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방송 100년(?)에 즈음하여...
1. 서론: 방송, TV에서 OTT로
이 글은 2027년을 한국 방송 100년으로 기념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한국 방송 100년’ 담론에 대한 입장과 평가는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연초에 ‘방송 100년 우리는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에 대한 원고 청탁을 받았을 때, 나는 ‘방송 100년’보다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에 더 눈길이 갔다. 한 세기의 의미를 논하기에는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이 너무나 엄혹해서다. 축복같은 K-컬처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미디어 산업은 총체적 난국에 빠져 있다.
하지만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라는 말은 넌센스다. 나는 이 글의 부제를 ‘우리는 무엇을 준비할 수 있는가’로 고쳐 역제안했다. ‘무엇’을 알았음에도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무엇을 알면 준비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그럼에도 세상은 마치 그럴 것처럼 말한다. 좋은 일자리를 꿰찬 똑똑한 미디어 종사자들은 변화를 눈치채고 자신이 그 변화에 올라타 있음을 알리는 숱한 말들을 쏟아내지만 행동하지는 않는다.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변화의 움직임은 늘 새로운 곳에서 일어난다. “새 술은 새 부대”라는 말처럼, 익숙하지만 신축성이 떨어진 헌 부대는 새 술의 팽창력을 견디지 못한다.
이른바 ‘K-컬처’가 전래없는 성과를 내고 있지만, ‘K-컬처 산업’은 총체적인 난국에 빠져있다. <케데헌>으로 흥분하던 지난해, 영국의 The Guardian은 K-컬처 산업이 “거의 붕괴”(almost collapsed) 상태라는 제하의 특집기사를 연말 결산으로 써냈다(Rashid, 2025). 전 세계에 한국 문화가 어필하고 있음에도, 내부적으로 산업의 본질이 급변하고 불확실성에 직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OTT의 국제분업 체계에서 가성비 넘치는 한국 콘텐츠가 환호받지만, 역설적으로 한국 내부의 미디어 산업 생태계는 무너져 내리고 있다. 높아진 제작비로 인해 자체 콘텐츠 생산은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고, 설사 어떻게 해서 콘텐츠를 만들더라도 문화 수용자들의 높아진 선구안에 들기 어렵다. 국민국가 내 대중매체로서 TV가 개인매체이자 글로벌 매체인 OTT로 전환해 가는 것에 대한 재정적, 전략적 대응의 부재 때문이다.
이 글은 ‘방송’이라는 타이틀 안에서 블랙홀처럼 모든 창작 산업 요소를 빨아들이는 OTT를 이해하는 인식의 틀을 마련하고자 한다. 무엇을 준비할 수 있는지 알기 위해서이다. 이를 위해 한 세기 동안 대중문화의 중심지였던 TV가 OTT로 전환해 가는 것을 미디어, 콘텐츠, 수용 양식(mode)의 변화와 그 결과로 기술한다. 가장 널리 인용되는 ‘콘텐츠 양식’은 시청자에게 가장 유효하게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표현하는 발화 양식(mode of address)을 뜻한다. 주지하듯이, TV는 공적 발화(public address)로서 대중적 관심과 의제, 가족 시청자, 대량 소비 등에 최적화된 미디어 형식이었다(Corner, 1995). 그렇게 보면 ‘미디어 양식’은 그같은 콘텐츠의 발화 양식에 맞는 미디어의 존재 방식을, ‘수용 양식’은 그런 미디어와 콘텐츠를 소비하는데 적합한 행동 양식을 말한다. 종래의 TV는 편성과 소비 모두에서 시공간적 자율성(disembedding)이라는 디지털 기술의 가용성으로 그 양식을 바꿔 오다가(임종수, 2015), 급기야 클라우드와 스트리밍 문화기술이 지배하는 정동의 컴퓨팅(affective computing)이 작동하는 OTT로 전환했거나 전환하고 있다.
민주주의와 해방의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2011/2024)는 “양식은 한 시대 한 민족의 삶의 표현이다”라고 정의한다(p.224). 그의 언술은 미디어가 생산자의 제작논리에 입각한 전통적인 ‘재현 체계’(representation)에서 개인 더 나아가 한 시대의 감각논리가 선행적으로 작동하는 ‘미학적 체계’(aisthesis)임을 강조한다. 이 시대의 미디어는 일상적 삶과 동떨어진 독자적 영역이 아니라 개개인마다 접속하고 만나고 의견을 표출하고 행동하는 ‘감각적 토대’이다. 미디어는 어느 한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도처에 있으면서 스스로를 조직화한다. 이 시대는 인간과 인간, 인간과 비인간 행위자 사이의 복잡한 연결로서 모든 사회적인 것을 구성해 낸다. 방송 100년에 대한 회고와 미래 전망은 그러한 인식틀을 요구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TV가 OTT로 전환함에 따라 미디어-콘텐츠-수용(자) 모두에서 그 양식이 바뀌고 있다. 이 글은 미디어 양식에서 ‘흐름의 미디어’(flow media)가 ‘인터페이스 미디어’(interface media)로, 콘텐츠 양식에서 ‘드라마’가 ‘서사극’으로, 수용(자) 양식에서 ‘정기적 시청’에서 ‘몰아보기’로, 수용(자)에서 ‘국민국가 시청자’에서 ‘글로컬 시청자’로, 그 결과, 현대 대중문화가 대중매체가 이끌어왔던 ‘공통문화’에서 ‘보편문화’로 재편된다는 점을 주장한다.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이러한 총체적 변화는 글로벌 OTT가 ‘현지분리창작’(local opt-out creation)이라는 국제 분업체계로 산업을 구조화한 결과물이다.
2. 미디어 양식: 흐름의 미디어에서 인터페이스 미디어로
미디어의 디지털 전환이 급가속하던 2016년 OTT 연구자 머라이케 제너(M. Jenner)는 텔레비전의 역사적 전개를 TV1.0에서 TV3.0으로 살펴본 그간의 논의(Rogers, Epstein & Reeves, 2002; Pearson, 2011)를 토대로, OTT 서비스를 TV의 범주로 정의하는 것이 적절한지 검토한다. 논의의 핵심은 단순한 VOD 서비스에 머물렀던 멀티플랫포밍과 질적으로 구분되는 OTT 고유의 서비스, 그리고 그것을 지칭하는 명칭으로서 ‘방송’(broadcasting)이라는 용어의 적절성이었다. 결과적으로, 그는 OTT가 방송으로 지칭되지만, 콘텐츠 생산과 제공은 물론 출시 방식, 소비활동 등 전 분야가 그 전과 질적으로 구분되는 TV4.0임을 강조한다. TV4.0은 포스트-포스트모던 자본주의(post-postmodern capitalism) 환경에 어울리는 텔레비전 양식이다.
TV1.0은 지상파 네트워크 독과점 시대를 말한다. 이 시기의 방송 프로그램은 견고하게 확립된 산업자본주의의 포디즘적 생산공정에 입각해 생산, 유통, 소비된다. 근대적 미디어 대중문화의 시작을 열었다. TV2.0은 케이블TV가 지상파 독과점을 밀어내고 다채널 환경을 제공하면서 ‘양질의 TV’(quality TV)로 마무리되던 시기이다(McCabe & Akass, 2007). 개별 시청자의 요구에 부응한다는 점에서 포스트모던 자본주의적 방송 서비스라고 할 수 있다. TV3.0은 갖가지 디지털 주변 장치가 텔레비전과 결합하면서 흐름의 미디어로서 텔레비전의 위상이 근본적인 도전에 직면하게 된 시기이다(Kompare, 2006). 이 시기는 ‘첫 번째 디지털 텔레비전 시대’라고도 불린다(Johnson, 2007). 이즈음 포스트 TV(post TV)라는 용어가 빈번히 사용된다.
