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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엘리온 May 31. 2024

금쪽 처방전을 찾아서

“여동입니다. 자해 수용자 발생입니다. 긴급 지원 바랍니다”

근무자의 다급한 목소리가 공용 통신기를 통해 울려 퍼졌다. 

볼펜 뚜껑을 삼켰다고 주장하던 수용자가 이제는 자신의 머리를 변기에 마구 찍어대기 시작했다.  어디서 그런 괴력이 나오는지 현장 근무자 여럿이 달려들었지만 금세 하얀 변기가 선홍빛 피를 흘리기 시작했다.

긴급 출동한 기동순찰팀에 의해 그녀는 보호실로 옮겨졌고, 의료과 직원에 의해 진정제가 투여되고 상처는 보호되었다.      


다음 날 소식을 접하고 찾아갔을 때는 이미 한바탕의 소란이 지나간 뒤였다.  하지만 그 난리를 치고 밤을 꼴딱 지새웠음에도 그녀의 기력은 방전되지 않은 듯했다.  돌발 행동의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었기에 보호실 문을 사이에 둔 채 ‘상담’을 진행했다. 이때 육중한 철문의 한중간에 나 있는 배식구는 그녀와 나의 소통 창구가 되었다.  배식구 위치에 얼굴을 맞추기 위해 나는 어정쩡하게 구부린 자세로 문의 복도 쪽에 서고, 그녀는 방바닥에 앉는 자세를 취했다.  이런 괴상한 상담 장면 연출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말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목청을 키울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비밀 보장’이라는 상담의 기본 원칙을 지키기 위해 내 목소리가 복도 전체에 울려 퍼지는 것을 막아야 했기 때문이다.      


‘보호실 수용 혹은 보호장비 착용 후 24시간 이내 심리상담 실시’라는 지시공문에 의하여 그녀를 찾아갔지만 사실 나는 이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몰랐다. 

고도의 숙련된 전문가가 위엄 있는 어조로 흥분한 환자를 안정시키는 장면을 연출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러기에는 그녀의 행동을 예측하기가 어려웠고 예측할 수 없는 만큼 위험했다. 

언젠가, 마약 금단증상을 겪는 수용자가 배식구 사이로 손을 뻗어 순식간에 내 머리채를 낚아챘던 기억은 수용자의 심리적 안정만큼이나 나의 안전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않게 만들었다.    

  

바로 다음 순간을 짐작하기 어려운 그녀의 범죄는 이상 동기 범죄, 동기 없는 범죄, 묻지마 범죄 등으로 불리는 것이었고 그녀와 피해자 사이에는 아무런 연관성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불특정인 중 한 명이었던 피해자는 한낮 사람이 많은 도심에서 봉변을 당했다.     


출소 후 3개월 만에 다시 만나게 된 그녀가 내뱉은 범죄 이유는 말문이 막히게 만들었다.

“엄마, 아빠가 나를 집에 가두어 둬서 스트레스가 많이 쌓였었거든요. 그래서 그랬어요.”

“……”

마땅히 할 말을 찾지 못한 나는 ‘지나가는 행인의 얼굴을 칼로 긋는 행위는 스트레스 해소법으로 훌륭하지 않다고 말해 주어야 할까?’라고 잠시 생각했다.     


말장난 같지만 나는 ‘이상동기 범죄’라는 명명부터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이상한 동기의 범죄란 무엇이고, 이상하지 않은 범죄의 동기는 무엇인지 차이점을 이해하지 못했다.

출소하자마자 집안에 감금되어야 했던 그녀는 많이 갑갑했었고, 자신의 말대로 스트레스가 한계에 달했다.  외출의 기회가 찾아왔을 때 집에서 범행 도구를 준비해 나갔고, 화풀이 대상을 물색해 찾아내었다.  이 범죄의 동기가 ‘이상하다’라고 한다면, 원한 관계가 분명한 범죄의 동기는 이상하지 않은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혼란스러운 용어는 그것에 대한 대처도 모호하게 만들므로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는 방법을 더욱 헤맸다. 

    

어제의 소란 행위에 대한 그녀의 설명 역시 어려웠다. 

“관심받고 싶어서 그랬어요.”

“그냥 짜증이 났어요.”

마음속 분노를 사람들에게 내보이고, 그 이후에 대하여서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이상동기 범죄(이 용어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만 아직 이렇다 할만한 명칭이 없기에 그냥 이렇게 부르기로 한다.)의 특성은 교도소라는 장소라고 해서 달라지지 않았다.      


교정본부에서는 자신의 욕구를 지각하고 그것을 실현해 가는 동기면담을 이에 대한 심리치료 프로그램으로 제시했지만, 그 효과에 대하여서는 의구심이 든다.  원하는 삶을 위해서 충동을 지연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면 애당초 이런 행동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설상가상 그녀는 정신질환과 지적장애마저 가지고 있었다.

‘대화’라는 것이 불가능했다.

