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긴 배우가 있을까요? 190센티의 엘리자베스 데비키.
넷플릭스에 올라온 테넷을 뒤늦게 보았습니다. 인류를 멸망케 하는 인버전(Inversion)알고리즘을 9개의 핵무기 저장시설에 감추어 둔 미래 세력. 그들은 현재를 파괴하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과거 인류가 망쳐놓아 기후변화로 해수면이 상승하고 강이 말라버렸기 때문에 과거를 되찾으려고 하는 것이지요.
인버전은 모든 것의 역입니다. 역함수, 역행렬, 역산 등의 수학적 용어를 생각해 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이 인버전 기술은 미래의 오펜하이머 같은 존재가 만들었습니다. 1945년의 오펜하이머는 인류가 멸절할 수 있는 "맨해튼 프로젝트"를 실행에 옮기지만 미래의 인버전 기술을 만든 과학자는 실행에 옮기지 않고 그냥 프로그램만 개발한 것이지요.
아무튼 이 인버전 기술이 보편화된 미래에서 현재와 교류하고 있는데 주인공이 거기에 포함됩니다. 그래서 9개 중 마지막 퍼즐인 플루토늄 241을 뺏길 위험에서 오페라 하우스에 침투, 그 위기를 막아냅니다. 그 이후 인도의 과학자를 찾아가 어떻게 재앙을 막을지 물어보면서 작전에 깊이 휘말리게 되지요. 거기서 만나게 된 빌런의 아내 캣에게 마음을 빼앗깁니다. 즉, 이때부터는 공상과학 미스테리 물이 하나의 로맨스로 전환됩니다. 플라토닉 수준이지만 이 여인을 살리기 위해 목숨을 건 인버전 작전을 수행한다는 건 아주 낭만적이지요.
한편 인버전의 세계는 재밌습니다. 물리학의 엔트로피가 거꾸로 작용하다보니 불이 난 현장에서 주인공은 오히려 저체온증으로 고생하고 마찰력과 저항은 거꾸로입니다. 그런데 그게 정상이죠. 왜냐하면 나만 '거꾸로'된 상태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모두 뒷걸음치고 자동차는 후진을 하고 바람은 거꾸로 불어대는 것이죠.
그러다 보니 복원과 파괴가 교차하고 현재와 미래가 격돌합니다. 자칫 어려울 수 있는 이 영화를 재밌게 보는 방법은 그냥 현재에 충실하고 하나의 좌표계만 바라보고 집중하는 겁니다. 영화속에서 거꾸로 돌아가는 건 그냥 흘려보내세요. 어차피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볼 수는 없습니다. 특히 자신과의 접촉은 금물인데 극중에서는 과거의 자신이 보입니다. 순행과 역행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 이 영화의 묘미이자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지어낸 모티프이니까요. 이 생각은 <인터스텔라>에서 싹텄고 <오펜하이머>를 만들기 전에 <테넷>으로 구체화 되었습니다.
그런데 '캣'이라는 여인과 그녀의 생명과도 귀한 아들이 나타나면 그게 이 세상의 전부가 됩니다. 그래서 죽어가는 캣을 다시 부활시키는데 영화 후반은 집중됩니다. 지구를 살린다는 명목이지만 사실은 캣을 살리려는 미래와 현재의 시간 협공작전으로 영화가 진행됩니다.
"일어난 일은 일어나는 거야." 영화는 결코 우리에게 일어날 불행을 없애지는 않습니다. 다만 시간의 역행을 통해 과거를 바꿀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이는 <수퍼맨(1980)>에서 사랑하는 연인을 살리려고 지구를 거꾸로 돌리는 구식 인버전 장면을 연상케 합니다.
영화를 보면서 현실의 불행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이 떠올랐습니다. 특히 '세월호','이태원'과 그 외의 안타깝게 희생된 모든 사람들 말입니다. 인버전으로 그들을 살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테넷>은 그냥 어렵기만 한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시간을 돌이켜 사랑을 보존하려는 낭만적인 작품이었습니다. 또한 끝까지 자신을 돕는 닐의 정체역시 반전이었습니다. 천재 감독은 그렇게 로맨틱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