TV4.0은 클라우드와 스트리밍의 문화기술이 기존의 TV는 물론 그와 결합된 각종 주변 장치를 밀어내고 VOD, 스트리밍, OTT라는 이름의 서비스로 대체되는 시기이며, ‘개인화’가 이를 대표하는 키워드이다. 앞서 설명했듯이, TV4.0은 TV1.0에서 디지털화가 진행된 TV3.0까지의 ‘채널-미디어’ 형식과 다른, 수용자(클라이언트)와 플랫폼(서버) 간의 직접적인 연결관계로 서비스되는(connected service) ‘플랫폼-미디어’이다(임종수, 2017). 플랫폼-미디어를 움직이게 하는 정치경제적 작동원리는 앞서 언급한 포스트-포스트모던 자본주의이다. TV2.0에서 시작한 양질의 TV와 TV3.0의 브랜드 자산 개념을 물려받지만, 기술과 미디어 형식, 수용 양식은 그전과 본질적으로 달라졌다. 연결된 상태에 있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나 인종과 국가, 문화를 넘어선 소비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TV4.0은 종래의 텔레비전이 수행해 오던 ‘지금 여기’로부터 자유로워졌다. 개인 수용자를 겨냥한 몰아보기 가능성(bingeability)의 콘텐츠와 그 소비행태가 일반화되었다(Ferchaud, 2020). 플랫폼-미디어는 방송 서비스를 역무의 붕괴를 넘어 역무의 해체, 비선형의 인터넷 규약에 입각한 양방향 커뮤니케이션 서비스로 자리매김했다.
TV4.0, 플랫폼-미디어, OTT는 같은 현상을 다른 논리로 명명한 것이다. 이들 용어는 모두 이 시대의 미디어가 그 종류와 관계없이 ‘흐름의 미디어’가 아닌 ‘인터페이스 미디어’임을 지시한다(임종수, 2022). OTT에서 이용자는 콘텐츠를 선택하기 위해 초기화면 상에서 다양한 브라우징 활동을 한다(작동). 그 화면에는 이용자가 지금까지 수행해 온 시청활동과 연관되거나 플랫폼에 의해 특별히 시청하도록 의도된 콘텐츠가 노출된다. 이용자는 급기야 특정 장르 또는 스타일의 콘텐츠를 시청한다(실행). 그 결과 ‘이용자 경험’으로서 미학적 취향을 향유한다(수용). 이 같은 소비방식은 선형적인 카세트 테이프로 음악을 듣던 종래의 방식과 달리, 디지털 음원을 보고 선택하는 것과 같다. 음악 소비자나 OTT 수용자 모두 전체적인 콘텐츠 구성 속에서 자신의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선택한다.
인터페이스 미디어는 디지털 ‘참여문화’의 논리를 따른다(Jenkins, 2006). OTT 역시 콘텐츠가 자유롭게 흐르고, 미디어와 미디어가 상호협력하며, 이용자가 적극적으로 콘텐츠를 찾아 나서며 가치를 만들어낸다. 인터페이스 미디어는 비유컨대, 고정된 하나의 물줄기가 아니라, 삼각주에 펼쳐져 있는 복잡한 물줄기의 조합과 같다. 기후상태에 따라 그 물줄기가 수시로 바뀌듯, 이용자의 시청활동과 향유 수준에 따라 그 배치는 언제든 유동적으로 변할 수 있다. 자기조직화이다. 요컨대, 기존의 TV가 하나의 채널에서 어느 한 콘텐츠를 일방적으로 밀어내는(push/one way/mono-modal) ‘흐름의 미디어’라면, OTT는 다양한 형식의 쌍방향적 커뮤니케이션 도구에서 수용자가 콘텐츠를 끌어오는(pull/two way/multi modal) ‘인터페이스 미디어’이다.
우리나라는 1961년 KBS TV를 시작으로 1970년대 지상파 황금기를 맞는다(임종수, 2004). 1960년대 후반 ‘지상파 3사’ 체제가 만들어진 이래 1980년대 방송 통폐합으로 상업방송이 사라진 시기도 있었지만, 꾸준히 3사 체제를 유지하면서(언론통폐합이 단행되던 1980년대 이전까지는 KBS, MBC, TBC가, 이후에는 KBS1, KBS2, MBC, 그리고 1990년대 KBS1, KBS2, MBC, SBS) 방송사(광고 판매자) 주도 광고시장의 호황기를 누렸다. 1995년 종합유선방송 서비스를 시작하여 TV2.0 시대를 개막했지만 유료방송이 시장의 주도권을 잡기까지는 20여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 과정에서 2010년 전후 혁신적인 디지털 TV 수상기와 디지털 장비가 가정으로 유입되면서 짧은 기간의 TV3.0이 펼쳐지기도 했다. 하지만 곧바로 TV4.0으로의 변화가 몰아쳤다. 그 결과, 지상파 절대 우위의 미디어 지형은 2015년 처음으로 유료방송이 지상파 전체 시청시간을 넘어서고(방송통신위원회, 2016), 2017년 출범 10년을 맞은 IPTV는 그런 케이블 TV 시장을 넘어선다(방송통신위원회, 2018). 이 과정에서 2016년 도입된 넷플릭스는 한국 서비스 개시 5년만에 지배적인 미디어가 된다.
그렇게 보면, 대한민국의 방송은 비교적 긴 시간 동안 TV1.0 시대를 보내고 TV2.0에서 TV4.0까지 큰 시차없이 급속도로 전환했다고 할 수 있다. 압축 근대화를 떠올릴 만큼 ‘압축 디지털화’ 또는 ‘압축 플랫폼화’의 경향을 볼 수 있다. 하지만 해당 기술에 맞는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기보다 국내 시장 수성을 위한 기술 채택에 더 가까웠다. 지난 수년 사이에 기존의 채널 사업자와 제작사, 기획사 등이 갖가지 합종연횡이 이를 말해준다. 글로벌 시장으로의 진출은 제작 부문에서 이루어졌다. 한국이 넷플릭스 현지(local) 콘텐츠 제작의 전진기지가 된 것이다. 앞서 언급한 한국 미디어 산업의 위기는 외부 변수로 급성장(?)한 제작 부문이 로컬의 채널 및 플랫폼과 글로벌 플랫폼 간에 긴장관계를 유발한 결과이다.
3. 콘텐츠 양식: 드라마에서 서사극으로
OTT 콘텐츠는 기존의 TV 콘텐츠와 어떻게 다른가? 앞서 살펴보았듯이, OTT는 클라우드와 스트리밍의 문화기술이 TV와 영화를 재매개한 것이다. 따라서 OTT는 ‘TV 이후’(after TV)의 텔레비전, 또는 ‘영화 이후’(after cinema)의 영화라 할 수 있다. 사실 2007년 스트리밍 서비스 전후로 이미 TV 이후와 영화 이후에 대한 연구담론이 시작했다(Spigel & Olsson, 2004; Turner & Tay 2009; Pedullà, 2012). OTT는 ‘양질의 TV’ 또는 ‘영화적 TV’(cinematic TV)라는 용어로 이같은 경향을 응축시켰다. 계보학적으로 보면, “영화적 기질로 텔레비전을 생산하는” 양질의 TV 또는 영화적 TV는 1990년대 채널 브랜드 경쟁 시대 때 HBO와 AMC 같은 유료 채널이 주도한 경향이다(Ferchaud, 2020, p.3). 이에 힘입어 텔레비전은 1950년대 텔레비전 황금기(지상파의 시대) 이후 1990년대 다시 한 번 황금기(유료방송의 시대)를 맞았다.
