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맨 처음 치매를 알게된건 우리엄마랑 가장 친한 동네 언니, 즉 나에게는 '이모'의 엄마를 처음 만난날이었다. 20대 초반이었던 나는 한달에 한번 생리는 건너뛰어도 네일샵은 절대 빼먹을 수 없는 꾸꾸꾸였기 때문에 늘 내 손톱엔 별별 그림들이 화려하게 그려져 있었다.
그날 내 열손톱엔 피부톤에 가까운 바탕색에 하얀 꽃이 그려져 있었는데 중증 치매셨던 이모의 어머니께서 내 손톱을 들여다 보시면서 아이고 곱다....어쩜 이렇게 예뻐?라는 말을 30초마다 되풀이하셨다.
이게 내가 처음 만난 치매였다. 충격 그 자체...이럴수가 있다고?????
그리고 나는 치매와는 무관한 삶을 살아가다 20년쯤 뒤 다시 치매를 만났다. 내 시어머니의 치매를...
시어머니는 우리와 함께 살게 되신지 올해로 9년차. 세계 최소 30여개국을 여행하시고 70살까지도 직접 운전해 한번도 쉬지않고 달려 강원도로 여행을 다니셨다. 인생은 60부터라는 말보다 더 나아가 80을 목전에두고 시작한 한식당을 코로나 직전인 19년까지 운영하실정도로 활동적인 분이셨다.
그랬던 시어머니가 치매다.
지극히 내 주관적인 느낌으로만 이야기를 하면 시어머니의 치매는 코로나와 연관이 깊은 것 같다.
왜냐하면 그녀는 코로나 전까지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시어머니는 코로나 초창기였던 20년 1월 확진되어 거의 한달을 병원(임시 병동)에서 갇혀있다 나오게 되셨고 10년은 늙은 모습으로 집으로 돌아와 현관앞에서 엉엉 우셨다.
한달만에 어머님을 본 내 첫 느낌은...
아무리 염색을 자주 하는 할머니라도 한달이 최소주기 아닌가? 사람이 한달 병원에 있었다고 저렇게 백발이 될수있나? 맘고생이 심하셨나보다였다.
한달을 아무와도 접촉없이, 티비도 없이, 오로지 천정을 보며 누워지낸 시어머니는 그 긴 하루를 어떻게 보냈을까? 처음엔 병원 병실에 계신줄로만 알았는데 알고보니 임시로 마련된 병실이라 간이침대에 티비는 고사하고 사람도 없었다고 한다. 이러한 이유로 당시 코로나를 둘러싼 여러 의혹 루머 가십들이 있었는데 그 중 나는 코로나 후유증으로 인지가 떨어질 수 있다는 말이 가장 와닿았다.
집에 돌아오신 어머니는 빠르게 안정을 되찾은 듯 보였지만 밖에서 구급차가 지나가는 소리에 가슴을 졸였고
이 트라우마는 지금까지도 희미하게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