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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OTT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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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SL Oct 25. 2022

1부 <오징어게임>,  플랫폼 리얼리즘의 출현

세상에는 다양한 형식과 주제의 서사물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대체로 작가나 연출가 외에 그것이 담기는 미디어 형식, 정치경제학적 요소, 제작국가의 문화 등의 영향을 받는다. 인쇄 신문의 연작소설과 TV 드라마, 영화와 드라마, 드라마 중에서도 지상파와 케이블TV 드라마 간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정치경제학은 서사물이 수용자 상품론(audience commodity)이 설명하는 경제적 측면뿐만 아니라 정치적 지형에 의해서도 영향받는다는 사실을 여러 사례로 검증해 왔다. 서사물이 만들어지는 문화나 전통, 관습 또한 중요하기 때문에 제작국가도 잘 고려해야 한다. 거기에 서사물은 표현주의니 형식주의니 해서 당대의 기술적이고 사회적이며 인간적인 조건에 의해 특별하게 양식화된다. 


이 시대를 관통하는 <킹덤>이나 <오징어게임>, <지옥>, <파친코> 등은 어떤 서사 형식이고, 대한민국은 물론 전세계는 왜 이들 서사물에 열광하는가? 분명히 우리의 이야기지만 ‘우리 것’이라고 단언하기 망설여지는 이 모호한 콘텐츠의 위치를 어떻게 파악해야 하는가? 그나마 초기 콘텐츠는 제작사나 감독, 배우, 스탭 등 시스템적으로 한국의 콘텐츠 산업이 주체가 되어 제작되었지만, <파친코>에서는 감독과 스탭을 포함한 우리의 것이 단지 고용되었을 뿐이다. 그렇게 미디어 대중문화가 다시 쓰이고 있다. 그 기록의 주체는 우리가 아니라 글로벌 자본이다. 다시 쓰이는 대중문화는 우리(만)를 위한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는 보다 큰 글로벌 시장이 있다. 


애플TV플러스의 오리지널 콘텐츠 <파친코>는 한국적인가? 드라마인가?


이들 서사물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드라마와 사뭇 다르다. 모름지기 드라마라면 가족이 있고, 사랑과 갈등이 존재하며, 때때로 극단적 갈등으로 시청자들을 벼랑끝 감정으로 몰아세우기도 한다. 현실의 시간이 추석이면 드라마 속 세계도 추석에 관한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사실 텔레비전은 그것이 어떤 콘텐츠 형식이든 현실과 동기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미디어였다. 하지만 OTT는 그렇지 않다. OTT 서사물들은 드라마라고 지칭하기 모호한 것들을 많이 포함한다. 형식은 드라마처럼 연속물이지만 영화 같은가 하면 장편소설 같기도 하고, 또한 드라마 같기도 하다. 본문에서 본격적으로 논의하겠지만, 이런 서사 형식을 ‘서사극’(epic)이라고 할 때 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서사극은 넷플릭스는 물론 디즈니플러스, 애플TV플러스 등 글로벌 OTT가 글로벌 시장에 침투하기 용이한 서사 형식이다. OTT와 그 서사물의 문화적 의의는 케이블 채널의 해외 진출이나 국지적인 미드 현상과 다르다. 서사 형식과 내용은 물론 수용의 즐거움 또한 근본적으로 다르다. 전세계적인 <오징어게임> 신드롬에서 보듯이, 글로벌 OTT 서사극은 국경을 경계로 설정되어 온 지금까지의 텔레비전 시장과 소비 양상에 새로운 도전이 되고 있다. 주지하듯이, 텔레비전은 뉴스, 드라마, 다큐멘터리 등 그 형식이 무엇이든 이른바 민족국가(nation-state)에 입각한 대중문화를 실현해왔다. 그 문화는 일방적이고 동시적이며 정기적이었다. 또한 텔레비전은 가정 내에서 보편적 접근을 허용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동질적이었고, 그런 면에서 보수적이었다. 이 시대를 관통하는 OTT는 전래의 대중문화마저 관통한다. 


