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 제도화에 대하여
1980년대 초반 커뮤니케이션 기술 혁신과 미디어 제도의 문제를 언론자유의 시각에서 설파한 풀(Pool, 1983) 교수는 미래의 커뮤니케이션이 인공지능으로 인해 현격하게 달라질 것이라는 선구자적 진단을 내린 바 있다. 그러면서 21세기 전자 정보 네트워크가 자유를 신장시킬지 오히려 구속할지는 인간의 정치적 노력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이보다 더 통찰력있는 진단이 있을까? 인간의 선택은 늘 정치적이었고,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사회적 사용은 그 전형이었다. 문제는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 진단이 있은지(WEF, 2016) 한참이 지나고 있음에도, 우리는 여전히 신문과 방송 패러다임의 자장 안에 머물러 있다. 이전 미디어에 기반하여 뉴 미디어를 지각하는 것이 순리처럼 보이지만 현실은 이미 그 이상의 사고를 요구하고 있다.
뉴미디어 제도화 논의의 초점은 이른바 OTT의 정의와 규제체계의 문제, 규제기관 정비의 문제로 모아진다. 올해 5월에 국회를 통과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은 OTT를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로 보고, 이를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제2조 제12호에 따른 비디오물 등 동영상 콘텐츠를 제공하는 부가통신역무”라고 정의한 바 있다. 그렇다고 그 논의가 종결된 것은 아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시청각미디어법’ 제정을, 문화체육관광부는 「영상진흥기본법」 개정을 예고하고 있다. 이들 기관들은 모두 자신들의 관할 하에서 OTT를 정의하려 한다. 하지만 OTT가 정확하게 무엇인지(정의), 그 역사적 기원과 진화과정은 어떠한지(역사성), 더 나아가 디지털 트윈이나 메타버스 같은 미래 미디어 환경과의 적용가능성(확장성)은 어떤지에 대해 체계적인 설명을 제공하지는 못하고 있다. 1950년대 중반까지 텔레비전을 “활동사진이 붙은 라디오”로 생각했던 것을 떠올리면(동아일보, 1956. 5. 14), 새로운 성격의 미디어를 제도화하는데 기존의 인지체계가 얼마나 강력하게 작동하는지 새삼 알게 된다.
물론 미디어 커뮤니케이션과 행정학, 법학 분야는 글로벌 플랫폼 시대에도 여전히 중요한 공공성 문제,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에 적합한 수평적 규제의 필요성과 그 방안,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규제기관 체계 등을 제안하고 있다. 하지만 당면문제에 대한 조언을 넘어서는 지적 통찰과 지혜는 미흡해 보인다. 무엇보다 레거시 미디어의 디지털화와 다른 경로에서 생겨나고 성장하는 플랫폼의 미디어 형식, 그 콘텐츠와 수용활동 등을 체계적으로 해부하고 통찰하려는 시도가 아쉽다. 때로는 각기 다른 성격의 플랫폼을 OTT라는 용어 하나로 뭉뚱그려 설명하기도 한다. 우리는 지금 OTT 담론 과잉의 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같은 오류는 특정 용어가 지칭하는 미디어 풍경과 법제도의 역사적 기원 및 그 여정을 성찰하지 않기 때문이다.
21세기 미디어는 지상파, 케이블, 위성, IPTV와 같이 물리적 네트워크와 강하게 결부된 전자 미디어와 콘텐츠가 분리(decoupling)되어 구축된 새로운 서비스 영역의 세계이다. 그 안에 미학적이고 창작적인 동영상 서비스가 있는가 하면 소통을 위해 개개인이 참여하는 서비스도 있다. 지칭컨대 그 미디어 형식은 전래의 ‘채널’이 아닌 ‘플랫폼’이다. 전자를 지우고 그 위에 쌓아 올린 것이 아니라, 전자와 다른 경로의 디지털화와 디지털 전환을 밟으며 등장한 것이다. 둘 다 디지털 미디어지만 디지털화의 경로가 다르다. 전자가 시공간적으로 현실과 동기화되어 있다면 후자는 그로부터 자유롭다. 전자는 보편적 접근이 후자는 선택적 접근이, 전자는 국경 안에서 후자는 글로컬 단위에서, 전자는 계획된 흐름을 후자는 생성적 흐름을, 전자는 시청률을 후자는 가입자 수 논리를 따른다. 전자가 기획과 생산, 유통의 수직적 통합을 지향한다면, 후자는 그런 전략 위에 현지(local)와 지역(region)을 수평적으로 통합하고자 한다. 채널의 범주를 넘어선 미디어를 사고해야 하는 이유이다.
