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중간계>와 불쾌한 골짜기

by JSL

2025년 10월 15일 영화 <중간계>가 개봉했다. 개봉 2주일째 성적은 그리 좋지 않다. 누적 관객수 2.5만명, 실관람객 평점 6.37(네티즌 평점 5.33) 수준의 범작 또는 그 이하이다. 하지만 <중간계>는 영화사적으로 고찰되어야 할 영화임에 틀림없다. 영상 표현의 상당 부문을 AI 영상을 썼기 때문이다. 중간계는 불교에서 이승과 저승 사이를 지칭하는데, 거기에 존재한다고 여겨지는 크리처와 몇몇 배경을 AI로 합성한 것이다. 그 전에도 AI를 활용하여 캐릭터를 만든 경우가 있었지만, 캐릭터와 배경의 상당부문을 기존의 CG가 아닌 AI 생성물(정확하게는 AI 기술과 VFX 기술을 결합한)로, 그것도 장편 상업영화에 접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중간계>는 <범죄도시>로 유명한 강윤성 감독의 작품인데, 그의 설명에 따르면 촬영에서 개봉까지 약 7개월이 걸렸다고 한다. CG로는 4~5일 걸릴 장면이 1~2시간 만에 완성되어 기술 효율 면에서 압도적이라는 설명이다. 다만 실사와 AI 파트를 한 장면에 담지 못하여 분할 촬영을 하는 수고는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짧은 기간 동안 동영상 생성 AI에 엄청난 기술 진보가 있었는데, 가령 처음 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만 해도 캐릭터를 움직이는 기술이 미약하기 그지 없었는데 제작되는 동안 걷기는 물론 날기, 옆장면 등을 표현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세간의 평이 부정적인 이유는 왜일까?



이같은 작업이 ‘영화의 미래’라는 제작자와 평단의 진단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다. 저예산에 급하게 작업해서인지 생성 AI 특유의 인공적 그래픽과 함께 움직임이나 픽셀 디테일 등이 조악하다는 평이다. 뿐만 아니라 배우의 연기와 AI 캐릭터 간의 상호작용이 잘 맞지 않아 연기의 감정 전달이 미흡하다는 지적도 많았다. 어떤 영화 비평 유튜버는 유튜버들이 만들어낸 ‘이탈리안 브레인 롯’(IBR)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악평을 남겼다. 전체 러닝타임(RT)이 61분이어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찰라에 끝나버리는 것(to be continued 자막과 함께) 역시 그런 악평의 이유였을 것이다. 이래저래 ‘영화적’이지 않았다는 평이다.


이 ‘사건’을 어떻게 보는게 합리적일까? 먼저 이 영화가 통신사 KT의 기획으로 시작되었다는 점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기술기업이 투자하고 기획하는 영화라! 강윤성 감독에 따르면, <중간계>에 대한 아이디어는 일찍부터 있었는데, 마침 KT로부터 10분짜리 짧은 AI 영상을 만들면 어떻겠냐는 제안이 와서 이를 장편영화로 제작했다고 한다. 거기에 AI 생성은 지난해 ‘제1회 두바이 국제 AI 영화제’(AIFF)에서 3분 분량의 One more pumpkin으로 대상을 받은 권한솔 감독이 맡았다. 1년 전과 비교하면 분명 장족의 발전이다. 하지만 AI 영상을 상업영화에 쓰기에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은 듯 하다. 표현의 한계를 확장했다는 기술 진보의 의의에도 불구하고, 영화적 완성도 면에서 인공물 특유의 이물감을 극복해야 하는 숙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AI 영화’로 분류된 영화와 ‘AI 기술이 적용된 상업영화’를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AI 영화인 One more pumpkin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던 것이 AI 기술을 적용한 <중간계>에서 문제가 된 것은 AI 기술이 (상업적) 영화 관습에 성공적으로 재매개(remediation)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재매개는 새로운 미디어(매개)가 다른 미디어(매개)의 표현 양식을 차용 또는 개선하는 것을 말한다(Bolter & Grusin, 1999). TV는 기존의 라디오를 영상기술로 재매개한 것이다. 이때 새로운 매개에는 이전의 매개에서 볼 수 없는 매개되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의 비매개성(immediacy)과, 그럼에도 그 새로운 매개가 매개하고 있다는 흔적을 남기는 하이퍼매개성(hypermediacy)이 공존한다. 새로운 기술이 재매개에 성공하려면, 하이퍼매개성의 전제 안에서 비매개성이 용인되어야 한다. 화려한 CG가 펼쳐내는 장면은 현실에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것이지만, 그 하이퍼매개성이 ‘영화적 상상력’이라는 비매개성으로 용인되기 때문에 수십년 동안 사용되어 왔다.


