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력생일, 음력생일
2025년 12월 달력을 보다 갑자기 숫자 8이 보였다. 내 생일을 뜻하는 숫자였다. 엄마의 생일을 알리고 아들의 효도를 강요하기 위해 그날부터 생일을 외쳤다.
"아들! 엄마생일이 12월 8일이야. 미역국 끓여줘."
다짜고짜 생일을 알리는 엄마에게 익숙한 아들은 기막힌 표정으로 예스를 불었다. 생일에 아들이 끓여준 미역국을 먹기 위해 며칠 전부터 소고기와 미역을 사다 놓는 센스는 필수였다.
그리고 만족스러운 미역국을 얻어먹은 날 같이 일하는 아따씨(동료의 별명)에게 말했다. 아들이 끓여준 미역국을 먹고 왔느라고 말이다. 그런데 아따씨가 의아해하며 내 생일이 맞느냐며 되묻는 것이었다.
'12월 8일은 내 생일이 맞은데. 음력생일. 앗'
그 순간 얼굴에 핏기가 가시며 번뜩하는 눈동자가 내 머리를 때렸다. 그날은 음력생일이었던 것이다. 음력생일의 작은 숫자를 양력생일의 숫자로 착각하다니 황당했다. 그리고 3년 전부터 매년 변하는 음력생일보다 정해진 날짜인 양력생일을 챙기기로 바꿨는데 그걸 잊고 있었다. 오랫동안 음력생일을 챙겼으니 그 숫자는 내게 특별한 날을 의미하는 숫자이기도 했지만 어떻게 큰 숫자와 작은 숫자를 의심하지 않았을까. 나답지 않은 행동에 한동안 얼이 빠져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하지 않는 실수를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다. 1년에 한 번뿐인 생일인데 그 마저 착각하는 나를 보며 기가 막혔다. 전날 자른 케이크는 냉장고서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고 미역국은 아직도 한 냄비 그득인데 말이다.
더 걱정스러운 건 아들에게 진짜 생일이 아니니 다시 챙겨 달라고 말하는 거였다. 생일을 착각하는 빙구미도 모자라 진짜 생일을 챙겨달라는 뻔뻔미까지.
그날 저녁 아들에게 말했다.
"엄마 생일이 그날이 아니었어. 정확하게 이 날인데 미역국은 또 끓여줘. 대신 케이크는 생략할게"
황당한 아들은 뻔뻔한 엄마에게 말을 아꼈다. 뭐 괜찮았다. 소고기와 불린 미역을 아들이 보이는 곳에 두면 되는 거니까.
내가 생일을 착각하다니 세월은 하지 않던 실수를 하게 하여 내 연식을 알게 했다. 똑 부러지던 스타일이 갈수록 뭉텅해지면서 빈틈이 생기고 있다. 일에서도 예전만큼 열정적이지 않고 유들해진다. 몸에 힘이 빠지면서 큰일도 별일이라 치부하게 되니 이게 맞나 싶다. 줄어든 에너지로 양질의 삶을 사려니 어느 한쪽은 포기를 선언하게 되지만 빙구미만 늘어가는 게 아쉽기도 하다.
그렇게 나는 2025년 생일을 두 번 챙겨 먹었다. 두 번째 미역국은 새벽 3시마다 깨는 관계로 스스로 해결했지만 선물로 남았던 것은 생일을 착각했다는 황당한 경험이었다.
부디 내년에는 빙구미를 뽑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