그렇게 보면, 이제 인류는 디지털 전환의 경로를 타고 문화(생산)의 플랫폼화(platformization of culture) 국면에 들어선 것처럼 보인다(Nieborg & Poell, 2018 참조). 문화의 플랫폼화는 인쇄기술의 보급으로 인해 더 이상 과거로 회귀할 수도, 할 필요도 없어진 문화의 미디어화(mediazation of culture)만큼이나 본질적인 변화일 지도 모른다((Thompson, 1995). 사실 유통, 교통, 노동, 교육, 의료, 방역, 여행 등 인간행위를 데이터로 산출하는 모든 영역이 플랫폼 산업으로 전환되고 있다. 거기에 취향과 욕망, 이데올로기를 다루는 미디어가 포함되어 있음은 자명한 이치다. 이제 미디어는 신문, 방송, 영화, 통신 등 기존의 역무를 단순 붕괴시키는 것을 넘어 인터넷 환경 안에서 그 어떤 커뮤니케이션 서비스도 가능한 것으로 통합되고 있다. 미디어 융합의 단계가 전자적 출판(electronic publishing) 개념이 제시한 역무의 붕괴를 넘어 역무의 해체에 이르렀다.
2) 인터넷 모델의 탐색: 플랫폼 정보서비스의 제도적 프레임
이 연구는 넷플릭스와 유튜브로 시작해 디즈니플러스, 애플TV플러스 등 기존의 미디어 지형으로부터 분리된 채 성장하는 (동영상) 플랫폼-미디어에 대한 제도적 이해를 위한 지평을 검토한다. 논의의 핵심은 글로벌 플랫폼, 엄밀히 말하면 범용 인터넷에서 커뮤니케이션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체의 플랫폼-미디어를 기존의 신문 모델, 방송 모델, 영화(관) 모델, 그리고 통신 모델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인터넷 모델’(internet model)로 논증하는 것이다. 인터넷 모델은 인터넷 네트워크에 기반한 플랫폼-미디어가 기존의 채널-미디어 서비스 경계와 무관하게 형성된 커뮤니케이션 구조를 일컫는다. 레거시 미디어의 콘텐츠 문법을 차용하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드라마니 영화니 하는 기존의 콘텐츠 형식과 미디어 형식으로 정의하기 힘든 새로운 서비스 영역이다.
플랫폼-미디어는 플랫폼의 기본적인 특성에 기반하여 커뮤니케이션을 수행한다. 현대사회에서 플랫폼은 특정한 규칙과 기준으로 설정된 연결된 공간에서 핵심적인 수단과 서비스를 제공하여 상호의존적인 생산자와 소비자 간에 교환을 촉진함으로써 어떤 가치를 창출하는 비즈니스 형태이다(Moazed & Johnson, 2016). 그렇게 보면 플랫폼-미디어는 기존의 언론-미디어 또는 채널-미디어와 달리, 이용자들의 플랫폼 참여 활동에 대한 계산가능성이 생산자 측의 알고리즘적 자동화와 상호작용하여 그 결과로 작동하는 탈언론의 미디어이다(임종수, 2017). 이는 초기 이메일이나 홈페이지, DMB, 디지털TV처럼 새로운 기술임에도 여전히 레거시 미디어 모델을 따랐던 기존의 뉴미디어(new media)와도 다르다. 디지털 특유의 수적 재현과 자동화, 모듈성, 가변성, 부호변환 등 인간의 창조적 활동을 돕는 요소를 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Manovich, 2002 참조). 그것은 차라리 생산자와 소비자가 통합된 이른바 뉴 뉴미디어(new new media)의 형식에 가깝다(Levinson, 2009). 플랫폼-미디어는 클라우드 컴퓨팅과 스트리밍이라는 문화기술(cultural technology)이 결합된 자동화된 미디어(automated media)(Napoli, 2014), 또는 알고리즘 미디어(algorithmic media)(Levy, 2015)이다.
본문에서 자세히 다루겠지만, 인터넷 모델은 상호접속(interconnection)과 차별금지(nondiscrimination)라는 인터넷 정신에 입각해(Saltzer, Reed & Clark, 1984) 인류가 개발해온 다양한 콘텐츠를 플랫폼 형식에 맞게 서비스하는 미디어 체계를 일컫는다. 역사적으로 이는 공중통신 커뮤니케이션(telecommunication)에 컴퓨터 처리(computing process)가 가해진 것으로, 1960년대 이후 세 차례의 컴퓨터 심리(computer inquiry)의 결과로 도달한 부가통신 서비스(enhanced service)에 대한 제도적 관할이다(Cannon, 2003). 기술문명사적으로는 신문방송이라는 표상적 미디어가 알고리즘적 분기(algorithmic turn)(Uricchio, 2011), 문화의 복잡계적 분기(complexity turn)(Urry, 2005)로 전환된 것이다. 따라서 인터넷 모델은 신문(언론의 자유)과 방송(공공성), 영화(등급제), 통신(보편적 서비스) 같은 20세기 레거시 미디어에 그 뿌리를 두면서도, 1990년대 중반 인터넷의 대중적 성장과 규제완화(deregulation)의 분위기 속에서 정립된 ‘정보서비스’(information services)라는 미디어 체계를 지칭한다.