그런 점에서 보면, 영화 <중간계>는 AI 캐릭터와 배경의 비매개성이 실현되지 않았는데, 이는 AI 방식의 하이퍼매개성이 영화 안에서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화적 상상력을 기대하며 영화관을 찾은 관객에게 AI 영상의 하이퍼매개성(캐릭터와 배경 등이 AI가 만들어졌다고 느끼는)이 이물감으로 작동되었던 것이다. AI 영상의 하이퍼매개성에 대한 힌트 또는 면역없이 비매개성이 어필할 것이라 기대한 패착이다. 유튜브나 틱톡에도 수많은 AI 영상이 있지만 영화관에서만큼 이물감을 주지는 않는다. 이러한 이물감은 영화적 상상력을 기대하며 비용과 시간을 들여 입장한 관객에게 당혹감을 넘어 배신의 감정을 불러일으켰으리라. 결국, 2025년 현재의 생성 AI의 표현력은 종래의 CG 수준의 매개성을 성공적으로 차용하거나 개선하지 못한 것이다.


우리가 유튜브에서 온갖 종류의 동영상을 별 저항없이 소비하는 것은 유튜브 공간이 다양한 영상 양식에 관대한 플랫폼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AI 영상도 포함한다. 이때 (적어도 지금까지는) AI 영상은 자신이 AI로 만든 것임을 드러낼 때 오히려 더 잘 소비된다. 우리가 인간과 똑같은(하지만 결코 똑같지 않은) 크기의 휴머노이드보다 과도하게 ‘머리가 큰’ 휴머노이드에 이질감을 느끼지 않는 것과 같다. 여기에는 무료라는 도덕경제적 측면도 크게 한 몫 한다. 하지만 영화관은 ‘영화적 경험’이 충족되어야 하는 공간이다. 영화관에서는 새로운 기술이 구현하는 실재성이 최소한 기존의 CG 수준이거나 그 이상이어야 한다. 지금까지 영화는 하이퍼매개성을 성공적으로 숨기는 재매개 기술로 영화적 상상력을 키워 왔다. ‘머리가 큰’ 느낌을 주는 AI 캐릭터와 배경은 비록 그것이 본격적으로 AI를 접목한 실험적 작품이라 할지라도 영화에서는 양해될 수 없다.


결국, 생성 AI 특유의 표현 방식이 가져오는 인공적 느낌은 (아직까지) 영화라는 문화 장르에서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로 작동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영화 <중간계>는 AI 기술의 재매개적 가능성을 탐색하는 실험작이었으나, 영화관에서 기대되는 ‘영화적 리얼리티’의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한 ‘실패한 AI 영화’로 평가된다. AI 특유의 하이퍼매개적 흔적(인공적인 질감, 낮은 퀄리티, 실사와의 비조화)이 ‘기술의 흔적을 숨기는’ 기존의 CG를 성공적으로 재매개해 내지 못한 것이다. 영화 제목처럼 실사와 종래의 CG로 가는 ‘중간쯤’ 어디에 지금의 영화-AI 기술이 있다. 하지만 지금의 기술 진보 속도로 보면, 그 실패가 미래마저 결정한 것은 아는 듯 보인다.


개인적으로 AI가 CG를 대치하는 역치의 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여전히 필름 느낌의 전통 ‘영화의 맛’을 강조하는 부류도 있지만, 영화만큼 상업적 영향을 많이 받는 예술도 없다. 주지하듯이, 생성 AI는 비용 면에서는 어마어마한 이점이 있다. 강윤성 감독은 종래의 방식으로 <중간계>를 만들었다면 약 80~90억원의 제작비가 들었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노규민, 2025). 하지만 손익 분기점이 20만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중간계> 총 제작비는 약 15억원으로 추산된다(KT에서 5억원 투자받았지만 정확한 예산은 알려져 있지 않다). 2026년 방송되는 TV 드라마 <대왕문무>도 AI 영상을 적극적으로 사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제작비용 때문이다. 결국, 영화에 적용되는 AI 기술의 재매개성이 개선된다면, 그 전에 군중 씬이나 거대한 자연 씬처럼 인공 느낌이 덜한 부문에 한정하여 AI 영상을 사용한다면, 저비용 블록버스터라는 새로운 기회가 현실화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제 우리는 유튜브는 물론이거니와 영화와 TV 드라마 같은 전통적인 서사마저도 AI의 재매개성이 유도해 내는 시뮬라시옹 서사의 지평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지금 영상산업은 영화 또는 드라마적 상상력에 AI의 상상력을 접목하는 실험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미 유튜브에서는 시뮬라시옹 서사라 할 수 있는 많은 콘텐츠가 소비되고 있다. 이 책은 그런 시뮬라시옹 서사의 기술적 문화적 논리와 그 존재론, 수용론에 대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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