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사람을 살리는가?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보고 나서.. 스포일러 있음

by 줄리아

삶의 의지를 잃은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왕과 사는 남자>를 보고 나오면서 나는 이 질문이 떠올랐다. 어린 왕은 권력에 눈이 먼 수양대군에 의해 가족도 잃고 자신을 따르던 많은 이들의 죽음을 그저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고 모든 의미도 잃어버린 채로 공허와 두려움이 섞인 눈빛으로 유배를 떠난다. 외로운 섬처럼 위태로워 보이던 어린왕은 죄책감에 시달리며 밤마다 악몽을 꾸고 삶의 끝, 죽음만을 생각한다.

그러던 그가 마을사람들과 따뜻한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의 진심 어린 온기를 느끼며 공허하던 그의 눈빛은 점차 향기가 맺힌 생기를 찾는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 소박하지만 정성이 깃든 밥 한 끼, 아무런 조건 없는 따뜻한 시선, 그 평범한 것들이 한 사람의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운다.

삶의 의지를 잃었던 어린 왕은 마을 사람들과의 온정을 느끼며 그렇게 서서히 삶의 의지를 되찾아갔다.


초반에는 유배지로 끌려가 희망을 잃어버린 박지훈 배우의 눈빛이 너무나 처연해서

너무 안쓰러웠고 마음이 아팠다. 그래도 끝까지 살아남으라고 마음속으로 그를 향해 나는 큰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나의 외침을 어린 왕이 들은 걸까? 그는 정성스럽게 끓인 다슬기국을 먹으면서 미소를 짓고 잃어버렸던 생기를 다시 되찾아갔다.

그의 눈빛이 생기가 돌아 정말 다행이다 싶었는데 죽어가는 사람을 다 살려놓으니 사약을 받아야 하는 현실이라니 정말 화도 나고 답답했다. 이제야 어린 왕은 살고 싶어 졌는데... 이제야 밝게 웃으며 사람들과 온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는데...


어린 왕이 사약을 받기 전 엄흥도에게 조용히 부탁하는 장면이 있다. 권력은 그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었겠지만 어린 왕은 죽음 앞에서 그의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불의에 굴복하지 않고 존엄을 지키는 죽음... 그래서 어린 왕의 죽음은 헛되지 않다. 당당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그를 보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그의 결연한 의지를 실현시켜 준 엄흥도의 처절한 눈물도 가슴에 남는다.


권력은 어린 왕을 지우려고 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오히려 그의 죽음은 더 헛되지 않은 것으로 남는다. 역사는 종종 권력자의 기록으로 쓰이지만,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다른 방식으로 남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영화는 우리에게 이렇게 묻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람을 다시 살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누군가의 삶이 끝난 뒤에는 어떠한 의미로 남는가.

영화를 보고 나오며 나는 다시 생각했다.

결국 사람을 살리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진심 어린 마음, 누군가의 정성, 그리고 한 사람의 삶을 따뜻하게 감싸는 온기.. 그것이다.


어쩌면 어린 왕이 마지막까지 삶의 의지를 잃지 않았던 것도, 그 온기를 한 번이라도 느껴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영화의 배경이 된 영월에 찾아가서 단종에게

말하고 싶다. 슬픔도 죄책감도 없는 그곳에서 평온하라고... 그리고 당신이 흘렸던 그 아픈 눈물과 당신을 살게 했던 그 따뜻한 온기를 기억하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