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책없이 울고 있는 모습을 숨기려 영화가 끝난 후 뛰어나오듯 극장을 빠져나왔다. 영화의 초입, 화면을 채우는 2008년의 싸이월드와 삼성 애니콜을 마주하며 이제는 그 시절조차 어느덧 추억의 아이콘이 되어버렸구나 하는 깊은 한숨이 먼저 새어 나왔다. 과연 이 나이의 내가 '늦은 청춘(3-40대)'의 세계에 다시 공감할 수 있을까, 그저 먼지 쌓인 젊음의 소품들을 구경하러 잘못 들어온 건 아닐까 싶던 의구심은 어느새 뜨거운 눈물줄기가 되어 부끄럽게 뺨을 타고 흘렀다. 수많은 클리셰와 기시감이 넘침에도 대체 이 영화가 내 마음속 뭘 건드린 것일까.
이 영화는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는 "건축학개론"의 변주곡이 아니라, 그 서사를 넘어 '객체'에서 '주체'로 피어난 첫사랑의 진화였다. 사랑이 영원할 것만 같았던 그 눈부신 착각과 차가운 현실 앞에 무너져야 했던 무력감. 하지만 그 가난한 청춘이 몰래 입 맞추는 대신 당당하게 서로를 마주했고, 가진 것 없어도 사랑의 절벽에 기꺼이 몸을 던질 줄 알았다. 그 무모하고도 찬란했던 용기가 가슴을 아리게 했다.
하지만 사랑은 언제나 계절이 지나고 나서야 완성되는 슬픈 가정법 과거의 문장으로 남는다. "만약 그때 내가 널 잡았더라면"이라는 뒤늦은 후회는 부질없는 메아리가 되어 부서진다. 젊은 날의 첫사랑이 그토록 아픈 이유는 그것이 본질적으로 '두려움'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찌질했던 젊은 날의 비겁함과 나 자신조차 감당하기 버거웠던 청춘의 무게는, 그 가난한 연인들에겐 가혹한 하중이 되어 그들을 짓눌렀다.
결국 이 영화는 지독한 꿈에 관한 애달픈 기록이기도 하다. 사랑의 불꽃이 가장 뜨겁게 타올랐던 찰나, 우리는 종종 꿈이라는 목표를 위해 그 사랑을 포기하곤 한다. 그러나 꿈이 이뤄진 뒤 찾아온 자각은 불꽃이 꺼진 자리에 남겨진 차가운 재와 마주하는 현실이다. 문가영은 극중 가여운 '정원'의 진심과 아픔을 투명한 유리처럼 그려냈고, 구교환이 연기한 '은호'는 맨땅에 헤딩하며 살아가야만 하는 이 땅의 모든 젊은이의 초상을 리얼하게 그려냈다. 그들의 아등바등한 몸부림 위로 임현정의 노래 "사랑은 봄비처럼..이별은 겨울비처럼(이 노래는 언젠가 영화에서 뜰 거라 기대했었다)"이 겹쳐 흐르자 영화는 관객의 가슴속에 최루가스를 터뜨리기 시작했다.
모진 세상은 꽃밭 같은 사랑을 끝내 지켜주지 않았다. 사랑의 불꽃이 다 타버리고 흑백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이제 중년으로 접어들어 월급봉투에 의지해 전철을 타고 하루를 견뎌내는 어른이 되었다. 하지만 극장을 나서는 발걸음이 마냥 무겁지만은 않은 이유는, 그토록 비겁하고 두려웠던 시절조차 결국은 생애 가장 뜨거웠던 진심이었음을 서로가 서로에게 증명해 주었기 때문이다. 흑백의 일상 속에서도 우리 가슴 한구석엔 여전히 그 시절 타올랐던 총천연색의 붉은 온기가 남아있었음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