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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OTT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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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SL Oct 26. 2022

1부 <킹덤>에서 <파친코>까지, 서사극의 알레고리

여기에서 우리는 또 하나의 질문에 이르게 된다. OTT의 플랫폼 리얼리즘이 각기 다른 수용자들 간의 상호작용적 창발이라면, <킹덤>이나 <오징어게임>, <지옥>, <파친코> 등 전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한국 오리지널은 어떤 미학을 불러일으켰는가? 이들 콘텐츠를 관통하는 서사적 특징은 무엇인가? 위태로운 왕권 수성, 경쟁에서 패배한 사람들, 숨을 곳 없는 감시사회, 나라 잃은 사람들 등 이들 콘텐츠는 모두 고난에 찬 삶의 이야기이다. 그러니까 그들은 조르조 아감벤(Agamben, 1995/2008)이 말한 ‘호모 사케르’에 가깝다. 역적으로 내몰린 세자, 신용불량 딱지가 붙은 사람들, 감시받는 사람들, 피식민자들, 이들은 모두 그 사회의 정상적인 삶의 바깥에 있는, 증발되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예외적인 존재들이다. 


이런 관찰로부터 우리는 글로벌 OTT가 한국 콘텐츠의 ‘텍스트 전형성’(architextuality)으로 ‘예외상태’를 선택했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것도 많지만, 전세계적 공명을 일으킨 이들 콘텐츠에서 예외상태의 사람들을 일관되게 확인하는 것은 결코 지나칠 일이 아니다. 텍스트 전형성은 기호학자 쥬네트(Genette, 1982)가 여러 텍스트들이 특정한 방향으로 장르를 구축해 가는 것을 일컬을 때 사용한 용어이다. 넷플릭스를 포함한 플랫폼 기업의 시장확장이 지역 내 개인의 능력치를 글로벌로 넓히는 글로컬화(glocalization) 전략으로 본다면(Wellman, 2002), 그 연장선 상에서 글로벌 OTT가 펼쳐 보이는 미학적 세계를 생각한다면, 글로벌 OTT가 대한민국이라는 로컬에서 선택한 텍스트 전형성의 코드가 전설이나 신화, 자연, 위대한 업적, 희극과 비극 등이 아니라 경쟁과 감시, 생존 같은 것이라는 점은 여러모로 주목된다. 


2015년 시리아 난민 꼬마 쿠르디의 죽음(사진)은 예외상태에 처한 사람들의 비극의 전형을 보여준다(AFP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들 콘텐츠를 고찰하는 것은 흥미로우면서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특정한 로컬 코드가 어떻게 글로벌 코드와 결합하는지, 그런 결합으로 어떤 시청의 지평을 제시하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분석내용을 미리 언급하자면, <킹덤>은 도탄에 빠진 백성이라는 로컬 코드를 좀비라는 글로벌 코드와 결합한다. 그렇게 <오징어게임>은 한민족의 놀이와 신자유주의의 무한경쟁 사회를, <지옥>은 종교와 죄의식을, <파친코>는 일제 강점기와 디아스포라를 결합한다. 이들 코드들은 단순히 산술적 결합에 그치지 않는다. 로컬과 글로벌 코드는 보편적인 시청의 지평, 그러니까 서사극이 담지하는 자기 반영성(self-reflexivity)을 구축한다. 


예술에서 자기 반영성은 현실의 문제를 검토할 것을 요구하는 (포스트) 모더니즘적 경향이다(Stam, 1992/1998). 서사물을 눈물, 회한, 분노 등 감정적 소비에 그치지 않고 세계를 인지하는 도구로 삼고자 했던 일련의 흐름이다. 전세계 시청자를 대상으로 하는 OTT가 자기 반영의 서사극 형식을 채택한 것은 의미있는 전략적 행동이다. 자기 반영의 서사극은 그것이 만들어진 국가의 수용자를 넘어 전세계인들이 보편적으로 이해하고 느끼고 생각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철저하게 개인화된 수용자에게 적합한 콘텐츠는 역사적, 사회적 맥락 안에서 공감하는 평균적인 감정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과 세계를 들여다 볼 수 있도록 하는 것들이다.


