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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flower May 21. 2024

1화 대리만족

( Image by Bob Dmyt from Pixabay )


“어린이날은 어린이를 위한 날이고 어린이인 내가 사고 싶은 장난감을 사야지! 선물을 왜 엄마가 마음대로 정해요? 다른 아이들은 어린이날 선물을 사서 행복한데 나만 행복하지 않아요. 엄마, 아빠는 내 마음을 몰라요."  


남편과 장난감가게에 갔던 아이가 나를 보더니 큰 소리로 울며 말했다.  


갑작스러운 아이의 행동에 남편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나 또한 주변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져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계속 큰 소리로 우는 아이를 달래며 차 쪽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 다른 아이들은 장난감을 사는데 너는 못 사서 속상할 수 있어. 그렇지만 어린이날 선물은 이미 닌텐도 게임칩을 골랐잖아~"

라는 나의 말에 아이는 그건 엄마가 장난감은 안된다고 해서 차선책으로 고른 거라고 훌쩍이며 말했다.


아이는 헬로카봇 새 시즌 14에 나오는 라이프 X가 갖고 싶다고 했다.

집에는 비슷한 장난감이 정리함 박스에 가득했고 아이에게 잊힌 지 오래다.

그런데 비슷한 장난감을 사달라고 하니 어린이날이라고 해도 또 사줄 수는 없었다.


속사정을 모르는 남들이 보면

‘장난감 하나 사주는 게 뭐라고 어린이날을 앞두고 애를 저리 울릴까? 부모가 매정하네.' 혀를 찼을지도 모른다.


차에 올라타자, 아이는 새로운 장난감은 색상도 다르고 장비가 업그레이드돼서 집에 있는 장난감과는 다른 종류라며 나의 앞선 말들은 다 잊은 채 차이점을 늘어놓았다.


이럴 때는 매번 새로운 장난감이 나오는 그 TV 프로그램이 원망스럽기도 하다.

나는 더 이상 아이의 말에 공감이 안 됐다.  무엇보다 새로운 장난감이나 집에 있는 장난감이나 내 눈에는 다 똑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이에게 말했다.

"물건은 소중히 다뤄야 해. 비슷한 게 있으면 또 사면 안되고 너희에게 꼭 필요한 것들만 사는 거야~"  

아이는 '나도 알고 있어요'라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어릴 때 나는 가정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다. 어쩌다 갖고 싶은 게 생겨서 부모님께 말씀드리면 때가 되면 사주겠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들은 어린 내게 희망고문이었다. 부모님이 말씀하시는 '그때'는 시간이 한 참 지난 뒤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원하는 것을 말하는 대신 포기하는 것을 먼저 배웠다.


자녀에게 원하는 것을 사주지 못했던 부모님의 마음도 아프셨을 것이다.

다만, 그 마음을 헤아리기엔 나는 너무 어렸다.


그래서일까?

가끔은 모르는 척 원하는 것을 사달라고 떼쓰는 아이들의 응석을 받아주기도 했다.


일종의 대리만족이었다.

아이들의 응석을 받아주면서 속상했던 나의 어린 시절의 기억들을 보상받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남편은 나의 '대리만족'으로 아이들이 '떼쓰면 다 된다.'라는 인식을 가질까 봐 걱정했다.

나는 남편의 마음을 이해는 하지만 걱정하진 않는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원한다고 해서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매주 금요일 참새가 방앗간을 드나들 듯 문구점에 출석도장을 찍는다.

지난주, 문구점에서 장난감을 구경하고 나온 첫째 아이가 나에게 말했다.


" 엄마~ 봐요.! 나 장난감 구경만 하고 사달라고 하지 않았어요.! 사실은 정말 사고 싶었던 장난감이 있었는데 참았어요. 잘했죠?"

아이는 '자신을 어서 칭찬하라는 눈빛'을 보내며 말했다.


아이의 말 뒤에, '엄마가 사주지 않을 것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는 마음도 함께 느껴졌다,


어린이날은 어른이 아닌 어린이들의 날이라는 말,  닌텐도 게임칩이 아닌 변신 자동차 로봇을 선물로 갖고 싶었다는 아이의 솔직한 생각과 말들이 내 어린 시절의 속상함을 대변해 주었다.


어린 나는 말하기도 전에 포기하는 법을 배웠지만, 내 아이들은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말하는 용기를 내는 것이 대견하기도 하고 조금은 부러웠다.


안타깝게도 어른이 된 후에도 나는 내 생각과 마음을 말하는 용기를 내지 못했다.

여전히 타인의 말을 의식하고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내 마음도 들려다 보지 못했다.


20-30대는 방황의 시간을 보냈고 마음만 앞섰던 육아는 나의 자존감을 바닥을 치고도 더 깊은 바닥까지 내려가는 경험을 하게 했다.


그런 힘든 시기와 함께 우울감이 있을 때 나의 삶의 원동력은 아이들과의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 시간들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었다. 그래서 글을 쓰고 브런치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 글들이 모이면 출간작가로 도전하는 꿈도 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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