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은 여러모로 꿈같은 한 해였다.
베트남전은 점차 격화되었고, 7월에는 닐 암스트롱이 달에 착륙했고, 중동에선 이집트와 이스라엘의 분쟁이 일어났다. 그리고 젊은이들은 방황했다. 그 젊음의 열기와 사랑과 노래가 핵폭탄처럼 터진 곳이 우드스탁 페스티벌이었다.
<테이킹 우드스탁>은 한때 무산 위기에 처했던 우드스탁 페스티벌이 어떻게 무사히 열려 전설로 남게 되었는지에 관한 실화이다. 부모님의 낡은 모텔을 경영하던 유태인 청년 엘리엇 타이버는 이웃동네 월킬에서 대규모 공연이 취소되자 우드스탁 주최팀을 만나 자신의 동네의 넓은 농장 언덕을 추천하여 기적의 공연을 유치한다.
수천평의 농장을 축제 장소로 제공하고,부모님의 낡아빠진 모텔은 페스티벌의 공식 숙소가 되며 난생 처음으로 마을에는 많은 관광객들로 붐비게 된다. 록 페스티벌 소식을 접한 전국의 젊은이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더니 다리와 고속도로가 정체 되고, 고요하기만 하던 마을에 무려 50만명에 육박하는 인원이 몰리면서 아수라장이 되는데…
암살과 시위와 전쟁이 일상을 침투하던 시절, 우드스탁은 가장 평화적이고 가장 강력한 힘, 바로 음악을 통해 이 거대한 변화의 흐름이 기정사실이며 누구도 바꿀 수 없는 것임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어릴적 영화잡지에서 우드스탁에 모인 수많은 군중사진에 압도되었다. 그리고 도대체 저 자연스러움과 무정부적인 연합은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런데 <테이킹 우드스탁>을 보며 당시에도 그런 사건은 아주 이상한 이벤트였음을 알게 되었다. 어떤 운명적인 기운이 우연히 작동하여 일어난, 마치 베를린 장벽이 순식간에 무너졌듯이 벌어진 사건이었다. 비가 와서 진흙탕이 되면 젊은이들은 머드 축제를 벌였고, 너도나도 강에 풍덩 들어가서 에덴동산을 연출했다. 그들이 거기서 찾은 건 다름아닌 활력이었다. 그 에너지는 젊은이들을 지나 동네의 노인들에게까지 전달되었다.
지미 헨드릭스, 카를로스 산타나, 존 바에즈, 더 후, 재니스 조플린, 조 카커, 제퍼슨 에어플레인... 듣기만해도 설레는 뮤지션들은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거의 등장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들이 그 집회의 불을 당긴 장본인이었으니까. 그리고 나는 이 기적이 달착륙의 기적을 능가하는 평화의 상징이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1969년 8월 15~17일, 뉴욕주 베델에서 열린 우드스탁 공연 현장
저 밑에서 V자를 그린 사람이 다름 아닌 마틴 스코세지 감독
재니스 조플린
조 카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