이로부터 우리는 ‘텔레비전 리얼리즘’과 구별되는 ‘플랫폼 리얼리즘’의 세계를 말할 수 있다. 텔레비전은 그것이 현실을 반영해서라기보다 “리얼리티의 지배적 감각”(dominant sense of reality)을 (재)생산하기 때문에 사실적이다(Fiske, 1987, p.21). 뉴스에서 의제설정, 드라마에서 동일시, 광고에서 욕망의 호명 등 텔레비전은 사회적으로 지배적 또는 평균적인 감정, 관심, 유행, 태도 등 이른바 공통문화(common culture)를 생산해 왔다. 이런 시각을 글로벌 OTT에 투영해 보면, OTT는 어떤 ‘리얼리티에 대한 지배적 미학’(dominant aesthetic of reality)을 제공하기 때문에 사실적이라 할 수 있다. OTT의 지배적 미학은 텔레비전의 지배적 감각이 초래하는 평균적인 문화와 달리, 각기 다른 사람들에게 각기 다른 콘텐츠를 제공하는 가운데 어떤 특정한 콘텐츠와 그 주제가 개연성 있고 아름답다고 여기는 정서적 경험을 일컫는다. 곧이어 설명하겠지만, 그것은 OTT 플랫폼이 자신의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어떤 콘텐츠를 즐겨 시청하는지 연산한 결과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글로벌 OTT의 추천 알고리즘은 저마다 다른 취향의 콘텐츠 수용을 연산하는 가운데 어떤 공통의 지배적 미학을 발견한다. 


플랫폼 리얼리즘은 감각보다 미학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영화와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영화에는 텔레비전 채널이나 OTT에서 보이는 지배적이라 할만한 어떤 ‘문화적 태도’(cultural set)가 없거나 매우 느슨하게 존재할 따름이다. 마블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MCU의 캐릭터와 그 세계관 같은 것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영화 스튜디오는 IP를 관리하기는 했어도 텔레비전처럼 뚜렷한 문화적 태도를 일관되게 유지하지는 않았다. 문화적 태도는 채널이나 플랫폼처럼 콘텐츠를 제공하는 개별 미디어의 고유한 창작 규범으로서, 원래 개별 채널이 오랜 편성으로 축적해 온 문화적 설정상태를 뜻한다. 이는 텔레비전 연구자 윌리암스(Williams, 1974, p.85)가 공영방송의 문화적인 것과 상업방송의 상업적인 것 간의 차이를 논하면서, 그것이 장르의 차이에 그치지 않고 장르를 ‘표현하는 방식’의 차이를 야기하는 원인이자 결과라는 것을 지적하면서 사용한 개념이다. 동일한 애니메이션 장르지만 상업방송과 교육방송에서 그 목적과 만듦새가 다르듯이, 미디어 편성의 본질에는 장르와 함께 문화적 태도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볼 때, OTT에서도 문화적 태도가 발견되는데, 넷플릭스가 컬트물의 문화적 태도를 보인다면, 디즈니플러스는 영웅과 동화적 세계의 문화적 태도를 띤다. 


플랫폼 리얼리즘과 문화적 태도 개념은 OTT가 일방적이고 획일적인 ‘계획된 흐름’(planned flow)으로 구조화된 전래의 채널과 본질적으로 다른 플랫폼임을 보여준다다. 플랫폼이 구현하는 리얼리즘은 각기 다른 수용자들의 취향이라는 정신적 속성(mental quality)이 상호작용하는 가운데 생성된다. 엄밀히 말하면, OTT 플랫폼이 서사물을 배치하고 특정한 리얼리즘을 구현하는 것은 수용자 저마다 다른 취향의 인터페이스를 구조화하는 복잡계(Complex System) 네트워크의 논리를 통해서이다. 복잡계는 완전한 질서와 완전한 무질서 사이에 존재하면서, 수많은 요소들이 상호작용 운동을 하는 가운데 어떤 창발이 일어나는 것을 일컫는다(Buchanan. 2002/2014). 복잡계는 비선형성, 비가역성, 불확실성과 우발성(contingency), 확률 등을 특징으로 한다. 그 동학을 요약적으로 정리하면 속성(quality)과 개체(individual)이다. 속성은 계의 ‘되먹임’과 ‘창발’ 과정을 통해 발현되는 정신적 요소이고, 개체는 그런 속성을 수행하는 행위자이다(Penrose, 1989/1996 참조). 개체가 사람이나 사물 또는 조직, 기관, 콘텐츠라면, 속성은 그런 개체의 참여를 통해 계를 움직이게 하는 어떤 힘, 다시 말해 개체가 계에서 실현하고자 하는 어떤 성격, 평판, 태도, 취향, 관심, 작용능력, 기능 등이다. OTT에서 속성은 해당 플랫폼 알고리즘이 계에 참여하는 개체로부터 추출하여 처리하는 미학적 취향이다.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은  자신이 개발한 계산기를 추상수학의 "마음상태"(state of mind)로 본 앨런 튜링의 통찰과 훗날 복잡계의 탄생과정에 대한 힌트를 준다


