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게 속은 과학자, 아리스토텔레스

case1

by 아모모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시야를 가지고 태어나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어둡고 흑백인 세상을 바라보면서 살던 갓난아이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다양한 색깔과 빛이 주는 광채에 이끌려서 여러 물건들을 헤집고, 만져보고, 입에도 넣어보면서 온몸으로 보이는 것들을 체험하려고 드는 것은 어쩌면 인간이 자연을 탐구한다는 가장 본능적인 영역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는 한다. 더불어 우리 인간은 성장하는 와중에도 대부분의 영역을 눈에 의지해서 바라보고 해석하기도 하고, 오죽하면 오직 생김새로만 그 사람의 운명을 판단하는 관상이라는 문화도 있음을 생각하면 눈은 우리의 인생을 풍요롭게 하고 우리 삶 한가운데에서 도움을 주는 아주 알짜배기 같은 놈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었듯 세상은 우리를 다양한 방식으로 속이고 있고, 이번에 이야기할 시각이야말로 인간역사가 지속되는 동안 꾸준히 모든 사람들을 속여왔던 역사적 사기꾼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태어날 때부터 함께하게 되는 이 시각이라는 감각에 절대적으로 의지하고 도움을 받는 인간이 어째서 시각에게 사기를 당했는지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은 한다만, 앞으로 설명할 이 불쌍한 아리스토텔레스와 고대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이놈이 얼마나 치명적이고 섬세하게 사람들을 속여왔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이름을 가진 이 불쌍한 피해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밑에서 제자로 생활하고 알렉산더 대왕의 스승으로 있었을 만큼 영향력이 매우 큰 철학자였다. 그때는 과학에 대한 어떤 구체적인 정의가 내려지기 전이었는데, 그 시기에 유행했었던 것들은 끊임없이 모든 것에 대해서 관찰하고 질문하며 본질을 찾기 위해서 노력하는 이른바 철학이라는 학문이 대세를 이끌어가던 시대였다. 특히 이 본질을 탐구한다는 점에서 과학과 철학은 매우 닮아있는데, 철학이 모든 것에 질문을 던지고 답을 구한다면 과학은 그보다 지엽적인 부분에서 답을 찾는다는 부분에서 철학보다 훨씬 이후에 학문으로 인정받게 된 과학은 철학이 낳은 아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렇기에 그 시절 철학에서 누구보다 압도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던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면에서 다재다능했다. 본질을 추구하는 질문을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던지는 학문이 바로 철학이기에 그는 분류학, 철학, 수학, 정치학 등등 수많은 분야에 그가 납득할만한 대답을 갈구했고 연구한 결과 그 모든 면에서 통달했던 것이다. 오죽하면 서로 배우는 분야가 상이하게 다르다는 문과와 이과 학생들조차 서로 다른 과목을 배울 때 교과서안에서 그를 마주치는 걸 생각하면 이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 학문에서 입지전적인 인물인지 대충 짐작이 갈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뛰어났던 아리스토텔레스는 훗날 현대의 사람들에게 세상에게 속은 희대의 호구로 남게 되는데, 그 내막을 한번 들여다보자.


case1. 첫 번째 사기극


이제 아리스토텔레스가 당한 사기사건 중 가장 많은 피해자들이 얽혀있는 첫 번째 사건이다. 그가 주장했던 내용 중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 것이 4원 소설인데, 정확히 말하면 그는 4원 소설을 직접 창시한 사람은 아니고 엠페도클래스라는 철학자의 주장을 조금 더 구체화시킨 것이다. 엠페도클래스라는 사람이 자연을 관찰하고 정립한 4원 소설이라는 개념을 아리스토텔레스가 이 4개 원소들 사이의 관계까지 연관 지어 확장시킨 것으로 보면 된다.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지금에서야 아주 작은 물질인 원자, 전자, 쿼크 같은 것들이 우리들의 세계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이 4원 소설이 터무니없어 보일 수는 있으나 그들 나름에게도 근거가 있었는데, 과연 어떤 과정을 통해서 이 4원 소설이라는 결과물이 나오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알아보자.


