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만 틀어놓고 딴짓을 하고 있다.
사이버 대학 1학기 기말고사. 혼이 빠진 듯 뒤적거린 종이를 정리하고 모니터를 보자 2학기 수업에 대한 걱정이 밀려왔다.
매일 한 시간씩 듣는 수업은 차치하고 과목마다 주어지는 토론과 과제, 시험은 그 자체로 부담이었다. 과목마다 해내야 하는 수업으로 인해 나의 자유시간은 없어지고 내가 읽고 싶은 책을 볼 시간과 체력은 아까워졌다. 정해진 시간에 일과 공부, 흥미를 채우는 것은 내 저질체력에선 한계가 있는 걸까?
자꾸만 옅어지는 집중력
내가 알고 싶은 건 이게 아닌데라는 회의감
일방적인 교수님의 강의에서 느껴지는 지루함
강의만 틀어놓고 딴짓을 하는 불성실함
과목마다 주어지는 과제와 토론에 대한 불만
과목마다 주어지는 시험에 대한 스트레스
내가 배우고자 하는 분야는 하나인데...
다른 과목은 흥미가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졸업을 위해서는
수강, 과제, 시험을 해내야 하는데...
이걸 굳이 다 해야 할까?
하기 싫어 몸을 비틀다 생각까지 꼬였다.
아들을 핑계 삼아 끝까지 공부하려 했는데 생각보다 힘들고 재미가 없었다.
물론 재미로 공부를 하는 건 아니지만 이 나이에 이렇게 공부하는 게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해진 프레임에 갇혀 불만을 만드는 것보다 자유로운 흥미를 흡수하고 다양한 공기를 마시며 내 삶의 시간을 긍정의 배움으로 채우고 싶어졌다.
문예창작과에 대한 대학 졸업장과 자격증이 필요한 상태도 아닌데 난 왜 이러고 있을까? 아들에게 엄마는 슈퍼우먼이란 걸 자랑하고 싶었나? 계속하기 싫은 마음에 나에게 질문했다.
- 왜 사이버 대학을 등록해서 공부했어?
아들을 위한 가사를 쓰기 위해. 시를 배우러.
- 사이버 대학은 꼭 졸업해야 하는 걸까?
엥? 굳이 졸업하지 않아도 글은 쓸 수 있어.
- 그럼 왜 하고 있어?
아들한테 말한 걸 지키고 싶고 그만둔다는 소리를 하자니 쪽팔려!
답을 찾았다.
그리고 마음먹었다.
꾸준히 시집을 읽고 수사학에 관련된 책을 읽자.
굳이 정해진 대학공부로 나를 괴롭히지 말자.
몰아붙이지 말고 편안하게 사고하자.
다양한 경험을 하며 자유로운 글을 쓰자.
긍정의 감정으로 꾸준히 익히자.
모든 문제에 하나만의 답은 없으니
모든 건 아무래도 괜찮은 것.
나를 편하게 해 주자.
사이버대학에서 배운 시의 기초는 분명 도움이 되었다. 무엇을 공부하고 어떻게 파고들어야 할지에 대한 길을 보았으니 훌륭한 수업이었다. 이것만으로 내가 투자했던 시간과 노력은 건진 것이니 미련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난 사이버 대학 1학기 만에 자퇴신청을 했다. 시험성적은 받아보고 자퇴신청을 할 걸 했나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두 달이 지난 지금에서 생각하면 이 또한 후련하다.
벗어버린 압박감을 다른 흥밋거리로 채우고 보니 사이버대학 중도포기로 여유시간이 생겼다.
내게 필요한 건 스피드가 아니었다.
내게 필요한 건 어두운 우물 안을 보는 것보다 밝은 하늘을 쳐다보는 것.
자유로운 시선의 유연함을 유지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