글로벌 OTT의 이런 필요에 부합하는 전략 중 하나로 알레고리(allegory)를 통한 이야기 전개가 있다. 그리스어로 알레고리아(allegoria)는 다르게(allos) 말하기(agoreuo)이다. 문학을 포함해 서사 장르에서 알레고리는 추상적인 개념을 직접 표현하지 않고 구체적인 형상을 통해 의미를 표현하는 수사법이다. 그런 형상은 한 두 번으로 그치지 않고 서사 전체를 관통한다. 대표적으로 <이솝우화>는 동물의 특성을 알레고리 삼아 인간의 지혜나 어리석음을 지적한다. 벤야민(Benjamin, 1928/2009)에 따르면, 영화의 몽타주는 추상개념을 감각적으로 형상화하기 좋은 알레고리 재료이다. 그런 형상적 재료들은 질서있는 승리의 역사보다 고통어린 패자의 역사와 흔적을 드러내는데 용이하다. 벤야민은 20세기 초 전체주의가 등장하고 유대인의 비극적 역사가 예고되는 가운데, 17세기 구교와 신교가 벌인 ‘30년 전쟁’의 상흔과 같은 상실감(멜랑콜리)의 파편에서 당대의 역사성과 총체성을 확인할 수 있다고 보았다. 역사 이전의 신화적 영웅을 이야기한 고대 비극과 달리, 단절되고 파편화된 역사적 과정의 이야기에서(고지현, 2005) 당대성과 진실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거대한 (승자의) 역사 속에서 인간이 처한 우울함, 어쩌지 못함, 상실의 정서는 알레고리와 잘 어울리는 항목이다. 


따라서 알레고리 작가는 어떤 심연에 직면하여 우회로를 택하고, 이 우회로에서 사물은 본래의 연관관계와 분리되고, 유기적 전체를 파괴하여 파편화시키고, 무상함을 불러일으키고, 가상이 사라지고 의미공간을 비워 급기야 “제3의 의미”를 생성해낸다(임석원, 2011, 264쪽). 그런 의미에서 ‘상황설정’은 알레고리의 기본 전술이다. 이솝우화의 여러 동물 캐릭터는 현실 인간과의 일대 일 관계로 설정되어 이야기의 개연성을 확보한다. 이같은 알레고리적 방법은 기표와 기의, 내용과 형식이 견고하게 결합되어 있는 상징과 다르다. 상징이 만들어지고 사용되는 것이 역사적이고 관습적이며 일회적이라면, 알레고리는 비역사적이고 자의적이며 이야기가 전개되는 동안 지속된다. 따라서 상징이 삶의 편린으로부터 기존의 보편을 확인한다면, 알레고리는 새로운 깨달음, 진실의 발견을 재촉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알레고리가 자기 반영의 서사극 전통과 부합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킹덤>은 좀비처럼 변해가는 조선을 구하기 위해 미션해결을 알레고리 삼아 도탄에 빠진 민중에 대해 성찰할 것을 요구한다. <오징어게임>, <지옥>, <파친코>는 어떤 알레고리를 통해 자기 반영성을 실현하는가? 


화가 티치아노는 인생-시간 상에 존재하는 3명의 사람과 동물을 쌍으로 연결해 신중한 삶의 태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티치아노-신중함의 알레고리).


자기 반영의 방법으로서 알레고리와 서사극은 현실 재현을 목적으로 했던 예술론에 반기를 들고 무대가 결코 현실과 같거나 그것을 압도할 수 없다는 입장에 있다. 현실과 무대를 혼돈한다면 예술은 쉽사리 선전선동이나 환영이 될 것이다. 그래서 자기 반영의 예술이 채택한 것은 현실과 무대의 분리, 그를 통한 현실에 대한 성찰, 관찰자로서 관객이다. 서사극은 감정보다 결정, 경험보다 지식, 암시보다 주장, 결과보다 과정, 불변하는 인간이 아닌 변화하는 인간, 사건의 직선적 진행이 아닌 곡선적 진행, 그대로의 세계가 아닌 되어가고 있는 세계, 책임져야 하는 임무가 아닌 강제되는 임무, 본능이 아닌 이성 등을 강조한다. 서사극의 이같은 자기 반영성은 현실을 그대로 투영하고자 했던 자연주의를 넘어선 사실주의 극예술(에릭 벤틀릭·김진식, 2018) 또는 예술의 정치적 모더니즘의 기획으로(Rodowick, 1988/1999) 분류된다.


