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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은 Apr 23. 2024

"네 생일이 너무 늦는구나"

공짜 음악 수업의 비밀

    살면서 들어 본 가장 다정한 말이 무엇인가? '네 생일이 너무 늦는구나'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선물하고 싶은 마음에 나의 음악 선생님이 한숨 쉬듯 한 말씀이었다. 난 늘 받기만 하는데도 뭔가 또 주고 싶으셨나 보다.

    선생님은 음악을 가르치는 분이시고, 말레이시아에서 나고 자란 현지인이시다. 내가 선생님에 대해서 아는 건 가난한 연주자로서 동료들과 전 세계를 돌아다니셨다는 것과, 지금은 돈을 벌기 위해서 국제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신다는 것, 어머니와 함께 사시고 누구에게나 친절한 사람이라는 것, 음악계의 어두운 부분은 비판하시면서도 무대를 그리워하신다는 것들이다.

    보잘것없는 재능을 알아보시기도 하셨다. 내가 말레이시아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 아무도 없는 음악실에서 종종 피아노를 치거나 마이크에 대고 노래를 부르다 가곤 했다. 그러다 우연히 선생님께 혼자만의 시간을 들키게 되었고 서로 인사하고 대화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하루는 가 하소연을 했다. 특이하게도 우리 학교는 에이레벨 학생들에게 동아리 활동을 할 기회를 주지 않아서, 음악을 공부하고 싶은데도 그러기가 어렵다고 말이다. 이에 선생님께서 곰곰이 생각하시더니 자기로부터 음악 수업을 받아 보지 않겠냐고 물어보셨다. 한국이라면 있기 힘든 일이지만, 이곳에서는 학교의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따로 과외 수업을 해 해 주시는 일이 흔하다. 우선 생각해 보겠다고 하고는 일주일 동안의 방학 동안 뭐라고 답을 드려야 할지 열심히 고민했다. 돈을 내고 과외를 받으면서까지 음악을 공부하고 싶은지 말이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흔쾌히 공짜로 수업을 해주시겠다고 하셨다. 일주일에 한 번, 금요일마다였다.

    나는 상대음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멜로디를 듣고 꽤나 정확하게 따라 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C 메이저가 가장 편하고, 멜로디를 듣고 C 메이저로 옮겨서 치는 것이 가장 쉽다. 혹은 머릿속에서 그려낸 멜로디를 옮겨내는 것도 간단히 가능하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하며 혼자 피아노를 똥땅똥땅 연주하는 모습을 보여드리니, 선생님은 이것도 꽤 재능이 주어진 것이라며 알아봐 주셨다.

    처음에는 피아노를 조금 더 잘 칠 수 있는 기술들을 알려주셨다. 나만의 피아노 교본도 구해다 주셨고, 지금도 악보를 잘 보지는 못하지만 악보를 보는 방법도 배웠다. 이어서 작곡 수업을 배우며 직접 노래를 만들기도 했다. 바로 '말레이시아의 첫눈'이었다. 바이올린도 빌려주시고, 여러모로 게 맞는 음악이 무엇일지 함께 고민해 주셨다.

    그래서 우리가 공부했던 것은 작곡 프로그램과 MIDI 보드를 사용해서 작곡하는 법이다. 지금은 시험공부 때문에 잠시 놓고 있지만, 시험이 끝나는 대로 다시 수업을 시작하기로 했다. 작곡 프로그램은 내가 가장 흥미를 느끼고 잘하게 된 것이기도 하고, 선생님도 능숙하시다. 지난번에는 학교에 있는 비싼 MIDI 기능이 있는 연주용 키보드에서 여러 소리를 바꿔 가며 합주를 하는 재미있는 경험도 있었다.

    사실 수업이라기보다는 서로 사는 얘기나 하고, 선생님께서 제게 '이런 것도 있단다' 하고 보여주시면 는 신기해 한 다음, 금방 배워서 같이 해보는 식으로 함께 시간을 좀 보내기도 한다. 서로 '자기는 이런 것도 할 줄 안다'며 자랑하듯이 건반을 두들기기도 다.

    얼마 전에 작곡에 관해 유튜브 영상들을 보며 점점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외로워지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밴드 연주를 통해 음악을 녹음하던 사람들이 점점 혼자서 악기연주와 믹싱, 음원의 추출까지 혼자 해결하는 시대가 왔다고 하였다. 꼭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선생님도 밴드활동 대신 선생님이 되는 길을 택하시며 함께 음악을 좋아해 줄 친구가 필요하셨던 게 아닐까 싶다.

    실제로도 우리는 사제지간보다는 동료나 친구 같다. 만의 작은 미디 보드를 사러 음악 상점(swiss lee)에 가기도 하였다. 또 버스킹도 함께 해보고, 나중에 정말로 음원을 녹음하게 된다면 서로의 음악을 들어 보고 싶은, 함께 음악을 즐기는 사이이다. 나는 졸업할 때가 꽤나 머지않았지만 떠나기 전까지 후회 없는 음악 공부를 해볼 수 있기를 바란다.


    이야기의 가치를 아는 당신께서 제 이야기에 공감하여 누르는 구독과 라이킷은 현재 말레이시아 유학 중인 제게 큰 도움이 됩니다. 제 이야기를 읽으며 흥미로우셨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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