당시 TV 콘텐츠는 1) 완화된 인과관계와 심리적 사실주의, 2) 영화 미학의 도입, 3) 새로운 도전을 통한 성공, 4) 대규모 앙상블 캐스팅, 5) 이전의 사건이나 인물에 대한 언급, 6) 문학적 기원, 7) 사회문화적 비판, 8) 논쟁 유발, 9) 리얼리즘 추구, 10) 비평적 찬사 또는 논란 등을 특징으로 했다(Thompson, 1997, 2003). 1996년 HBO는 ‘It’s Not TV, It’s HBO’라는 캠페인(1996-2009)으로 자신들이 싸구려 TV가 아니라 양질의 TV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Leverette, Ott & Buckley, 2008). 넷플릭스의 콘텐츠 최고 책임자 테드 사란도스(T. Sarandos)는 House of Cards가 출시될 무렵 “우리의 목표는 HBO가 우리가 되기 전에, 우리가 HBO가 되는 것이다”라며(Hass, 2013), 넷플릭스가 스트리밍 영역에서 양질의 TV 전통을 실현하는 서비스임을 명확히 했다.
영화적 TV 또는 양질의 TV의 콘텐츠는 서사극(epic drama)이라 했을 때 보다 명확하게 이해된다. 서사극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영웅서사를 떠올리게 된다. 소박하게는 위기에 처한 가족이나 공동체, 막강한 적군의 위협에 노출된 국가, 심지어 외계 생명체나 물리적 충격을 받게 되는 지구를 구하는 이야기는 너무나 익숙한 헐리우드 영웅서사이다. 헐리우드는 그때그때마다 상징적인 영웅서사를 써 왔는데, 미개한 인디언 또는 흑인들의 범죄, 부패하거나 반사회적인 백인 하위집단, 나치 또는 아랍 민족주의, 베트남이나 북한 공산세력과 맞서는 서사영화가 그것이다.
원래 서사극은 서사시에서 서정시, 이후 합창서정시(릴리코스 코러스)에서 파생된 ‘서사적 연극’을 의미했다(최혜영, 2018). 애초에 시는 한 사람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형식이었다. 이후 기원전 534년 경 디오니소스 제전에서 여러 사람이 이야기를 시연해주는 최초의 드라마가 등장했다. 합창서정시에서 진화했고 장르는 비극이었다. 당시 비극은 슬픈 극이 아니라 트라고디아(합창의 노래), 즉 염소(트라고스)의 노래(아오이디아)였다. 염소로 복장하고 염소 재물을 올리면서 종교적 합창을 한데서 연원했다. 이같은 서사극 형식은 이후 그리스 로마 시대 신탁을 부여받는 신과 영웅의 이야기로(감정의 정화), 그리고 15~16세기 세익스피어 시대에 이르러 사회구조와 인간본성의 충돌 서사(공감과 인식)로 진화한다. 이같은 서사극 전통은 20세기 초 베르톨트 브레히트(B. Brecht)에 이르러 서사극 이론으로 재정립된다.
현대 서사극 형식은 원래 재현하는 이야기 세계에 대한 ‘비판적 수용’을 목적으로 한 것이었다. 이를 위해 채택한 것이 ‘낯설게 하기’였다. 앞서 언급한 1990년대 양질의 TV 실험은 이야기 세계를 낯설게 읽도록 하는 시도들이었다. 하지만 해당 실험과 서사적 장치는 일찍이 영화는 물론 1990년대 TV 드라마가 영화적 TV로 가는 수단으로 활용된 감이 없지 않다. 이러한 창작법은 글로벌 서비스인 OTT에서 국가, 민족, 인종, 종교, 언어 등 문화할인이 될 만한 것을 우회하는 콘텐츠 형식미로 진화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킹덤>과 <오징어게임>이 성공한 2020년대에 들어 영화, 미디어, 예술 분야에서 주목하는 연구 분야이다(임종수, 2023; 박미영, 2023; 구상범, 2025).
서사극은 시청자의 사회문화적 배경과 무관하게 인간의 정동에 호소하는 이야기이다. 그런 서사 내용이나 형식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즐길 수 있다. 맥락적 요소가 강하게 작동하는 민족국가 내 TV 콘텐츠의 서사와 달리, OTT 콘텐츠는 인간 보편의 서사에 주목한다. 그 방식도 보다 직접적이다. 영화 이후 영화의 서사적 특성이 보여주듯(Pedullà, 2012), OTT 콘텐츠는 메시지 전달에 치중하는 말하기 같은 관조적 인식을 위해서가 아니라 충격과 공포, 흥분과 같은 감각적 이미지로 그 형식과 스타일이 바뀌었다. 더 나아가 팬덤을 형성하여 지속적인 시청을 유도하기 위해, 일괄출시와 몰아보기로 인해 더욱 그 가치가 커진 서사적 복잡성(narrative complexity)의 서사이다(Mitttel, 2006). 결국, 넷플릭스는 물론 디즈니+, 애플TV+ 등 글로벌 OTT가 글로벌 시장에 침투하기 용이한 서사 형식이다. OTT의 예술적, 문화산업적 의의는 국경을 넘어 글로벌 수준에서 생산·유통·소비되는 새로운 서사 형식을 개척한 데 있다.
OTT 시리즈물을 서사극으로 인식하는 것은 여러 창작자의 발언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 중에서 애플TV+ <파친코>의 제작자 수휴(Soo Hugh)의 발언은 주목할 만하다. 수휴는 여러 인터뷰에서 TV 시리즈가 영화에 비해 ‘작은 이야기’에 머무르는 것을 경계하는 발언을 수차례 했다(Pickard, 2022; Sun, 2022; Hopewell, 2022). 수휴는 <파친코>가 단순한 가족사가 아니라 거대한 영화적 서사극(big, cinematic epic)으로 불리길 원했다. 따라서 모든 프레임이 영화적이어야 하며, 시청자가 TV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잊게 할 만큼 압도적인 서사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외에 성공하는 OTT 쇼러너들 대부분이 똑같은 취지의 말을 하고 있다. TV가 (영화에 비해) 기술과 서사 모두에서 열등한 미디어라는 20세기적 평가의 정반대에 있는 인식이다(Tuffs, 2014 참조).
요컨대, OTT의 서사극적 지향은 기본적으로 채널-미디어로서 TV의 진화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디지털과 인터넷 네트워크, 클라우드 컴퓨팅과 스트리밍 기술의 가능성에 올라탄 것이 바로 영화적 TV이자 양질의 TV로서 서사극이다. 이는 일일극이 텔레비전 황금기를 열었던 1970년대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그 때와 지금은 미디어 산업 자체가 다르다. 무엇보다 OTT는 글로벌 비즈니스이다. 글로벌 미디어 사업자가 문화할인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전세계 시청자들에게 접근할 수 있는 전략적 판단에 서사극이 있다. 이 문제는 자연스럽게 다음 절의 시청(자) 양식과, 그 다음 절의 정동의 보편문화와 연결된다.
