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 나고야시 나카무라구 에스카지하상가 요시다키시멘
농부(農夫)들의 삶은 한국이나 일본 모두 그리 다르지 않은 듯하다.
본격적인 농사를 짓는 봄과 여름 가을을 지나 겨울이 되면 농부들은 다음 해의 농사를 준비하고, 몸과 마음에 휴식의 시간을 가진다. 농사일은, 도시 직장인들의 그것처럼 주 5일(때론 5.5일, 믿기지 않겠지만 얼마 전까지 우리나라도 토요일은 오전 근무(반공일)를 하던 때가 있었다)로 근무일과 휴일을 정확하게 나눌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주말과 휴일을 가리지 않는 일이기도 하고 기온이 오르면 오르는 대로,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수확 전까진 항상 마음 졸이며 쉽게 잠도 들지 못하는 극한의 직업이기도 하다.
자연과 기온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일이다 보니 한해의 수확도 내 마음과 다를 때가 태반이다. 게다가 수확물들의 가격은 다른 이들의 수확량에도 영향을 받다 보니 풍년이 들었다고 무작정 좋은 것도 아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의 일이라는 게 예측 가능한 결과를 가지는 것이 일반적인데, 농업(또는 농부)이라는 직업은 수천 년을 이어온 인간의 가장 오래된 직업 중 하나이지만 최첨단 디지털 시대인 현재도 여전히 그 결과를 예측하는 게 쉽지 않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하다. 그래서 농부들은 농한기라 일컫는 겨울에도 쉬지 못하는 일이 많았다. 다음 1년을 살기 위해 혹시나 부족할 수 있는 비용을 메우기 위해 겨울에도 돈을 벌어야 하는 경우가 숱했다.
나고야메시(名古屋めし)의 하나인 '키시멘(きしめん)'을 만드는 '요시다(よしだ)'씨도 처음엔 다음 한 해를 살아갈 비용을 걱정하던 그런 평범한 농부였다. 가을까지 농사를 짓다 수확이 끝난 가을부터 초봄까지 자신이 생산한 밀로 면을 만들어 파는 일을 겨울철 부업(副業)을 이어 나갔던, 부지런한 농부였다. 면을 만들던 기술이 굉장히 뛰어났던지 이내 부업은 전업(專業)이 되었다. 1890년(메이지 23년) '요시다 면업(吉田麺業)'은 그렇게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요시다 키시멘은 처음엔 나고야시 나카가와구 아라코 지역에서 면(麵)을 만들어 팔던 제면공장이었다. 일본과 미국의 전쟁이 막바지에 달했던 1945년 미군의 나고야 대공습에 요시다 면업의 공장은 모두 파괴되었다. 일본군에 우동면을 납품하던 공장이었으니 당연했다고 할까? 4대째 사장이었던 요시다 타카노리(吉田孝則, 현 사장, 1931~)는 전쟁이 끝나고 7~8년 후 같은 자리에 공장을 다시 짓고 키시멘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생면(生麵)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고, 더 많은 대중에게 면을 공급하고자 건면(乾麵)도 생산했다.
1965년(쇼와 40년)부터는 자신들이 직접 만든 면과 육수로 키시멘 식당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나고야의 서구에 있던 다이아몬드 시티에 1966년경 처음 문을 열었고, 에스카점(나고야 역 앞 지하상가)은 1971년 개업했다. '타지(他地) 사람들에게 나고야의 명물 키시멘을 먹이고 싶다'라는 목적으로 나고야 역 앞에 가게를 냈다고 한다. 나고야 역 앞의 에스카 지하상가는 나고야를 대표하는 나고야 메시의 전문점들을 모아 나고야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든 곳이라 그들의 뜻에 부합했다. 현재는 나고야와 인근 아이치현에 다수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키시멘(きしめん)은 나고야메시(名古屋めし)로 꼽는 여러 음식들과 달리 오래전부터 나고야 사람들이 찾던 음식이다. 에도시대부터 나고야 사람들이 먹어왔던, 나고야의 일상과 지역의 특성을 동시에 보여주는 음식이기도 하다. 지역의 고유 음식이다 보니 그 기원은 사실 명확하지 않다. 면의 형태는 일본 여러 지역의 '평평한 면(平打ち麺)'의 궤를 함께하지만, '키시멘(きしめん)'이라는 이름은 에도시대부터 언급될 정도로 오래전부터 나고야의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1728년 발간된 하이쿠집(句集) '니주우부쿠로(二重袋)'에서 '키시멘'이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등장했다. 1800년 무렵에는 나고야 도시의 서민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키시멘(きしめん) 명칭의 유래에 관한 설은 3가지 정도가 있다.
