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에게서 배우다
마음이 많이 혼란스럽던 어느 날 나에게 깨우침을 주기 위해 나타난 책 강신주의 장자수업
이제 나이가 어느 정도 들어서 전보다는 조금이라도 성숙해졌다고 믿어왔던 나는 또
한번 장자의 가르침 앞에 작아지는 내 자신을 본다.
내 안에 나를 잘 보듬으면서 인생이라는 길을 잘 가고 있다고 믿었는데 허물어지는 마음 깊은 곳에 색채를 알 수 없는 화려한 구슬들이 반짝이며 유혹하기도 하고 마음속 불안과 깊은 번뇌에 휩싸이기도 했다.
장자가 말하는 오상아의 경지에 이를 수만
있다면 내 안에 가득한 깊은 번뇌와 고뇌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 텐데 그것은 돌아가신 성철스님 같은 고귀한 분이라면 가능할 것 같기도 하다. 오상아란 나라는 존재를 잊었다는
의미로 자아의식, 욕망, 선악의 기준 등 모든 인간적인 틀을 놓아버린 경지이다.
내가 장자의 가르침 그대로 사는 것이 쉽지 않겠지만 그가 제시하는 방향을 알고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나에게 위로와 깊은 깨우침을 준다.
내 안의 진정한 자유를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 자신을 외부기준에 맞추려고 부단히 애쓰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장소에 나를 가둬두는 것 , 그런 것들에서 벗어나 대붕처럼 마음껏 노니는 그런 삶을 나도 살아보고 싶다. 아직은 내가 오래된 거목 같은 무게감을 갖지 못하고 자아를 내려놓는 것조차 쉽지 않지만 장자가 바라보는 곳을 나도 바라볼 수 있다면 나도 진정한 자유에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무심이나 무위 ~~ 이런 단어가 주는 진정한 울림이 있다.
영화 승부에서 조훈현 9단이 제자 이창호와 함께 무심이라는 글자를 적는 장면이 나온다.
제자에게 바둑에서 지고 한없이 무너졌던 그는
무심,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비상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인간이기에 승부에 집착할 수도 있고
최상의 위치에서 내려올 때 씁쓸한 감정에 압도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장자가 말하는 무심의 경지에 오른 자는 승부에 대한 집착과 욕심을 버리고
자신의 바둑판과의 싸움에 몰입할 수 있는 것이다.
나도 지금 앞을 알수없는 무언가에 사로잡혀 불안해하고 두려워하기보다는 초연한
자세로 모든 것을 받아들일 것이다.
-술에 취한 자는 수레에서 떨어질 때 설령 부상을 입을지라도 죽는 경우는 없다 -
장자가 한 말이 생각난다.
아프지 않으려고 발버둥 칠수록 고통은 더 생생히 다가오기에 ~내 앞에 있는 어떤 두려움에도
나는 물러서지 않겠다.
또한 장자는 말한다.
진정한 사랑은 자기를 내려놓으며 타인의 욕망을 존중하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내 안에 나를 내려놓기도 쉽지 않은데 타인의 욕망을 먼저 생각하라고 하니 처음에는
이게 가능한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가 나를
비우고 내려놓을 때 타인의 욕망이 보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라캉은 말한다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라고 이제는 타자의 욕망을 욕망할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욕망을 욕망하는 내가 되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