4. 수용(자) 양식
OTT가 수용(자) 양식에 미친 영향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정기적 시청에서 다양한 형태의 몰아보기(binge watching) 시청행동으로, 그리고 그에 수반되는 이른바 서사극적 시청(epic viewing)이라는 차별적인 시청경험이 있다. 다른 하나는 국경 안에서 이루어졌던 국민국가 시청(자)에서 국경을 넘나드는 글로컬 시청(자)(glocal watching)으로 수용자의 지위 변화가 그것이다. 전자는 넷플릭스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곧바로 주목받았던데 반해, 후자는 구체적인 연구를 통해 서서히 밝혀진 사실이다.
1) 정기적 시청에서 몰아보기로
몰아보기는 일괄출시와 함께 OTT를 기존 TV와 가장 차별적이게 만든 것 중 하나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몰아보기를 주 단위의 정기적 시청과 비교되는 ‘과잉 시청’으로(만) 정의한다. 과잉 시청이라고 하면 유튜브에 과몰입하는 상황을 떠올릴 것이다. 우리는 숏폼 콘텐츠를 많은 시간을 들여 연속적으로 시청한다. 하지만 시간적 과잉은 몰아보기를 정의하는 핵심 요소처럼 보이지만, 생각해 보면, 채널-미디어 시대에도 시간적 과잉 시청은 있었다. 최소한 2시간에서 3~4시간에 이르는 스포츠 프로그램 시청이나 이 프로그램에서 저 프로그램을 계속해서 시청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렇다고 우리는 그것을 몰아보기라 말하지는 않았다. OTT가 몰고 온 몰아보기는 과잉 시청과 결부된 ‘특별한 문화 소비’ 행동이라는 점이 지적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몰아보기는 클라우드와 스트리밍 기술이 조건화한 자기 주도적 시청(self-determined viewing) 전략으로 보아야 한다(Horeck & Jenner, 2018). 몰아보기는 일상적 삶을 영위하는 개인이 자기 주도적인 계획에 따라 실행하는 다양한 시청행동, 즉 한꺼번에 보기 외에 이어보기, 따라잡기, 함께보기, 따로보기 등의 전술을 포괄하는 시청전략이다. 즉, 몰아보기는 기성의 가족TV에서 개인TV로의 전환, 그 변형태인 우리TV, 나의TV 등 다양한 순환적 수용경험의 맥락 속에서 고찰되어야 한다(임종수·최세경, 2016). 몰아보기는 독자, 청취자, 시청자로 이어지는 전자 미디어 수용자의 진화(임종수, 2010), 특별히 전자 미디어의 놀라운 신기효과와 집단적 소비 이후 가족미디어에서 개인미디어로 이어지는 미디어의 개인화 과정(Fang, 1987), 근대사회의 기본 단위로 가정에 초점을 맞췄던 유동성의 사사화(mobile privatization)가 사사화된 유동성(privatized mobility)으로 재편되는 탈근대적 현상의 하나로 파악되어야 한다(Spigel, 2001). 그런 점에서 몰아보기는 유권자나 소비자와 비견되는 ‘수용자 시민성’의 관점에서 고찰되어야 하는 문제적 영역이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시민이나 소비자로서뿐만 아니라 미디어 수용의 사회적 지위를 가진 수용자이다. 몰아보기는 주 단위 편성의 정기적이고 대량적이며 수동적인 가족 시청을 대체하는 비정기적이고 개인적이며(때때로 소규모 또는 거대한 규모로 모이기도 하는) 주체적인 미디어 소비활동을 지칭한다.
몰아보기는 시청행동보다 시청경험에서 그 중요성이 더 부각된다. 몰아보기는 어떤 시청경험을 제공하는가? 이는 시청상황에서 보여지는 행동에서 일차적으로 유추할 수 있다. 과거의 텔레비전이 가정 환경에서 주 단위의 분절적이고 정기적으로, 그래서 산만한 시청(distracted TV glance)이었다면(Ellis, 1982), 지금의 OTT 시청은 연속적이고 집중적인 시청이다. 그것은 기존의 컴퓨터나 웹, 스마트폰 이용에서처럼 뚜렷한 목적 달성을 위한 미디어 행동에 가깝다. 다시 말해, OTT 시청 행동은 전례의 TV에서 보여준 전형적인 린백(lean back)과 달리, 컴퓨터나 스마트폰 이용에서 보이는 린포워드(lean forward)에 가깝다. 비록 우리의 몸이 여전히 소파에 드러누워 OTT를 시청할지라도 그것을 대하는 태도는 분명 과거와 다르다. 이는 넷플릭스가 자사의 성공적인 오리지널을 선보인 2013년 프로모션에서 스스로를 “텔레비전의 미래”라고 한 차별적 시청행동과 시청경험이다. OTT 시청자는, 30분 또는 한 시간 단위로 분절된 프로그램, 앞의 프로그램과 완전히 다른 프로그램 또는 광고를 연이어 봐야 하는 정신분산적 TV 시청과 달리, 어느 하나에 몰입하여 장시간 시청하는 몰입적이고 도취적인 시청이다.
“서사극적 시청”(epic viewing)은 이같은 OTT 시청행동에서 비롯되는 시청경험을 지시한다(Baker, 2017/2019, 85쪽). OTT에서 서사극적 시청은 ‘서사극을 시청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아래 인용글에서 보듯이, OTT 환경에서 서사극적 시청은 자기 주도적으로 여러 에피소드를 ‘한꺼번에 과잉 시청’함으로써 얻어지는 ‘몰입적 시청경험’을 일컫는다. 더 나아가 자신의 삶의 태도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도취(transportation)적 시청경험이기도 하다(임종수·김학신, 2025). 이제 우리는 드라마는 물론 다큐멘터리, 예능, 심지어 뉴스마저도 많은 시간을 들여 몰입할 뿐 아니라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 서사극적 시청을 한다. 시청자들은 서사극적 시청의 경험을 얻기 위해 일부러 특정 시리즈가 모두 공개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시청하기도 한다. 심지어 우리는 숏폼 콘텐츠의 연속시청에서도 장시간 몰입하고 도취하는 서사극적 시청을 경험한다.
우리 자신의 시간성에 대한 의식은 항상 “문화적으로 코드화되어”있기 때문에, 문화와 시대 내에서 그리고 그것을 가로질러 나타나는 변화에 영향을 받는다. ... 텔레비전을 연속해서 시청하는 미국 시청자의 70%는 비교컨대 분명히 영화가 – 영상의 규모와 무관하게 - 시간적으로 매우 짧게 느껴지며, 영화의 서사와 등장인물의 전개가 2-3시간 안에 압축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므로 “개인적인 시간성의 고도화와 탁월함”이라는 소백(Sobchack, 1990)의 말은 연속적인 텔레비전 시청에서 새롭고 심지어 확장된 표현을 발견하게 된다. 소백이 특유의 주제와 상징적 특징을 가진 장르로서 서사극에 주목했다면, 지금의 서사극적 시청은 장르를 초월하는 소비양식이며, 우리가 어떤 서사극적 범주에서 그것을 경험할 때 다양한 유형의 프로그램에 걸쳐 뚜렷하게 부각되는 “시간성의 과잉”이다(Baker, 2017/2019, 84-85쪽).
