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급품

군대 이야기(1994-1998)

by Zero

나는 군에 갔을 때 소총은 당연히 은색인 줄 알았다. 왜냐하면 우리가 지급받은 소총이 다 은색이었으니까. 그런데 나는 한참 후에야 소총의 진짜색은 검은색에 가까운 찐한 회색인 것을 알았다. 선임하사가 새 소총을 지급받고 나서야 말이다. 나는 그야말로 그 순간 충격이었다. 소총이 은색이 아니었다는 것이. 내가 은색이라고 생각했던 소총은 계속 선임들로부터 물려받아 원래의 검정계열의 색깔이 다 벗겨져서 은색으로 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이런 보급 상태는 다문 소총만이 아니다. 공용장비는 일단 논외로 하고 개인 보급품인 야전상의와 침낭과 닉샥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관공서나 국가기관에는 사용 연한이라는 게 있다. 공용품 같은 경우에는 굳이 수시로 바꿀 이유가 없으니 예산절약 차원에서 특별히 망가지지 않으면 특정기간 동안 쓰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야상과 침낭은 개인물품으로 당연히 새것이 지급되어야 마땅한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것조차 누가 언제부터 몇 년동안 입고 덮고 잤을지도 모르는 걸 물려받아 사용했으니 이게 말이나 될법한 소리인가. 침낭 같은 경우 한겨울 강원도 산속에서 그것 하나로 밤을 버티는데 그렇게 오래된 침낭에 보온기능이 존재하겠는가. 야상도 마찬가지고. 지금 생각해 보면 분명 우리가 모르는 뭔가가 있었다는 이야기인데 중년이 되어 그 상황들이 눈에 보이니 그때의 그 말도 안 되는 일들이 그저 개탄스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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