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세례 #성폭력피해자 #조현병 #교육대학교 #엄마의 눈물
K에 대한 기억은 정렬된 몇 개의 해시태그와 함께 떠오른다.
“K님, 약 드실게요~”
…….
“K님?”
약을 받기 위해 내 앞에 서 있는 그녀가 평상시와 달랐다. 자신의 순서가 되었고, 자신의 이름이 불리었고, 주변 사람들은 그녀의 반응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그녀는 그곳에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K님, 약 받으셔야죠. 손 내밀어 보세요.”
수면 중인 사람을 깨우는 것처럼 힘이 들어간 어조로 다시 한번 그녀를 불렀다. 병실 바닥을 뚫어져라 주시하던 그녀가 서서히 시선을 들어 나를 바라보는가 싶었다. ‘이제 됐겠다!’ 싶어 약을 건네려는데 갑자기 내 얼굴에 물이 한가득 뿌려졌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약을 먹기 위해 들고 있던 물컵의 방향을 자신의 입이 아닌 내 얼굴을 향해 튼 것이었다. 컵 속에 담겼던 물이 내 얼굴에서 흩어져 흘러내렸다.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을 때 그녀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을 내게 사납게 쏘아대고 있었다. 나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었지만 내게 하는 말 같지는 않았다. 낭패감에 휩싸인 나는 그것을 다 들어내고 있을 수가 없었다. 등 뒤에 꽂히는 적대적인 말들을 뒤로하고 화장실로 급히 달려갔다. 문을 닫자마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 당시 기껏해야 내 나이 스물네다섯. 주변의 반대를 무릎 쓰고 정신병원으로 당당히 걸어 들어갔지만 아직 경험이 많지 않았을 시기였다. 아니, 직업적 경험을 떠나서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아온 사회 초년생의 인생에 물세례는 낯설었다. 왈칵 쏟아진 눈물의 이유가 당혹감이었든, 서러움이었든 그것을 오래 느끼고 있을 겨를은 없었다. 그보다는 언제쯤 화장실에서 나가야 할지, 나가게 되면 K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동료 직원들에게는 어떤 표정을 보여야 할지……. 우선의 대처를 고민하고 결정해야 했다. 내 감정은 다음으로 미루어도 늦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덮어버린 감정을 다시 꺼내 볼 일은 잘 없었다. 대신 나는 그녀에 대해 자주 생각했다.
155 정도의 자그마한 키에 마른 체형. 턱선 정도까지의 단발머리를 유지한 단아한 외모. 20대 중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학생 같은 느낌.
우발적인 폭력을 심심치 않게 쓰던 영희와 달리 K는 그렇지 않았다. 자신에게만 속삭이는 목소리에게는 늘 화가 잔뜩 나있었지만 직원이나 환우들을 향해서는 친절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사람에 대한 예의가 몸에 베인 그녀는 타고난 성품 자체가 선했고 상냥했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어머니를 기억한다.
60대처럼 보이는 50대의 중년 여성. 딸과 비슷한 길이의 단발이었지만 아직 남아있는 파마끼로 인해 다소 푸석해 보이던 머릿결. 고생스러웠다는 삶과 대비되는 묘한 기품이 인상적이었던 그녀가 내게 찾아와 미안하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울지 않고 이야기하는 방법을 몰랐다.
“참~ 예쁜 아이였어요.
먹고살기가 바빠서 다른 집처럼 애를 살뜰히 살펴 주지 못했었어요. 어른인 우리는 돈 벌러 나가고 첫째인 K가 늘 동생들을 돌봤어요. 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동생들 밥 먹여놓는 건 물론이고 설거지에 집안 청소까지 싹 다 해놓던 애였어요. 그러면서 공부는 또 얼마나 잘했게요. 남들 몇 개씩이나 다니는 학원 한 번 제대로 보낸 적도 없는데 혼자 공부해서 교대를 한 번에 턱 하니 붙은 애예요. “
여기까지 말한 어머니가 잠시 말을 멈추고 물 한 모금을 삼켰다. 아니, 눈물을 삼켰었던가……?
아픈 딸을 둔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보다 어떤 어른의 딱한 사정을 들어내는 것이 더 낯설었던 나는, 그녀의 눈물보다는 나의 어색함을 기억했다. 그 뻘쭘함을 견디기 위해 괜히 입을 삐죽거리고 있자니 어머니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렇게 단번에 대학에 붙더니 스스로 등록금도 마련하겠다고 아르바이트를 바로 찾아 나서더라고요. 고등학교 졸업하면 누구나 아르바이트를 할 수 도 있지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게 그냥 지 용돈 벌려고 하는 거랑 등록금 벌러 나가는 거랑은 엄마 마음이 달라요. 대학 입학할 때까지 만이라도 열심히 놀라고 하고 싶은데 형편이 그렇다 보니까 그런 말도 못 하고, 내심 한편으로는 부담스러운 걱정을 덜어주니까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고…… 에구…….”