영화는 기본적으로 서사극적 시청 사례였다. 서사극적 시청은 특별히 서사극 장르 영화 관람에서 오는 만족감과 비견된다. 우리는 서사극 장르의 영화에서 2시간 또는 그 이상의 시간 동안 어떤 운명에 처한 주인공의 서사에 흠뻑 몰입한다. 이같은 영화 관객의 시청경험은 1970~80년대 장편 TV 미니시리즈에서 유사하게 실험된 바 있다(De Vito & Tropea, 2010). 하지만 TV의 주 단위 편성으로 말미암아 미니시리즈는 ‘연속적인’ 서사극적 시청경험을 제고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오히려 1980년대 성행한 100분 내외의 TV 단막극이 보다 더 서사극적 시청에 가까웠다. OTT의 일괄출시와 VOD 서비스는 그같은 한계에 있던 TV 미니시리즈를 비로소 과잉시청하고 몰입할 수 있게 했다.
그 결과, OTT에서는 몰아보기를 통해 회차별로 이어지는 이야기의 전체 구조와 전개를 장악하면서 시청할 수 있다. 즉, 인물과 줄거리의 전후 관계를 생생하게 기억한 채 즐기는 ‘총체적 시청경험’(holistic experience)을 향유할 수 있다. 이는 종래의 계획된 흐름에 따라 분절된 프로그램과 프로그램의 연속체인 TV의 ‘전체적 시청경험’(general experience)과 대비된다(Williams, 1974.) 주 단위로 분절된 채 그날그날의 일상 속에서 소비되는 TV 드라마와 달리, OTT 서사극은 집중적인 시청으로 인해 극적 긴장감과 흥분을 제공한다. ‘저급한’ TV 드라마의 ‘껄끄러운 즐거움’(guilty pleasure)이 아니라 ‘껄끄러운 자부심’(guilty sense of pride)의 경험이다.
따라서 OTT의 서사극적 시청은 서사영화(epic film) 관람이라는 특수한 경험을 OTT에 차용한 개념이다. 시간적 제약이 사라진 OTT에서는 장르와 무관하게 그 어떤 콘텐츠도 서사영화처럼 소비할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시리즈 형식으로 서사를 누적할 수 있는 것이 영화와 결정적인 차별점이었다. 이에 OTT는 몰아보기 가능성(bingeability)을 고려한 콘텐츠 기획, 그러니까 연속적인 시청을 가정하고 독려하는 작품 기획과 한 쌍으로 움직인다(Ferchaud, 2020). 장르를 초월하여 회차와 회차를 넘나드는 시간적 과잉에서 전해지는 특별한 시청경험이 곧 OTT 서사극적 시청인 것이다.
서사극적 시청은 산만한 시청의 반대편에 있는 이른바 맹렬한 시청(intensely viewing)이다. 맹렬한 시청은 몰아보기의 과잉시간 과정에서 얻는 어떤 심리적 효과를 지칭한다. 장시간의 시청 몰입은 이전의 이용과 충족의 동기적 요소(motivation)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특별한 이용자 경험의 효능감을 일컫는다. “방해받지 않는 맹렬한 시청은 드라마를 영화처럼 또는 한 편의 소설처럼 만든다”(Newman & Levine, 2012, p.141). 또한 TV에 비해 훨씬 강력한 팬덤을 형성하고(Jenner, 2017), 떄때로 삶의 태도와 행동에도 영향을 미친다. 몰아보기가 가져온 OTT의 서사극적 시청이 매주 끊어가야 했던 TV 드라마나 다큐멘터리를 2시간 동안의 영화나 하룻밤의 소설처럼 보다 완성형으로 만들어주었다.
2) 국민국가 시청에서 글로컬 시청으로
글로벌 OTT의 시청자와 그들의 시청 행동은 ‘글로벌 시청’이 아니라 ‘글로컬 시청’이다. 다양한 실제 분석결과가 이를 증명한다. 822일에 걸친 71개 국가의 넷플릭스 TV 쇼 랭킹 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OTT 시청은 글로벌 배급망의 서비스(global stream)임에도 시청자의 맥락과 관심, 분위기, 해독 코드 등 지역적 기류(local currents)에 의해 조율된다(Lee, Lim, Choi & Jeong, 2025). 뿐만 아니라 특정 콘텐츠가 국경과 국가를 넘는데 있어서도 일정한 규칙을 보인다(Lee, Lim & Jeong, 2025). 글로컬 시청은 OTT라는 글로벌 미디어 서비스가 로컬의 시청(자)를 만나 나타내는 특징을 일컫는다.
위 연구에 따르면, 넷플릭스 이용은 크게 북미/범유럽(NAPE), 아시아/중동(AME), 중남미(CSA) 등 크게 세 개의 거대 문화권으로 나뉜다. 이들 문화권은 특정한 정보를 주지 않았음에도 데이터가 가진 하이퍼 공간상의 좌표값만으로 찾아낸 자기조직화(self-organization)의 결과이다. 세 개의 문화권에는 미국과 한국, 스페인이 상위 5순위 안에 모두 들었다. 일종의 넷플릭스 콘텐츠 영향력의 ‘글로벌 상수 국가’라 할 수 있다. 이 세 국가를 제외한 나머지 국가는 해당 문화권에 속한 특정 국가였다. 가령, 북미/범유럽은 영국과 프랑스, 아시아/중동은 일본과 터키, 중남미는 콜롬비아와 멕시코였다. 넷플릭스 콘텐츠 영향력에서 ‘지역내 주요 국가’라 할 수 있다.
아마도 글로벌 상수 국가와 지역내 주요 국가는 측정 시점에 따라 달라질지도 모르지만, 2년이 넘는 시기 동안의 데이터가 보여준 결과를 무시할 수는 없다. 글로벌/지역내 경쟁력을 가진 국가를 추적하는 것은 OTT의 소비 동학을 해명하는데 매우 중요한 지표임에 틀림없다. 사실, 이러한 발견은 일찍부터 지리적·문화적 근접성을 고려한 넷플릭스의 글로벌 서비스 전략과 유사한다(Lotz, 2021). 더불어 국가간 시청 패턴의 유사성과 문화 근접성의 영향력(Jang, Kim, & Baek, 2021), 콘텐츠(영화)의 내적 속성(장르, 스토리, 배우 등)과 국가 간의 관계에 대한 관련성 밀도(Lee & Ji, 2024) 등의 연구 결과와도 일맥상통한다. 물리적 국경이 희미해진 글로벌 OTT 환경에서 콘텐츠 소비는 문화적 파괴력이 있는 소수의 글로벌 상수 국가와 함께 지리적 언어적 근접성이 큰 지역내 몇몇 국가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지리·언어의 문화적 관성이 글로벌 미디어 소비시장에서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는 흥미로운 대목이다.
