은 것이라곤 매운맛을 더하기 위해 흩뿌렸던 시치미 가루 조금. 얇게 저민 파 조각 하나도 남기지 않았다. 객(客)으로서, 그것도 이역만리의 외국에서 이 집을 찾아온 손님으로서 보일 수 있는 최고의 예의를 갖췄다. 그들이 초빼이의 진심을 아는지 여부는 상관 없었지만, 국물까지 모두 들이켠 모습을 보신 여사장님의 입가에 떠 오르는 잔잔한 미소로 초빼이의 뜻이 제대로 전달되었음을 확신했다.
옆자리에서 한국말이 들려왔다. 딸 둘과 함께 찾은 중년의 부부가 한참 메뉴를 고르고 있었다. "한국에서 오셨나 봐요?"라는 초빼이의 말에 모두 고개를 돌려 보더니 우선 맥주부터 주문한다. 비록 식당이지만 맥주 한 잔 먼저 주문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거리감인지 초빼이에게 말을 제대로 붙이지 못하고 메뉴판만 들여다 보기에 "이 집은 키츠네 우동의 원조집이에요. 꼭 드셔보세요"라고 부질없는 훈수를 뒀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터로 갔다. 지갑에서 1천 엔짜리 지폐 2장을 꺼내 계산을 마쳤다. 자신의 집을 찾아줘서 고맙다는 말에 "혼또니 오이시이데스(本当に美味しいです)"라 답했다.
열린 문사이로 바람에 흐느적거리는 렌이 눈에 들어왔다. 시보리(물수건)에 깨끗하게 손을 닦고 나왔지만, 초빼이도 옛 일본인처럼 '노렌(暖簾)에 손을 닦'고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날 일본에서는 술집이나 이자카야에서 손님이 나갈 때 음식물이 묻어 더러워진 손을 노렌으로 닦고 나가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노렌이 더러우면 더러울수록 장사 잘 되는 집"을 의미한다는 속설도 있었다. 뭐 굳이 노렌에 때를 묻히지 않아도 이미 이 집은 엄청나게 유명하고 사람들이 많이 찾는 집이었으니, 펄럭이는 노렌의 끝을 한번 만져보고 나오는 것으로 가늠했다.
참고로 이 집의 2대 대표였던 '우사미 다쓰이치'씨가 개발한 '오지야우동(おじやうどん, 죽우동)'도 추천하는 메뉴 중 하나다. 요즘은 키츠네 우동의 판매 순위가 2위로 밀리고 '오지야우동'이 주문량 1위를 기록한다고 한다. 오지야 우동은 전쟁 중 태어난 음식인데, 철냄비에 우동과 밥을 함께 넣고 끓인 메뉴다. 여기에 고명으로 잘게 썬 유부, 아나고, 가마보코, 닭고기, 표고버섯, 달걀 등을 올린다. 약간은 샤부샤부를 먹고 난 후에 만들어 먹는 죽과 같은 느낌이랄까? 2차 대전 중 식량 배급제를 실시하던 시기에 내던 음식을 손님들의 요청으로 다시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우리에게는 '침략자들의 한 끼 식사'이지만, 일본인들에게는 '전시(戰時) 고난의 시기를 견뎌내는 힘을 주던' 그런 메뉴인 듯하다. 우동면의 탄수화물과 밥의 탄수화물이 만나 한 끼 가득한 포만감을 선사하는 탄수화물 폭탄 같다고 할까?
*P.S 1. 뜬금없이 나고야 편을 마무리하고 오사카로 넘어왔습니다. 당시 일정은 나고야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일정이었지만, 오사카를 가장 나중에 소개하게 되었네요. 오사카의 노포 이야기로 한동안 채워나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추가 팁]
1. 매장명 : 우사미테이 마츠바야(うさみ亭 マツバヤ)
2. 주소 : 3 Chome-8-1 Minamisenba, Chuo Ward, Osaka
3. 영업시간 : 월~토 11:00~18:00 / 일요일 정기휴무
4. 주차장 : 별도의 주차장은 없음. 인근 유료 주차장 사용.
5. 참고
- 예산 : 1인당 1,000~2,000엔 (현금만 가능)
6. 이용 시 팁
- 우동맛이 정말 인상적이다. 오사카의 우동을 대표할만하다.
- 키츠네 우동도 맛있지만, 오지야 우동이 더 많이 팔린다.
- 인근에 백화점과 명품점이 많아 쇼핑 중 들려 허기를 면할 수 있다.
- 단, 워낙 유명한 곳이라 가급적 직장인들의 식사시간을 피할 것. 조금 여유롭게 식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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