“배가 아파서 죽을 것 같아요.”

복통을 알리기 위해 일으킨 소란의 정도를 보아서는 최소한 맹장이 터진 상황이어야 하지만, 그녀는 여유로운 손짓으로 머리카락을 올려 묶고 있었다.

배를 움켜잡고 구르는 시늉까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한쪽 눈썹이라도 찡그려 주었다면 그녀의 몸 상태를 걱정했을지도 모르겠다.      


사흘이 멀다 하고 문제를 일으키는 그녀의 표정은 늘 한결같았다.  난동을 일으킨 행위자가 자신이 아닌 것처럼 매우 태연했다.  말의 내용과 일치하지 않는 표정과 몸짓이 때로는 나를 화나게 만들었다.  화의 대상이 그녀인지,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하는 나 자신인지 모호했지만 다른 정신질환자들에게 느끼는 안타까움이 그녀에게는 가닿지 않았다.  대신 그 마음은 현장을 지키는 근무자를 향했다.  

   

이상동기 범죄자의 대부분은 중한 처벌을 받기 때문에 사회와의 격리가 어느 정도 유지된다.  문제는 교도소라는 사회에도 이들의 분노 표출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동료 수용자와 직원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예견하기 어려운 폭력성 앞에서 직원에게 허락된 것은 최소한의 방어였다.  과잉 진압의 논란에 휩쓸리지 않아야 했다.  여기에 더해 현저한 폭력성으로 집단 프로그램 참여가 어려운 경우에는 개인상담을 실시하라는 요구는 상담 직원의 안전을 고려하지 않은 것만 같아 씁쓸했다.      


권총을 소지하고도 범인을 향해 발사할 수 없는 경찰처럼, 교도관이 가진 교도봉은 무력했다.  그것은 수용자의 인권과 보호를 위해 매우 조심스럽게 사용되어야 했고, 자칫 교도관 자신을 다치게 만드는 도구로 둔갑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나친 물리력’이라는 논란으로 삶의 위기를 맞이하는 것보다 차라리 수용자의 폭력 앞에 몸을 내놓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이때 수치심과 모멸감, 직업에 대한 회의감은 마음 깊숙한 곳으로 꾹꾹 눌러 올라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      


사회의 공안을 담당하면서도 경찰이나 소방관처럼 치사를 받지 못하는 직업.  일반인에 비해 4.8배 높은 교도관의 자살시도, 폭행 피해 등으로 인한 긴급 심리지원 대상자 연간 약 300여 명.  직원 정신 건강의 적신호를 감지한 교정당국은 다양한 심리지원 프로그램을 내놓고 있지만, 인력 증원 • 승진 기회 확대 • 수용자들의 청원과 진정에 대한 제한 제도 마련 • 소송 관련 전담직원 확충 등과 같은 좀 더 원천적인 방책이 절실하다.  24시간 운영되는 교도소 고객들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서로의 바통을 넘겨받으며 폐쇄된 공간으로 걸어 들어가는 직원들의 어깨가 쓸쓸했다.  직원 커뮤니티에서는 ‘수용자의 잘못인가? 근무자의 잘못인가? 내가 몸담고 있는 기관은 수용자 편인가? 내 편인가?’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한 글들이 아우성치고 있었다.  이런 성토 속 일부는 심리치료과의 무용론으로 파편이 튀었는데, 요는 심리 상담에도 불구하고 문제수의 행동이 변화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심리치료가 재범률을 감소시켰다는 연구 결과를 직원들은 믿지 않았다.  숫자가 적힌 종이 쪼가리가 아닌 변모된 수용자를 직접 볼 수 있기를 바랐다.      


오은영 박사님의 마법처럼 교도소 금쪽이를 뿅~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금쪽 처방전이 있었으면 하는 꿈을 꾸기도 한다.  하지만 전 국민이 보는 방송에 출연 결심을 할 만큼의 변화 동기가 교도소 금쪽이에게는 없었다. 그러기는커녕 문제를 문제로 인식조차 하지 못했다.  항상 곁을 지키면서 금쪽이의 변화를 돕는 강력한 협조자 또한 없었다.  어떤 저명한 심리학자의 이론도, 음악 • 미술 • 연극 등의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 상담기법도 낮은 지능 수준과 정신 질환 그리고 인성 특이자라는 복합적 문제의 돌파구를 찾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런 난관을 인식하는 것은 안갯속을 걷는 기분이 들게 만든다.  희뿌연 시야를 헤치며 내딛는 걸음 속에서 심리치료과 무용론의 원인이 대상자가 아닌 상담자일지도 모른다는 자각이 들면 돌부리를 만난 것만 같다.  어쩔 수 없이 장애물 앞에 잠시 멈춰 선다.  안개의 밀도는 더 높아졌지만 되돌아 서지는 않는다.  수용자의 인권을 위해서 자신의 인권을 내놓아야 하는 교도관의 하루는 어김없이 돌아가고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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