이는 사례 연구에서도 뒷받침된다.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애플TV+의 <파친코>(2022) 수용 연구는 OTT 콘텐츠가 국가와 역사를 따라 계층적으로 공감되는 동학을 보여준다(임종수, 2024). <파친코>에 대한 한국어, 일본어, 영어 댓글은 OTT 드라마가 역사적 이해관계, 다시 말해 “자국사의 지배적 감정구조에 따라 다르게 해석”하고 있었다. OTT 수용자들이 자국사(national history)적 해석틀을 적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렇다고 OTT 콘텐츠 수용 자체를 배제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의 <파친코>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한 FGI에 따르면, <파친코> 시청자들은 대작이 주는 압도적 서사로 인해 선악구도의 지배적 감정구조를 거스르는 장면에 대한 해석을 ‘유보’하면서 ‘미드로 보는 한국사’를 익숙한 듯 낯설게, 마치 잘 만들어진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즐거움을 느꼈다고 평가했다. 이는 종래의 TV 드라마가 소재지 중심의 ‘국민국가 드라마(nation-state dramas)’였던 것과 달리, OTT 드라마는 소재지를 넘어선 ‘무국경의 드라마’(borderless dramas)라는 점, 그런 낯선 종류의 드라마를 서사극적 시청의 즐거움으로 수용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또한 앞서 세 문화권 시장의 모든 국경이 똑같은 수준으로 열려있거나 닫혀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세 권역 중에서도 북미/범유럽이 다른 두 권역의 국가들에 비해 훨씬 더 다이나믹한 순위 변동을 보이는 ‘고엔트로피 상태의 문화권’이었다. 아시아/중동과 중남미 권역은 상대적으로 문화권 내 동질성이 상대적으로 높고 변화도 느렸다. 또한 OTT 콘텐츠는 국경을 넘는 방식에도 일정한 법칙을 보여준다. 가령, 아시아/중동의 경우 한국과 태국에서의 OTT 소비 경향이 지역내 다른 국가에 가장 강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마찬가지로 북미/범유럽은 미국이, 중남미는 콜롬비아가 지역내 영향력 있는 국가였다.
문화권 간에도 일정한 특징이 나타났다. 흔히 북미/범유럽에서의 콘텐츠 소비 경향이 아시아/중동이나 중남미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상상하지만, 분석결과는 오히려 반대였다. 이것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작품의 경우 대부분 전 세계 동시 공개하고, 현지 방송사와 협업한 콘텐츠는 현지에 우선 공개하는 시간적 지연이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북미/유럽 문화권이 특유의 다이나믹한 콘텐츠 소비활동으로 다양한 국적의 콘텐츠를 적극 받아들이는 경향이 반영된 것일 수도 있다. 그 근거로 아시아/중동에서 북미/범유럽, 심지어 아프리카 등지의 문화권으로 콘텐츠 소비 경향이 넘어가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국가가 싱가포르였다는 데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영어라는 언어적 통로가 비영어권에서 범 영어권 국가로의 문화소비 이동로가 되었을 수 있는 것이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튀르키예이다. 앞의 세 문화권을 탐색하기 위한 1,000번의 시뮬레이션에서 튀르키예는 유일하게 그 위상값이 북미/범유럽과 아시아/중동으로 ‘겹치는’ 국가였다. 그 외에는 배타적으로 셋 중 하나의 문화권으로 분류되었다. 이는 지리적으로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에 위치하고,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교차로적 성격을 지닌 터키의 국가적 특성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터키 TV는 중동에서 유럽, 중앙아시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장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결국, OTT는 무국경의 콘텐츠 서비스가 일반적으로 이루어지면서도, 지리·언어적 요소가 특수하게 작동하는 미디어 소비 양상도 나타내 보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보면, 글로벌 OTT의 소비는 ‘장구한 미래’(long future)로 명명할 수 있다. 장구한 미래는 레이먼드 윌리엄스의 기념비적인 저서 The Long Revolution(1961)을 오마주한 은유이다. 윌리암스는 산업혁명이나 시민혁명과 달리, 20세기 대중매체가 등장하고 대중의 문해력이 획득된 연후에야 가능해진 문화혁명을 일컬어 장구한 혁명이라 말했다. 그렇게 보면, 장구한 미래란 윌리엄스가 말한 문화혁명의 지연된 성격이 현재의 글로벌 OTT 소비 경향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말한다. 다시 말해, 인류가 살아온 과거의 광범위한 흐름이(그 결과로서 지리·언어적 속성이) 오늘날의 인류가 미디어를 소비하는 방식에 스며들고 있고, 이러한 역사적 영향력이 향후 미디어 소비문화를 형성하는 힘으로 작용할 것임을 시사한다.
5. 대중문화: 정서적 공통문화에서 정동의 보편문화로
OTT 산업은 배급은 글로벌, 기획/제작은 로컬이 담당하는 이원화 구조로 체계화해 있다. 이는 정치·경제적 재생산을 위한 세계체계론의 연장선 상에 있다. 이런 사고틀에서 보면 OTT 산업은 현지분리창작(local opt-out creation)의 전략으로 작동한다. 현지분리창작이란 글로벌 OTT가 콘텐츠 창작에 있어 문화적으로 비교우위를 점하는 현지를 선정하여 차별적으로 콘텐츠를 창작·수급하는 분업체계를 말한다. 이때 비교우위는 장르나 주제, 소재, 유형, 스타일 등 복합적인 서사양식을 포함한다. 그것은 마치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체계와 유사하다. 지금 전 세계는 비교우위의 서사양식을 가진 주요한 콘텐츠 생산국이 글로벌 OTT의 공급망으로 구조화되어 있다. 중요한 것은 현지분리창작이 글로벌 OTT 창작 산업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글로벌 분업체계는 국경을 경계로 한 전통적인 TV 산업과 문화를 빠르게 해체시켜 OTT 산업체계와 문화로 전환시킨다.
현지분리창작에서 일차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은 정동(affect)이다. 엄밀히 말하면, 정동의 리얼리즘(affective realism)이다. 국경을 넘나드는 플랫폼의 리얼리즘이다(임종수, 2023). 기존 TV가 국민국가의 사회문화적 맥락을 품고 있는 시청자 누구나가 느낄만한 정서적 리얼리즘(emotional realism)을 향유했다면(Ang, 1982), OTT는 특정 문화권을 넘어 해당 서사의 주제나 장르, 소재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반응하는 전동의 리얼리즘을 향유한다. 전자는 남녀, 부모와 자식, 국가와 개인, 형제와 자매 등에서 발견되는 익숙한 정서로 파악되는데 반해, 후자는 몸의 감각으로 느껴지는 즉각적인 전율과 반응, 생소함으로 경험된다.
현지분리창작은 국가별로 차별적인 전율과 반응, 생소함을 불러일으킬 콘텐츠를 제작하여 국경을 무시하고 유통하는 전략이다. <킹덤>에서 <오징어게임>, <파친코> 등에서 보듯이, 한국은 권력, 조직, 맞섬 등을 키워드로 하는 ‘호모 사케르의 분투’가, 스페인은 <종이의 집>, <아체>처럼 마약과 스릴러, 비밀을 키워드로 하는 ‘정열과 운명의 아이러니’라는 비교우위적 서사를 생산한다. 그런 식으로 미국은 ‘수호자의 블록버스터’의 서사로 특징지을 수 있다. 같은 마약과 범죄를 다루고 동일 언어를 사용하더라도 스페인은 가족과 친구가 강조된다면, 멕시코는 가문과 부패가 부각된다. 결국, 현지분리창작은 서사의 주제, 소재, 장르, 창작자 등으로 표출되는 특정 국가의 고유한 서사관습의 전략적 생산을 말한다.
현지분리창작이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정교한 자동화된 추천 덕분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차별적인 정동의 콘텐츠는 누군가에게는 로맨스물, 다른 누군가에게는 가족물, 서부극, 범죄물, 아포칼립스, 유머, 심지어 어떤 감독이나 작가, 배우, 특정 플랫폼 등 수용자 저마다 감정적 우위를 점하는 정동에 잘 반응할 수 있도록 배치된다. 앞서 말한 인터페이스와 이용자 경험의 논리를 따르는 것이다. 각국의 OTT 수용자들은 이렇게 만들어진 콘텐츠를 자신들의 정동에 입각해 선택하고 소비한다. 앞서 살펴본 세 개의 문화권은 그런 소비활동이 펼친 결과물이다.
