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께서는 뇌영양제를 거의 1년 가까이 드시고 일상 중에서 자주 깜빡깜빡하시는 과정을 거쳐 냄비를 두어 번 정도 태우시고서야 비로소 치매약을 드시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 얘기로는 치매약을 먹으면 치매 진행 속도가 늦어져서 천천히 진행된다고 하던데 내 시어머니의 속도는 유독 빠르게 느껴져 걱정이 되었다.
시어머니의 치매 진행 속도도 걱정이었지만 빠르게 느껴지는 속도만큼 이상행동이 발현되는 건 아닌지? 나의 미래도 걱정이 되었다.
치매하면 가장 대표적인 레퍼토리 중 하나인 "저년이 나 밥 안 줬어"를 시전 하신다거나 "저년이 내 돈 훔쳐갔어"라거나 하는.... 말들을 예전에는 듣고 웃었지만 지금은 여기에 플러스로 혹시라도 내 머리채라도 잡으시면 나 어떡하지? 하는 걱정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나는 그래도 희망적으로 생각했다. 왜냐하면 내 시어머니는 평소 인내심의 표본이자 작은 목소리의 아이콘이시며 어머니 나이의 어른들에게서는 자주 볼 수 없는 개방적 사고를 갖고 계신 분이셨기 때문이다.
한 겨울에 짧은 반바지에 롱부츠를 입고 외출하는 며느리에게도 예쁘다고 잘 어울린다고 해주시는 분이시니까...
그래서 설마 내 시어머니는 아닐 수도 있지 하는 희망과 믿음을 가졌었는데 결국 그 일이 터졌다.
그날은 저녁에 친구들과 약속이 있어서 일찍부터 밥과 카레를 만들어두었다.
초등학교 6학년인 아이에게도 할머니랑 같이 저녁 챙겨 먹으라고 미리 말을 해두었다.
그리고 4시쯤에 집을 나서면서
"어머니 죄송하지만 제가 오늘 친구들하고 약속이 좀 있어서요. 좀 나가봐야 하는데 제가 아까 밥도 해놓고 카레도 해놓았으니까 이따 아이들 오면 같이 드시겠어요?"라고 말씀드렸다.
어머니께선
"아이고 내가 언제 밥에 연연하는 사람이냐? 아무 걱정도 하지 말고 가서 놀다 와~"라고 말씀해 주셔서 가벼운 마음으로 나와서 친구들을 만났다.
그런데 아이들이 집에 돌아올 무렵인 저녁 6시 반에 어머니께 전화가 와서는
"너 지금 어디냐? 아니 정신병자 같은 엄마를 놔두고 밥은 해주고 나가야지 아무리 바보 같은 시어머니라도 이럴 수는 없는 것 아니냐? 내가 아주 오늘 이 집을 박살을 낼란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말이 내 시어머니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는 게 도무지 믿기지가 않아서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대로 얼어붙어있다가 무슨 말이라도 해야 했기에 입을 열었다.
"아....저....어머니 제가 카레 해놓고 나왔는데요"
대번에 돌아오는 말씀은
"그래서 나보러 밥을 해먹으라고?"
다시 내가
"저...어머니 밥도 해놓고 나왔어요"
충격이라면 충격인 통화내용에 그 이후에 대화는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마무리는
"니가 당장에 못 온다면 뭐 어쩌겠냐 니 볼일 다 보고 와라"하는 내용이었고
곧이어 남편한테 전화가 와서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자마자 집에 들어가서 어머님을 뵐 생각을 하니 마음이 더 무거워졌지만 마음 한 편에 혹시나 이 일도 기억 못 하시려나? 하는 생각이 들어던것도 사실이다.
떨리는 마음으로 현관문을 열었는데 다행히 어머님께서는 이미 주무시고 계셨고
다음날 아침 나는 어제보다 더 떨리는 목소리로
"안녕히 주무셨어요?"라고 인사를 건넸고
어머니께서는
"(세상 환한 얼굴로) 그래 잘 잤다"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