그렇게 보면 OTT는 효과나 태도, 시청률로 표시되는 특정 개체가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행동과학(Behavior Science), 즉 계에 참여하는 개체들의 우발적 행동에 따라 창발이나 패턴으로 설명되는 ‘복잡계 미디어’이다. 복잡계 미디어는 미디어 자체의 일방적 힘과 영향력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속성을 발현시키기 위해 참여하는 개체들의 상호작용으로 말미암아 그  문화적 힘이 생성된다. 복잡계로서 OTT는 대량생산 체계의 채널(개체)처럼 평균적인 정서가 아니라, 수용자 각각의 미학적 취향에 대응하는 최적화 서비스를 지향하는 가운데(Lim, 2017), 마침내 특정한 지배적 미학 또는 문화적 상태를 창발한다. 물질적 자원은 ‘글로벌 자본’이, 미디어 논리는 ‘복잡계 네트워크’가 OTT의 존재양식과 콘텐츠의 향방을 결정하는 것이다. 


플랫폼 리얼리즘이나 지배적 미학 개념은 검증받아야 할 가설이지만, 동시성의 레거시 미디어가 제공하던 지배적 감각과 다른 OTT의 리얼리즘을 해명해야 하는 이 시대에 제기해 봄직한 개념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OTT 서사극은 시청자의 삶과 미디어 속 세계가 동기화된 텔레비전 특유의 ‘현재성’(nowness)이 없거나 매우 미약하다. 웨이브나 티빙처럼 일 국가 안에서만 서비스되는 OTT는 여전히 현재적 동시성이 강조되지만, 글로벌 OTT는 각기 다른 문화, 인종, 지역, 역사, 지리 등에 적합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기 때문에 현재성의 요구로부터 자유롭다. 그렇다고 글로벌 OTT가 현재성을 완전히 외면하는 것은 아니다. 이용량이 급증하는 것을 묶은 ‘지금 뜨는 콘텐츠’, MZ 세대를 주제로 하는 ‘요즘 것들의 요즘 이야기’, 심지어 고온과 폭우 등 이상기후 상황을 반영한 ‘지구의 경고, 이상기후’ 등 동시적이고 대중적인 공통문화를 실현하려는 장치가 꾸준히 개발되고 있다. 


이에 우리는 플랫폼 리얼리즘을 전통적인 영화와 텔레비전에 이어 OTT 플랫폼이 계의 되먹임 과정을 통해 빚어내는 미학적 창발의 결과물로 상정할 수 있다. 그것은 대체로 설명가능할 뿐 예측가능하지 않다. 제작에 소요되는 비용의 크기나 제작자의 명성에서 대중적 반응을 일정정도 예측할 수 있지만, 글로벌 OTT는 일 국가내 단일 문화시장에서 소비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과거 대중매체 시대보다 훨씬 더 예측하기 어렵다. 만약 예측할 수 있다면, 그것은 선택과 시청을 관통하는 수많은 되먹임 과정에서 복잡계가 개체와 개체를 연결하는 취향으로서 어떤 속성을 발견할 때이다. <오징어게임>이나 <파친코> 등이 지역적으로나 전세계에서 크게 히트한 것은 그것이 해당 OTT의 다른 콘텐츠와 비교해 전세계 누구에게도 어필할 수 있는, 그러면서도 차이를 보이는, 인간과 문화, 시대를 관통하는 어떤 속성이 발견되어서일 것이다. 플랫폼 리얼리즘은 그것에 대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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