그 결과, OTT는 비록 문화권으로 블록화된 소비 경향을 보이지만, 기존의 대중매체가 수행해 온 공통문화(common culture)와 질적으로 다른 국가와 국가를 넘어선 보편문화(universal culture)를 귀결시킨다. 보편문화는 보편적 타당성(universal validity)에 입각한 문화를 말한다(Sommier, 2014). 20세기 후반 막내린 동서 냉전이 견인해 온 글로벌화는 경제적 교류를 넘어 미디어를 통한 문화적 상호작용으로 인류의 삶의 방식을 보편적 대중문화로 다시 쓰고 있다(Appadurai, 1996; Featherstone, 1996). 보편문화는 금융과 재화를 넘어 사람의 풍경(ethnoscapes)과 미디어풍경(mediascapes), 기술풍경(technoscapes)의 전지구적 흐름 위에서 꽃핀다. 공통문화가 민족국가의 기획이었다면, 보편문화는 글로벌 자본의 비즈니스의 기획이다. 국민국가의 공통문화의 서사에 익숙한 수용자가 어느덧 인간 본연의 직관이 작동하는 보편문화적 서사로 옮겨가고 있다.
각기 다른 문화 속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문화적 요소나 패턴, 특징을 일컬어 문화보편(cultural universal)이라 할 때(Brown, 1991), 보편문화는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는 삶의 패턴 중 인종, 국가, 지역 등과 무관하게 모든 인간문화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문화를 의미한다. 헐리우드 영화나 세계적인 스포츠 이벤트, 인기 팝 공연 등은 전세계 다국적 시장에서 통하는 대표적인 보편문화이다. 이는 지난 100여년 동안 국적성을 띤 대중매체의 공통문화와 다르다(JODK는 내선일체를 실현하여 조선을 일본의 공통문화 안으로 흡수하려 했던 이데올로기 장치였다). 헐리우드 영화는 그것을 만들어낸 미국의 공통문화지만 잦은 해외 수출로 다양한 국가에서도 수용가능한 보편문화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국가는 자국의 공통문화와 다국적 기업의 보편문화를 양대 축으로 하는 대중문화 지형을 유지한다. OTT는 이같은 문화적 지형 위에 겉으로는 수용자 개인의 미학적 취향을, 내포적으로는 기존에 익숙한 1세계의 보편문화를 제공하는 플랫폼이다. <파친코>는 각 가정과 개인에게 서비스하는 텔레비전 커뮤니케이션 형식이지만, 다국적 기업이 수행해 온 보편성의 정서를 적극 반영하는 보편문화이다.
얼핏 보면, 공통문화나 보편문화간에 차이가 없는 듯 보인다. 하지만 전자가 특정 사회가 합의해 온 평균적인 정서와 가치를 내면화한 것이라면, 후자는 다양한 지역이나 공동체가 공유하는 정서와 가치를 지시한다. 전자와 후자 모두는 바람직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지만, 전자에서 그것은 공동체의 정체성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데 반해, 후자에서는 국경을 넘어 퍼져나가는데 좀 더 주안점이 있다. 따라서 전자가 익숙하고 심지어 평범해 보이는 일상이라면, 후자는 낯설지는 않지만 일상적이라 할 수는 없다. 일제강점기가 저항이 아닌 자이니치로 바라보는 것, 여러 사례로 나타나는 넷플릭스 욱일기 논란을 떠올려 보라(임종수, 2024 참조).
역사적으로 보편문화는 유럽 계몽주의 시기의 유산으로서 지역과 문화, 인종과 무관하게 서구적 사고와 행동, 복습, 역사성을 갖출 것을 요구하는 문명론적 사고이다. 유럽식(그리고 미국식) 휴머니즘, 매너, 위생 등을 문화의 표준으로 삼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보편문화는 외면상 공정하고 합리적인 문화적 상태를 지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칫 누군가에게는 일방적인 강압 또는 폭력일 수도 있다. OTT 보편문화가 기존 TV가 축적해 온 국민국가의 지배적 감각에 특정 주제나 상징, 기호 등을 일방적으로 침투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6. 보론: 간택자의 비극, 우리는 무엇을 준비할 수 있는가?
지금 대한민국의 미디어 산업은 ‘간택자(The Chosen)의 비극’에 처해 있다. 화려한 K-컬처는 해마다 넘치는 관심과 사랑, 수상 소식을 전한다. 가장 최근 <케데헌>은 K팝 최초의 그래미상과 함께 골든 글로브 2관왕을 거머쥐었다. 하지만 발이 공중에 떠 있는 불안감을 떨칠 수 없다. 대한민국이 플랫폼-미디어가 필요로 하는 커뮤니케이션 자원을 값싸게 제공하는 가성비의 공급자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리라. 지금 우리나라는 창작 분야에서의 유래없는 성과에도 불구하고, 플랫폼 거버넌스의 취약성으로 인해 우리 자신들의 콘텐츠를 노출·확산·성과짓는 경로를 확정짓지 못하고 있다. 세계체계론이 구축한 견고한 문화지정학에서 절대 약자일 뿐이다.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보편문화로서 K-컬처의 훈풍이 거의 불지 않아 공통문화로서 K-컬처가 쇠퇴하는 아이러니가 펼쳐지고 있다.
이는 경제적 성과에서 분명하게 확인된다. 넷플릭스는 2024년 한국에서 영업이익을 기록했지만, 국산 OTT는 만성적인 적자를 누적시키고 있다. 2024년 티빙은 영업손실 711억 원을 기록했다. 티빙과 웨이브, 왓차를 포함한 국내 주요 OTT의 누적 적자는 거의 3,000억원에 이른다. 대형 글로벌 시장의 간택을 받은 K-컬처가 유래없는 성장을 구가하는 것과 반대로 K-플랫폼은 시장 불확실성과 제작・투자 환경 악화의 굴레에 꼼짝없이 갖혀 있다.
레거시 미디어는 더 처참하다. 코로나19 이후 2022년에 잠깐 회복되던 지상파 매출이 2024년까지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다. 2022년의 매출액도 2015년 수준일 뿐이다. 그러니까 2015년과 2022년을 쌍봉으로 두고 계속해서 이른바 역성장의 궤적을 그리고 있다. 2025년에는 흑자를 낸 곳이 모 상업방송 한 곳 뿐이다. 그것도 자신들이 참여한 국내 OTT마저 외면하고 넷플릭스와 협업체계를 맺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여기에 영화 산업마저 코로나19 이후 전세계적으로 가장 느린 회복세, 아니 침체 상태에 빠져 있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준비할 수 있는가? 다시 말하지만, 해야 하는 것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지금 미디어 분야에서 ‘해야 할 일’은 넷플릭스 같은 영향력있는 글로벌 OTT 플랫폼을 만들고, 회당 100억이 넘는 시리즈물을 주 단위로 신규 제작하며, 계속해서 빼앗기는 IP를 회수하는 것이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우리는 할 수 있는 것을 애써서 ‘겨우’ 할 뿐이다. 지금과 같은 혁신이 불꽃이 계속해서 피어오를 때 가장 현명하게 대응책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이다.
필자 역시 지금 이 국면에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잘 모른다. 하지만 그간 여러 논의를 종합해 보면 1) IP 주권을 지키는 영리한 공동 제작, 2) 국내 플랫폼간 전략적 동맹, 3) 제작 공정에서의 AI 활용, 4) 팬덤 자본 기반의 커뮤니티 비즈니스 등을 떠올릴 수 있다. 거대 자본의 논리에 매몰되기보다 IP를 확보하기 위한 연대(co-production)로 권리를 지키고, 기술(AI)로 비용효율성을 제고하고, 팬덤으로 생존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안이라는 것. 그럴 듯 하지만 어느 하나도 만만하지 않다.