미디어 법제의 역사에서 정보서비스는 미국법상으로 1996년 개정 커뮤니케이션법(Communication Act) 상의 Title Ⅰ의 규율 대상이 되며, 우리 법제에서는 전기통신사업법상의 부가통신역무에 해당한다. 따라서 OTT로 통칭되는 플랫폼-미디어의 제도적 이름은 ‘플랫폼 정보서비스’이다. 플랫폼 정보서비스는 양 법제 모두 시장 진입과 사업 수행상의 문제에 대해 직접적인 국가 규제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영역이다. 하지만 디지털 플랫폼이 일상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급격하게 커졌을 뿐 아니라, 이러한 플랫폼 정보서비스가 미디어 소비의 관문이자 무대가 되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이제 더 이상 제도 바깥에 방치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
산업적으로도 마찬가지이다. 2010여년까지 플랫폼 정보서비스는 방송통신 융합의 잠정적 가능태였지만, 지금은 디지털화와 디지털 전환이 몰고 온 캐즘(Chasm) 너머의 지배적인 미디어 산업태이다. 플랫폼 정보서비스로의 분기는 100mbps의 초고속인터넷이 현실화된 2005년 이후 유튜브, 아마존프라임비디오, 넷플릭스 등이 등장하고, 이후 디바이스, 네트워크, 클라우드, 심지어 비즈니스 모델까지 디지털 전환이 완료된 2017년에 이르기까지의 일이다. 미디어 시장은 이 시기에 레거시 미디어와 플랫폼-미디어 간에 골든크로스가 발생했다(방송통신위원회, 2016, 2018). 이 시기 미디어는 범용 인터넷 상의 클라우드 컴퓨팅이 주도하는 산업 플랫폼(industry platform)이 지배적인 사업자가 되었다(claffy & Clark, 2014). 물리적 네트워크별로 분리된 채 성장하던 레거시 미디어와 달리, 인터넷 범용 네트워크 상의 주요 행위자로서 플랫폼 정보서비스가 미디어 기능을 수행하게 된 것이다.
문제는 플랫폼 정보서비스를 어떻게 제도화할 것인가이다. 무엇보다 기존의 폐쇄적인 규제체계를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플랫폼 정보서비스를 이용자에게 전달하는 방식이 희소한 주파수가 아닌 인터넷 범용 네트워크를 통해서라는 점(곽동균 외, 2019; 도준호, 2022, 방송통신위원회, 2020)과 전달의 매개가 되는 인터넷이 본질상 자유로운 접속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규제는 최대한 신중함이 요구된다. 또한 플랫폼 정보서비스의 실현 과정에서 가치사슬의 복잡성(선지원, 2022) 및 플랫폼상 다면적인 성격을 가진 다수의 주체가 관련된다는 점에서 볼 때(예컨대 플랫폼 정보서비스에 콘텐츠를 업로드하는 주체는 통신서비스의 이용자이자 콘텐츠의 공급자로서의 역할을 한다) 획일적인 규율은 결코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이제 필요한 것은 플랫폼 정보서비스가 가지는 실질적인 영향력을 직시하면서도, 그 자율성을 해치지 않을 수 있는 새로운 차원의 제도적 프레임을 모색하는 것이다.
플랫폼 정보서비스에 적합한 규제 프레임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점이 고려되어야 한다. 첫째로, 인터넷 모델과 미디어 분야의 공통적인 성격으로서 자율성의 확보가 중요하다. 즉, 행위자들의 표현의 자유와 창작의 자유를 존중해야 하며, 당사자들의 자율을 바탕으로 한 의사 결정과 행위 규범의 정립이 있어야 할 것이다. 두 번째로는 관련 기술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특정 기술의 이용과 발달에 장해를 일으키지 않는 기술 중립성의 고려가 필요하다. 규제가 특정 기술의 이용과 개발에 부당하게 간섭하는 일은 특히 지능정보기술의 활용 가능성이 높은 미디어 플랫폼 분야에서 지양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다양성이라는 가치를 존중할 필요가 있다. 미디어의 다양성은 사회 공동체의 정치적․문화적 의사결정의 건전성을 지키기 위한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경직된 규제체계와 과도한 진입규제가 미디어 다양성을 해칠 수 있기 때문에, 플랫폼 정보서비스를 통해 제공되는 미디어 서비스들이 다양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제 정책상의 배려가 필요하다.
플랫폼 정보서비스의 규제 논의는 이러한 요소들을 염두에 두고, 해당 서비스의 성격에 부합하는 책임 있는 자율규제를 실현하는 방향으로 이어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플랫폼 정보서비스는 자율규제의 적합성 요건(선지원, 2021)을 대체로 충족하는, 자율규제에 적합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이하에서는 과거 라디오에서 텔레비전, 그리고 지금의 인터넷 정보서비스에 이르기까지 전자적 미디어의 역사적 전개 과정과 그 풍경을 검토하고, 플랫폼 정보서비스에 적합한 인터넷 모델의 타당성에 대해 살펴본다. 특히, 미디어의 성격에 비추어 적합한 규제 형태로 보이는 자율규제가 실질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필요한 사항들을 점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