하지만 자기 반영의 예술 형식이 전체주의와 부르주아 예술에 대한 저항전략으로 도출되었음도 불구하고, 현실은 그것이 콘텐츠의 상품성을 고양시키는 방법으로 활용되는 측면이 훨씬 강하다. OTT 서사극은 개인이 처한 무자비한 현실을 드러내 보이지만, 어떤 저항정신을 고양하기보다 전세계 각기 다른 수용자들이 그 세계에 몰입하도록 하는데 더 기여하는 듯 보인다. 일괄출시를 통한 몰아보기의 유도에서 그 혐의를 둘 수 있을 것이다. 플랫폼 자본인 넷플릭스는 자신들의 컬트적 서사극 형식과 서비스를 ‘텔레비전의 미래’(the future of television)라고 보았다. 텔레비전의 미래라는 선언은 단순한 미사여구가 아니다. 그것은 넷플릭스가 서사극 형식과 몰아보기를 통해 각기 다른 수용자의 취향에 대응할 수 있다는 확고한 선언이다. OTT는 생소화를 통한 자기반영의 서사극 정신과 헐리우드식 볼거리로서 서사영화를 상업적으로 결합하여 생소화된 볼거리를 낳았을 뿐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어 보인다. 


그렇다고 House of Cards나 Orange Is The New Black과 같이 시작에서부터 최근까지 생소화와 자기반영의 요소를 강조하는 OTT 콘텐츠를 단순히 전래의 드라마 연구 프레임으로만 고찰할 수는 없다. 위 두 작품은 넷플릭스의 초기 오리지널 콘텐츠로서 서술적 자아, 정면 응시, 논평 등 각종 생소화 기법과 백악관, 교도소 등 우리가 잘 알지 못할 뿐 아니라 다른 한편으로는 금기시되어 온 세계의 진실에 대해 생각하도록 촉구한다. 고품질 서사물에서 흔히 보이는 서사적 복잡성(narrative complexity)도 보인다. 이후 많은 OTT 서사극은 어떤 상황에 처한 등장인물을 통해 삶, 우주, 자연, 생존, 역사 등 인간의 여러 주제에 대해 생각할 여지를 제공한다. House of Cards가 백악관을 알레고리 삼아 권력세계의 민낮을 보여준다면, Orange Is The New Black은 교도소를 알레고리 삼아 인종과 성, 직업, 취향 등에 대한 편견과 모순을 정교하게 드러내 보인다.  


이 연구는 넷플릭스와 애플TV플러스의 오리지널 서사극 <킹덤>, <오징어게임>, <지옥>, <파친코>를 관통하는 플랫폼 리얼리즘의 세계에 대해 고찰한다. 디지털화는 미디어와 서사적 세계를 단순히 고화질로만 바꾸지 않았고, 디지털 전환(DT)은 기존의 드라마를 단순 재생산하는데 그치지 않았다. 21세기 문화산업에서 미디어 형식은 채널이 아닌 플랫폼일뿐더러 그 콘텐츠 형식도 더 이상 기존의 텔레비전 드라마와 같지 않다. 이른바 TV 4.0은 이전의 1.0에서 3.0까지 텔레비전의 외연을 확장해 온 것과 질적으로 다른 미디어 전환기이다(Jenner, 2016; Pearson, 2011). 그것은 1990년대 이래 텔레비전이 기술진화와 콘텐츠 전략에 힘입어 도달하게 된 양질의 TV(quality TV) 또는 영화적 TV(cinematic TV) 시대의 도래를 뜻한다. 이제 문화산업과 학계는 플랫폼에서 영토화하고 있는 이 새로운 미학에 대해 생각해 볼 때이다. 


이 글의 질문은 이러하다. 서사극이란 무엇이고 영상 미학의 역사에서 어떻게 위치하는가? 플랫폼 리얼리즘은 어떻게 생성되었는가? <킹덤>, <오징어게임>, <지옥>, <파친코>는 어떤 서사극으로 분석되는가? OTT와 서사극의 관계는 어떻게 설명되는가? 글로벌 OTT의 대표적인 콘텐츠가 태동하기까지 자기 반영의 서사극과 텔레비전의 진화를 설명하고, 주요 콘텐츠를 서사극 차원에서 분석하여 플랫폼 리얼리즘의 실체를 윤곽짓고자 한다. 


#OTT, #플랫폼 리얼리즘, #넷플릭스, #서사극, #오징어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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