본문의 논지를 고려할 때, 두 번째 방안인 국내 플랫폼 간 전략적 동맹이 그나마 지금의 난제를 타개할 선제 조건이 아닐까 싶다. 국내 OTT의 경쟁자는 글로벌 OTT이지 또 다른 국내 OTT가 아니다. 글로벌 OTT는 드라마 형식의 시리즈는 물론이거니와 <피지컬100>, <흑백요리사> 같은 예능, <나는 신이다> 류의 다큐멘터리마저 서사극적 형식으로 전세계 시청자들의 정동을 뒤흔든다. 규모의 경제와 전략적인 현지분리창작 덕분이다. AI 공정을 제도화하고 IP를 확보하여 팬덤 효과를 누리려면 무엇보다 경쟁력있는 플랫폼이 있어야 한다. 플랫폼은 가성비 넘치는 제작사와 창작 인력 시장이 선순환의 경제가 되기 위한 기본 조건이다. 플랫폼 없는 미디어 산업은 허울에 지나지 않는다. 내수용으로 출발한 국산 OTT의 DNA를 하루바삐 걷어내어 스스로 ‘선택자’(The Chooser)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덧없이 보낸 시간으로 백약이 무효이지 않을까 싶다. 대한민국의 OTT는 지상파나 통신사가 지배하는 캡티브 OTT가 주류여서, OTT라는 차별적인 미디어 형식과 콘텐츠 형식에 부합하는 혁신이 꽃피지 못하고 내수 시장 수성의 수단으로만 간주되어 왔다. 인수합병과 제휴 등으로 몸집을 불려 왔지만, 기술 투자는 물론 콘텐츠 투자에도 그리 관심을 두지 않았다. ‘웨이브’ 출범 당시 데이터 전문가 없이 시작했던 것이 이를 증명한다. 사실, 국내 OTT는 기술기업을 지향하고 기존의 미디어 문법으로부터 자유로우며, 부족한 재정에도 오리지널 콘텐츠에 도전했던 ‘왓챠’ 같은 제3의 사업자가 시장의 파괴자로 성장했어야 했다. 하지만 충분하지 않은 자본력과 좁은 시장, 콘텐츠 수급 전략의 부재, 캡티브 OTT의 견제, 관련 기관의 무지 등으로 기회를 얻지 못했다.
2015년 넷플릭스가 한국 서비스를 모색할 당시에 쓴 글이 10년이 지난 오늘날의 고민을 예고한 듯하여 마무리 글로 인용하며 마치려 한다. 로컬의 매체 환경에서 ‘미드를 시청’하는 것과 글로벌 ‘플랫폼을 구독’하는 것의 차이에 대해 말하려 했던 것 같다. 지난 10년은 당시의 추론을 데이터로 증명한 세월이 아닐까 싶다.
“넷플릭스를 보는 세 가지 풍경들: 상상력, 매력, 기대” - 2015년 9월 11일, facebook
미디어 공룡 넷플릭스가 들어온다는 소리가 들린다.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점치는 소리도 함께 들린다. 미디어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당연히 관심이 간다. 취재도 온단다. 어떤 말을 해야할까? 분석도구도 데이터도 없는데 분석하고 예측까지 해달란다. 항상 그래왔듯이 맨땅에 헤딩해 보았다.
안방/거실 TV의 변화를 상상할 수 있다. 넷플릭스는 안방으로 들어온 최초의 OTT이자 최초의 외래종 플랫폼이다. 한국의 지상파나 유료방송 OTT가 있지만 어디까지나 개인미디어 플랫폼이었다. 그에 반해 넷플릭스는 안방과 거실을 직접 겨냥한 외래종의 OTT이다. 전원을 켬과 동시에 바로 화면을 띄워주는 텔레비전의 관습을 가졌다. 어제 보던 것을 오늘 볼 수도 있고 다른 콘텐츠로 넘어갈 수도 있다. 미디어 역사에서 이런 사례는 전무했다. 넷플릭스의 풍경은 상상력을 돋운다.
넷플릭스는 완전히 디지털화된 미디어이다. 지상파나 유료방송처럼 단순히 디지털 기술로 전환된 것이 아닌 존재 자체가 디지털화된 미디어이다. 가장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것은 디지털 인터페이스다. 채널은 사라지고 콘텐츠가 곧 채널 역할을 한다. 어쩌면 나의 시청습관을 분석해서 어떤 채널을 만들어 줄지도 모른다. 실제로 초등생 우리집 꼬마는 유튜브에서 레고시리즈를 그렇게 즐긴다. 더욱이 N스크린이다. 가족은 하나의 방송 환경에서 각기 다른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 디지털 미디어의 임베디드 성격이 무한이 펼쳐진다. 넷플릭스의 풍경이 무척 매력적이다.
넷플릭스의 콘텐츠는 강력하다. 잘 사는 나라 미국에서 만든 어마무시한 방송, 영화 콘텐츠는 결코 무시할 수 없다. 한국과 아시아의 밀레니얼들은 그런 콘텐츠를 좋아할 것이다. 문화할인효과는 불행하게도 21세기가 되면서 폐기되어야 할 개념이 되어가고 있다. 드라마가 수성의 효자일 것 같지만 이미 시청률 한자리가 대세가 되어 버렸다. 예능은 어떨까? 넷플릭스는 국내의 어떤 PP 혹은 어떤 PD나 스타와의 합작을 고려할 것이다. 나영석 PD는 포섭 1순위이지 않을까? 돈이 많으니 별로 어렵지 않다. 여튼 재미있는 콘텐츠들이 많다. 넷플릭스의 풍경이 무척 기대된다.
문제는 이에 대응하는 혁신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데 있다. 지상파는, 유료방송은 어떤 대응을 할 수 있을까? 플랫폼의 진화, 콘텐츠의 유연성이 답이겠지만 그들이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DNA가 없기 때문이다. 브로드캐스팅(Broadcasting)과 브로드밴드(Broadband)는 분명 다르다. 망사용 대가와 중립성 이슈, 역차별 이슈 등으로 딴지를 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FTA가 발효되고 있고 주요 아시아 국가에 모두 진입할 것이기 때문에 자칫 쇄국정책으로 비칠 수도 있다.
엉뚱한 결론인 것 같지만 애국은 더 이상 좋은 마케팅 수단이 아니라는 것이 피부로 느껴진다. 콘텐츠와 소프트웨어 영역은 훨씬 그렇다. 다이얼패드는 실패했지만 스카이프는 성공했다. 아이러브스쿨은 페이스북, 트위트로 대체됐다. 네이버가 한국의 인터넷 중흥을 일으켰지만 찻잔 속 태풍으로 그치고 있다. 소프트웨어 강국을 외치면서 다음을, 네이버를 죽여왔다. 그들 역시 한때는 관련 국가부서의 기획 아래 단맛에 취해 있었다. 국가가 선도해서 성공한 것은 네트워크 외에 하나도 없다. 될성부른 카카오는 정치의 덫에 걸려 신음하고 있다. 수용자 자발성의 진화를 무시하는 정책은 백약이 무효일 뿐이다. 그래도 우리나라 플랫폼이, 콘텐츠가 잘 되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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