울음을 토해내는 긴 한숨이 또다시 공간을 매웠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했었어요. 밤 11시 전에는 항상 집에 들어오던 애가 하루는 조금 늦게 오더라고요. 그래도 그냥 우리 방에 와서 늦어서 죄송하다고 인사하고 지방에 들어가길래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어요. 근데 며칠 후부터 애가 일하러 나가지를 않더라고요. 그때도 그냥 그런가 보다 했어요. 일이 많이 힘들어서 안 나가나 보다 했어요. 돈 벌러 가는 걸 말리지는 못해도 안 나가는 걸 떠밀 수는 없잖아요. 부모가 돼가지고. 그래서 그냥 이참에 좀 쉬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애가…… 그렇게 살뜰히 동생들을 챙기던 애가…… 동생은커녕 집안 일도 안 하더라고요. 집안일 안 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공부하면서도 일하면서도 챙기던 걸 안 하니까 이상하다 싶었던 거죠. 참…… 엄마라는 사람이 그렇게 둔할 수가…… 으휴…… 동생들 말 들으니까 지 누나가 방에서 안 나온 지도 꽤 됐다고 하더라고요. 우리는 일 다닌다고 몰랐는데…… 아니, 무심했던 거죠. 어미가 돼서는 그냥 그저 잘 있겠거니…… 아이고…….”
깊고 깊은 한숨은 이미 어머니의 습관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속에 차이는 무언가를 주기적으로 배출시켜줘야만 하는 것처럼 어머니는 그렇게 중간중간 쉬어갔다.
“동생들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지 방문을 열어봤어요. 진짜 엄마 자격 없죠.” 그런 자신이 어이없다는 듯 피식 실소를 터트린 후에 다시 말을 이었다. “방문을 열었는데 기가 찼어요. 어질러진 방은 둘째치고 냄새부터 훅 들어오는데…… 그걸 무슨 냄새라고 해야 할지…… 더 무서웠던 건 K가 보인 모습이에요. 지 방에 아무도 없는데 누구랑 이야기를 하는지…… 막 따지는 거 같았는데 잠깐 동안은 내가 방에 들어왔는지도 모르는 거 같더니 조금 있으니까 정신 차리고 나를 똑바로 쳐다보더라고요. 너무 놀래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는데 경찰한테 전화가 왔었어요. 이건 또 무슨 일인가 싶었죠…….”
딸이 보인 모습과 경찰의 입에서 나온 ‘성폭력 피해자’라는 말을 이해하기 위해 어머니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편의점 CCTV에 고스란히 담겨 있던 당시 상황은 여전히 입에 담을 수가 없다고 했다.
애초에 사과를 받아야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은 나에게 굳이 사과를 하러 오신 어머님의 수고는 나를 몹시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 당시에는 끔찍한 일을 당한 부모의 마음을 감히 헤아려주지 못한 미숙함이 죄송스러웠고, 지금은 그 끔찍한 일을 저지른 사람들의 정신건강을 위해 일하고 있는 것이 죄송스러웠다.
나는 오늘도 죽고 싶다고 말하는 범죄자에게 살아내라고 했다.
자신을 쓰레기라고 자책하는 범죄자에게 죄와 자신을 분리하라고 했다.
사회 복귀를 앞둔 범죄자가 여전히 ‘피해자 공감하기’에 실패하고 있지만 나는 무능하기만 하다.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고, 부모님의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 든든한 누나가 되고, 새롭게 예쁜 한 가정을 이루었을 K의 삶이 망가졌다. 눈물로 범벅이 된 긴 이야기 끝에 아픈 딸의 행동을 이해해 달라고 한 어머니에게 내가 하는 일을 이해해 달라고 긴 이야기를 들려주어야만 할 것만 같다. 그렇다고 동조해 달라고 감히 떼를 쓸 수는 없다. 오로지 피해자이기만 했던 K와 달리 이 업(業)을 유지하기로 한 것은 오로지 나의 의지적인 선택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잘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조금은 편해질 수 있을까.
나는 그녀의 온전히 회복된 삶을 간절히 원한다. 성폭력 피해로부터 생존했으나 근근이 연명하기만 하는 인생이 아니길 소망한다. 어쩌면 이 바람은 지금 내가 하는 일을 계속하겠다는 고집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나는 끊임없이 그녀와 그 가족에게 죄를 짓는 것만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죄의 방법으로 이 일에 대한 오기를 부려보려 한다. 아련한 먼 기억이 아닌 눈앞의 사진을 보는 것처럼 생생한 K의 모습을 가슴의 응어리로 품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K를 기억한다는 것은 피해자의 고통을 간과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되어 나의 내담자로 연결된다. 한 인격체를 뚝딱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은 내게 없지만 버티고 버텨 볼 생각이다. 무너진 피해자의 삶보다는 자신의 감옥살이를 더 염려하는 나의 내담자에게 피해자의 곡소리가 귓가에 스치는 그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