꿩으로 육수를 내고 고명을 얹었던 꿩국수를 뜻하는 '키지멘(雉麺, きじめん)'에서 이름을 땄다는 설(우리나라의 꿩 칼국수와 비슷한)과 기주 지역에서 전해진 면이라는 의미의 '기쥬멘(紀州麺, 일본의 기이, 기쥬 지방), 옛 면의 일종인 바둑돌(碁石, 棊子) 형태의 면이라는 뜻인 기시멘(棊子麺)에서 따온 것이라는 설이다. 아직까지 그 유래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아주 오래전부터 나고야 지역의 서민들이 먹던 면요리'를 칭하는 고유 명사라는 것.
초빼이가 나고야의 오래된 키시멘 노포 중에서 방문할 곳을 고르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키시멘을 내는 집으로 가장 정통성을 인정받는 노포는 '아츠타 신궁(熱田神宮)'내에 자리한 '미야키시멘 신궁점(宮きしめん 神宮店, 1923)'이었고, 제면의 역사부터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진 노포는 '요시다 키시멘(きしめんよしだ エスカ店, 1890)'이었다. 거기에 나고야의 키시멘을 일본 전역에 알린 곳은 '플랫폼의 키시멘'이라 불리는 '키시멘 스미요시(きしめん住よし, 1961)'가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초빼이의 발길이 향한 곳은 오랫동안 나고야 서민을 위해 면을 만들어 온 '제면 기술의 상징' 요시다 키시멘이었다.
나고야역을 나와 광장의 끝에 있는 지하상가로 들어가면 '요시다 키시멘 에스카점'이 있다. 노포답지 않은 세련된 매장에 잠깐 긴가민가하기도 했다. 역 앞의 매장이라 그런지 손님의 응대가 일본답지 않게 굉장히 빨랐다. 나고야에서 처음이나 마지막 끼니를 위해 찾은 사람들이 많았던지 테이블마다 캐리어와 여행용 가방이 놓인 것이 눈에 띄었다. 처음 관계를 맺는 일과 마지막으로 마무리하는 일은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중요한 일이다. 이 식당은 그 어려운 일을 나고야를 찾는 사람들과 매일매일 이뤄내고 있었다. 나고야의 음식으로 나고야를 찾는 외지의 사람들과 그런 관계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키시멘 전문점을 찾았으니 당연히 키시멘 세트를 주문했다. 키시멘 한 그릇과 흰쌀밥, 그리고 새우와 단호박 튀김으로 이뤄진 단출하자면 단출한 구성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키시멘을 표현한다면 "키시멘=일본식 칼국수"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키시멘의 면은 순수한 물과 밀가루, 그리고 소금으로만 만들어진다. 일본으로 치자면 우동을 만드는 재료와 차이가 없고, 우리나라로 치자면 국수나 칼국수를 만드는 재료와 다르지 않다.
일본의 식품기준에서는 건면에만 규격을 정했다. 일본 소비자청 자료에 의하면 건면류에서 '폭 4.5mm 이상, 두께 2.0mm 미만의 띠 모양'으로 성형한 면은 '히라멘(ひらめん), 키시멘(きしめん), 히모카와(ひもかわ, 히모카와 우동의 줄임말)'로 표시할 수 있다. 폭이 넓고 얇은 평면이라는 키시멘의 형태를 정의하기 적합하다. 생면의 경우 '생면류 공정경쟁규약'에서는 우동류에 포함시켜 '밀가루에 물을 넣어 반죽한 뒤 제면한 것'으로 비교적 넓게 정의한다. 외형과 제조방식 상 우리나라의 칼국수와 만드는 방법이 차이가 없다. 요시다 키시멘은 이런 면에 고등어 육수를 베이스로 하여 간장으로 맛을 낸 감칠맛 가득한 육수를 쓴다.