시작은 최초의 철학자라고 불리는 탈레스에 의해서 시작된다. 탈레스는 당시 철학자들이 연구하고 있었던 만물의 근원인 아르케(정확한 설명은 아니지만, 중국소설이나 영화에서 나오는 '기'를 연상하면 된다.)를 찾기 위해서 끊임없이 사색하고 고뇌했는데, 탈레스는 그 아르케가 바로 물이라고 생각했다. 심지어는 물이 모든 것의 원리이며 모든 것이 물에서 생겨났다는 다소 광적인(?) 물에 대한 집착을 보였는데, 이 때문인가 물에 감정이 존재한다거나 물에서 모든 것을 알아낼 수 있다고 주장하는 유사과학자들의 인터뷰를 쭉 보다 보면 탈레스에 대한 언급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하지만 그런 탈레스의 주장에도 나름의 이유가 존재하는데, 그가 여행한 지역들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물이 부족하기에 물의 영향력을 굉장히 많이 받는 이집트의 사막지대나 지중해 동부지역이다. 지금도 그 지역을 가보면 물을 숭배하는 부족이나 조상들의 사료를 볼 수 있기도 한데, 인간의 생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면서도 변화무쌍한 그 물이 탈레스가 느끼기에는 아르케로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후대의 철학자 아낙시메네스의 주장은 사뭇 달랐다. 그는 공기가 물질의 근원이라고 주장했는데, 이 주장은 그의 스승인 아낙시만드로스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아무 특징도 없으면서 계속해서 다른 것으로 바뀔 수 있는 것이 물질의 근원이라고 생각하였고 이를 아페이론이라고 명명하며 아페이론이 아르케라고 주장했다. 아페이론이 온도가 변화하면 움직이면서 공기가 되고 그 공기가 여러 다른 물질로 변화하면서 세상을 이룬다는 말이었지만, 아낙시메네스는 그 의견에 반절정도는 동의하고 반절정도는 동의하지 못했다. 그는 애초부터 물질의 근원을 공기라고 생각했다. 물질의 근원은 물질로 설명할 수 없다는 스승과는 다르게 물질인 공기를 아르케로 내세운 것이다. 그는 숨을 쉬는 것이야말로 인간에게 꼭 필요한 것이며, 늘 변화하면서도 항상 우리 곁에 있는 공기를 아르케라고 생각했다.


이제 이런 순서대로 흘러갔으니, 다음에 나올 철학자가 무엇을 아르케라고 주장했는지에 대한 예측이 가능할 것이다. 헤라 클레이토스라는 철학자는 불을 아르케라고 주장하였는데, 그 이유가 조금 아름다우면서도 멋있다. 그는 타오르고 꺼지면서 지속적으로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불을 보면서 사실 대립하는 것들은 모두 하나라고 이야기했고, 불은 공기가 죽어서 살고, 공기는 불이 죽으면서 살게 되며 물과 흙 또한 같은 관계를 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제야 엠페도클래스라는 철학자가 등장한다. 그는 마치 어벤저스를 하나하나 스카우트하는 닉 퓨리와 같이 제각각의 철학자들이 아르케라고 주장한 원소들을 하나하나 모아서 이들 모두가 세상을 이루는 4대 원소들이라고 말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엠페도클래스의 비율론에 아리스토텔레스가 따뜻함, 건조함, 차가움 같은 4가지 원소들 사이의 관계를 명확이 한 것이고 말이다.

하지만 이대로 끝나면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이거 그냥 철학자들이 자기생각한 거 정리해 놓은 거 아니야? 이게 뭐가 속았다는 건데?"


그렇다면 이제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의 관계를 명확히 해보자. 지금까지 언급한 고대의 철학자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세상을 끊임없이 관찰하면서 나름대로 기준을 만들고 물질의 근원에 대해서 탐구했다. 본질적인 원리에 대한 분석적인 탐구가 아닌 그저 관찰하고 해석하는 것이 그들의 연구의 주가 될 수밖에 없었던 시대였기에 그들은 이 '눈'이라는 꽤나 성능이 애매한 장비하나로 세상을 바라보며 그들 나름의 답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물질의 근원을 찾기에는 그들의 장비는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성능이 아니었고 세상은 그 답을 매우 작은 크기로 쪼개서 우리들의 주변에 그저 흩뿌려 놓았기에 그들은 결국 평생을 잘못된 답 속에서 허우적대다가 삶을 마쳤다.

더구나 불행하게도 이 파렴치한 사기극에 속아 넘어간 철학자들은 모두 말 한마디한마디가 작게는 도시전체에서 크게는 국가와 국가로 퍼질 수도 있는 너무나도 영향력 있는 학자들이었고, 그렇기에 이 4원 소설이라는 물질의 근원에 대한 정의는 후세의 신생 과학자들에게는 너무나도 바꾸기 힘든 크나큰 벽이자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위대한 철학자이자 과학자에 대한 도전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눈'이라는 도구에 의지해 세상이 꾸며놓은 겉면만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고대의 철학자 일동은 후대의 과학자들에게 너무나도 깨치기 힘든 단단한 틀을 끼워 넣고 역사에서 퇴장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