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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ro Dec 04. 2023

건조체 글쟁이의 삐딱한 세상-꼴통

72. 살림과 노동

TV를 시청하는데 갑자기 뉴스 속보가 떴다. 속보의 내용은, 지하에서 일을 하던 인부 몇 명이 현장에서 유독가스에 의해 쓰러져 급히 구조된 후 병원으로 이송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사건이 벌어진 현장을 자막으로 확인하고 경악했다. 사건현장이 바로 내가 몸담고 있는 회사였던 것이다. 야간 근무 후 비번으로 퇴근해 쉬고 있던 나는 소식을 듣고 바로 동료에게 전화를 걸었다. 동료는 급박히 돌아가는 사건현장으로의 접근이 통제되어 뉴스에서 다룬 그 이상의 정보는 알고 있지 못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일흔이 넘은 외부 인부 한 명이 사망하고 몇 달 전 결혼한 직원 한 명과 오십이 넘은 또 다른 직원 한 명이 심각한 혼수상태에 빠졌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들은 모두 나와 늘 웃는 얼굴로 인사하며 가끔 커피 한 잔으로 서로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주고받는 사이였다.

가끔 TV를 시청하다 보면 황혼에 접어든 여성이 자신은 평생 애 키우고 살림밖에 살지 않았다면서 하소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남편과 자식들에 개 얽매여 진정한 자신의 삶을 살아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녀들은 가족들이 자신의 그 억압받은 세월을 알아주지 못해 억울하고 분하기도 하다면서 눈물을 흘립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한평생을 자식만 키우고 집안 살림만을 해야 하는 하는 삶. 그런 삶은 얼마나 고달프고 힘겨운 일이란 말입니까. 그래서 이런 그녀들의 일생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그녀들의 하소연과 눈물은 진정한과 슬픔 그 자체임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런 그녀들의 마음을 한 편으로는 긍정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부정하고 싶습니다. 자신들은 평생 얘만 키우고 살림만 해 자신의 인생은 송두리째 날아가버렸다는 그녀들의 주장은 다시 말하면 같이 가족을 이루어 살아가는 남편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전제가 성립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약 그렇다면 그 시절 그녀들의 말대로 남편들은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일을 다하며 정말 그렇게 살았던 것일까요. 따지고 보면 남편도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평생 바깥에서 노동밖에 더한 일이 뭐가 있단 말입니까. 자신들이 평생 살림만 하고 애만 키웠듯이 남편 역시 평생 돈을 벌기 위해 사장과 상사들에게 남자로서의 자존심마저 버리고 노동을 한 것 밖에 없는 것입니다.

  현대 사회는 산업 사회입니다. 이러한 시회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돈”이라는 매개체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 돈이라는 물질이 바탕이 되어야 최소한의 생존에 필요한 식량과 주거, 의복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말입니다. 하지만 이 돈이라는 것은 우리가 임의로 찍어 내어 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부자가 아닌 이상 누군가 돈을 많이 가진 자에게 노동을 제공해 주고 벌어 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회구조는 그 돈을 버는데 여자보다 남자가 좀 더 유리합니다. 이유는 남자의 노동력이 여자의 노동력보다 생산성이 더 높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렇다 보니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남자가 돈을 벌러 다니고 그렇게 번 돈으로 가족이 먹고 입고 자면서 살아갑니다. 만약 여자들이 돈을 더 많이 벌어 올 수 있는 사회구조라면 당연히 남자는 전업 주부로서의 삶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살림을 살 것입니다. 몰라요. 다른 남자분들은 저와 의견이 다를 수 있지만 적어도 저는 그럴 수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여성의 가사노동을 월급으로 계산하면 몇 백만 원어치의 노동력이라고 말들 합니다. 인정합니다. 그렇지만 비록 여성의 가사노동이 그만큼의 값어치가 있다고는 하지만 당장 돈이라는 실물이 생기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는 돈이라는 실물이 있어야만 삶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여자의 가사노동 값어치로는 쌀과 옷 그리고 집등을 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 돈이라는 실물을 벌어 오는데 좀 더 유리한 남자가 바깥에 나가 돈 있는 자로부터 그 화폐라는 실물을 벌어오고 여자는 가사노동을 하는 것이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여자들이 평생을 집안에 들어앉아 살림만 살았다는 피해의식에 비해 남자들은 뭐 어떤 다른 자신의 삶을 누리고 살았다는 말입니까. 고작 비굴하고 힘든 노동 끝에 회사에서 베푸는 회식자리와 퇴근 후 동료와의 술 한 잔이 다가 아니던가요. 물론 옛날 부모님 세대에는 농촌에서 일과 살림을 병행했었고 요즘 역시 일과 살림을 병행하는 여성들이 그런 말을 한다면 저는 수긍할 것입니다.

  뉴스를 시청하다 보면 일 년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일을 하다 사고로 현장에서 사망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노동현장에서 사망하는 사람들 95% 이상이 남자들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과연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그만큼 남자들은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멸시와 모멸을 받아가며 위험한 노동 현장임에도 기꺼이 노동을 감수하고 있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이 글을 읽는 일부 여성분들은 저에게 화가 날 수도 있습니다. 또 혹여 이런 말을 한다고 저를 시대에 뒤떨어진 남성 우월주의 자라고 욕을 하는 사람도 있을것입니다. 그러나 그런다고 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이유들로 자신들은 남자들과 달리 자신의 삶도 없이 자식만 키우고 살림만 살았다는 그녀들의 하소연에 대한 정당성을 남자들의 노동 현장에서의 죽음 앞에 도저히 인정할 수 없기 때문에 말입니다.


참고로 “극한직업”이란 방송 프로그램 한 번씩들 봐 보세요~


2021. 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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