우동보다 얇은 면을 사용하기 때문에 조리시간은 우동보다 더 짧다. 아이치현산 '키누아카리(きぬあかり)'와 미에현 산 '아야히카리(あやひかり)', 홋카이도산 '키누호나미(きたほなみ)' 밀가루(소맥분)를 블랜딩 하여 사용하고 일본산 소금, 그리고 부드러운 느낌의 연수(軟水)만으로 면을 만들어 낸다. 물론 계절과 날씨에 따라 밀가루 배합과 염분의 농도에 차이를 둔다. 면을 반죽하고 난 후에는 숙성(熟成) 과정을 통해 수타면에서 느낄 수 있는 목 넘김과 쫀득한 식감을 만들어 낸다. 가장 앞에 내세우는 특징은 면을 만드는 공정에서 보존료 등의 인위적인 첨가물을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
일본인들에게 면음식은 '면의 식감'을 쫓는 것이 불문율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면음식을 포함한 육수(국물)가 들어간 모든 음식은 국물을 탐하기 위해 먹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탐스러운 빛깔의 국물이 가득 담긴 면기(麵器)와 같은 대접이 앞에 놓이면 본능적으로 그릇을 들어 국물을 마시게 된다. 이 첫 대면이 음식의 모든 것을 결정할 정도로 중요하다. 여기서 강한 임팩트를 주는데 실패하면 우리의 뇌리엔 '그냥, 그저 그런' 음식으로 각인되기 쉽다. 요시다의 키시멘을 앞에 두고 '한국식 음식 판별법'으로 평가(?)에 들어갔다.
평온히 가라앉은 마음에 잔잔한 반향이 일기 시작했다. 감칠맛이 과하지도, 그러나 부족하지도 않을 정도로 입술을 톡톡 건드렸고, 일본식 간장의 조금은 달고 간간한 맛이 혀를 자극하기 시작했다. 더운 날씨였지만 부러 뜨거운 국물의 키시멘을 선택한 것은 해장이 필요해서였다. 전날 교토(京都)에서 들이킨 술로 초빼이의 속은 꽤 심한 상처를 입고 곳곳이 파이거나 깊은 상처에 시달리고 있었다. 요시다의 키시멘 국물이 심하게 패인 초빼이의 속을 부드럽게 채우며 감싸 줬다. '이 국물의 마지막 수저를 드는 순간, 나는 완벽하게 다시 살아나겠구나'하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이런 예감은 틀린 적 없다.
시원한 맥주 한 모금을 들이켰다. 이열치열(以熱治熱), 이독제독(以毒制毒)이라 했다. 뜨거운 국물로 몸속의 열을 식히고, 한 잔의 술로 몸 안의 술독을 제압했다. 면의 식감이 입안에서 고스란히 느껴졌다. 키시멘의 겉을 둘러싸고 속으로 스며든 그 뭉근한 감칠맛까지 면에서 찾아내고 싶었다. 숨겨진 고대의 유적을 찾아 갖가지 퍼즐을 풀고 마침내 신비로운 보물을 발견해 내는 '존스 박사'의 마음도 이랬을게다. 딱 우리 칼국수에서 느낄 수 있는 그 쫄깃함과 탄력, 그리고 목 넘김이 새삼스레 느껴졌다. 국물을 내는 재료만 달랐지, 면은 거의 유사했다. 그래서인지 '나고야(名古屋)'라는 도시가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음식이란 게 이렇다.
음식 하나에 불쾌한 기분을 느낄 수도 있지만, 음식 하나에 금새 친근감과 애정도 가질 수 있다. 나고야 사람들이 그들의 도시를 대표하는 음식에 키시멘을 굳이 집어넣은 이유를 비로소 느끼게 되었다. 키시멘을 한번 먹게 되면 나고야를 기억에서 지울 수 없을 것 같다. 부드럽고 깊은 맛의 국물과 탄력 있게 목을 넘어가는 그 생생한 느낌은 처음으로 방문하는 나고야라는 도시에 근원을 알 수 없는 친근감까지 선사해 줬다.
오롯이 '요시다 키시멘'이 만들어 준 감정이었다.
[추가 팁]
1. 매장명 : 요시다키시멘 에스카(吉田麺業 きしめんよしだ エスカ店)
2. 주소 : Aichi, Nagoya, Nakamura Ward, Tsubakicho, 6-9 エスカ地下街
3. 영업시간 : 월~일 11:00~15:00, 17:00~20:00
4. 주차장 : 별도의 주차장은 없음. 인근 유료 주차장 사용.
5. 참고
- 예산 : 1인당 1,000~2,000엔 (신용카드 가능)
6. 이용 시 팁
- 굉장히 친절한 직원이 인상 깊다.
- 키시멘 건면 등 요시다 키시멘의 제품을 구입하는 것도 가능하다.
- 키시멘(きしめん), 오카메(おかめ), 고모쿠멘(五目) 등이 인기 메뉴.
https://maps.app.goo.gl/fJqt23X9QxiFDQrA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