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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슨 Jan 21. 2024

자민당 정치자금 스캔 문제에 대한 고찰과 파벌 정치

역대급 수준으로 인기 없는 총리, 기시다 후미오

https://youtu.be/3YLDiJKMV-k?si=A78wmlZdxivzyo9q

최근 들어 자민당이 정치자금 스캔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상황이다. 아베파에서 비자금 의혹이 터져나오며 시작된 정치자금 스캔은 곧 다른 파벌로도 번졌고 이는 곧 자민당 전체에 대한 문제로 확산되고 있는 중이다. 사건이 점점 악화되자 아베파인 세이와 정책연구회가 자진 해산을 선언한 것을 시작으로 기시다 후미오의 굉지회, 니카이 도시히로의 지수회 등도 이어서 자진 해산을 결정하고 파벌 정리에 들어가고 있다. 55년 체제 이래 약 70년을 향해 가는 자민당의 파벌 정치가 주요 파벌들의 자진 해산이라는 쇼킹할 만한 사건이 터지고 있는 것을 보면 감회가 새롭긴 하다.


사건의 발단을 잠시 대략적으로 설명하자면 이때까지 자민당 5대 파벌은 매년 정치자금 모금 행사를 하면서 각 의원들이 2만엔의 파티 입장권을 50장씩 의무 판매하였고 여기서 초과 금액을 본인이 가져갈 수 있게 했던 방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러니까 의무 판매 분량을 넘어서 초과분을 팔고 나면 초과한 판매 분량은 본인이 가져가는 구조인데, 문제는 일본 공산당의 매체인 "아카하타"에서 2022년 이 의혹을 제기하여 문제삼기 시작한 것이었다. 아카하타는 2018년부터 2020년까지 3년간 불기재된 이름들이 59명, 자금들만 무려 2422만엔에 달한다고 보도하였으며 이중 불기재 금액이 가장 높았던 파벌로 알려진게 바로 아베파인 세이와 정책연구회였다.

https://www.sankei.com/article/20231209-GQMTWLVAXZIDXFVM4HZZRTSVQQ/

아무튼 리쿠르트, 사가와규빈 사건 이래 역대급 정치자금 스캔이 자민당에서 다시 터졌다고 봐도 무방한데 사실 엄밀히 말해 이번 정치자금 스캔도 그동안의 관행이었다는 부분으로 볼 때 문제라고 보긴 힘든 면이 있었다. 미국에서도 흔히 하는 것이 정치인들의 모금 행사이고 이번 사건 외에도 유사 사건들에서도 자민당은 관례적으로 이런 행사를 해왔었다. 물론 기업의 헌금은 일본 사회에서 비판이 좀 있었지만 이와는 별개로 모금 행사의 경우는 애초에 자민당에서 관례적으로 해온 행사였다. 모금 행사를 통한 정치자금 확보는 기업명을 숨길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일본에서는 일반적인 정치적 수단이었다. 그리고 불기재가 확인되면 수정으로 끝나왔기에 사실 일본 사회의 상식으로는 관례적인 일에 불과했었다.


그러나 카미와키 히로시 고베가쿠엔 대학 교수의 고발 이후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는 독자적으로 자민당 정치인들과 파벌의 정치자금 문제에 대하여 조사를 한 뒤 도쿄지방검찰청에 고소장을 넣으며 문제를 크게 비화시켰는데 그 중에서도 세이와 정책연구회에 대한 공격이 집중적이었다. 카미와키는 전후, 전공투 세대의 일원으로서 일본 좌익 계열에 속하는 인사였으며 아마 그쪽 사람들 중에서도 아베에 대한 강경한 공격수로 유명했었다. 2019년 벚꽃 스캔들 문제를 점화시킨 것도 이 사람이었으며 문재인 정부가 남북대화에 진전을 보일 때마다 아베가 방해하려 한다고 줄기차게 비판해왔던 인사였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정치자금 스캔에 대한 고발도 아베에 대한 정치적인 공격 의도가 근원일 것이다.


https://www.nikkei.com/article/DGXZQOUA192K10Z10C24A1000000/

그리고, 실제로 카와마키의 목적은 일부분 실현되었다. 바로 아베 시절 자민당의 최대 주주이자 보수 방류 계통으로써 개헌파로 분류되는 파벌인 세이와 정책연구회가 자진 해산을 선언한 것이었다. 물론 여기에는 안 그래도 하락세인 지지율을 조금이라도 잡을 목적으로 아베파를 제물 삼아 물갈이 하려는 기시다 총리의 의도도 약간이나마 작용했을 것이다. 아베파는 구심점이었던 아베 신조 전 총리가 허무하게도 괴한한테 습격당해 사망한 이후로 통일교 게이트 및 이끌어 줄 리더의 부재로 인해 몰락의 길을 걷고 있었는데 이번 사건까지 터지니 아베파에 속했던 정치인들(특히 다카이치 사나에 등)이 앞으로의 위상이 더욱 크게 추락하게 될 것 같다. 뭐, 일단은 좀 지켜봐야 하겠지만...


세이와 정책연구회에 이어서 기시다파인 굉지회, 니카이파인 지수회 등도 자진 해산을 선포했으며 이로써 순식간에 중의원 내 자민당 의원의 70%가 무파벌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나마 아직까지 해산은 안 하고 눈치보고 있는 거대 파벌은 기껏 해봐야 아소파로 분류되는 지공회, 모테기파인 헤이세이 연구회 정도가 끝이다. 2000년대 이후 "괴짜 총리" 고이즈미 준이치로를 거쳐 아베 내각에 이르기까지 일본 자민당의 파벌 정치는 개헌파인 보수 방류, 특히 세이와 정책연구회에 의해 주도되었던 것을 돌이켜 본다면 리쿠르트, 사가와규빈 등으로 인해 관료, 기업과의 유착 및 부패 이미지로 나락갔던 보수 본류를 뒷방 신세로 만들었던 그들조차도 허무하게 내려앉을 위기에 처하게 된 셈이다.


그러나 과연 이번 스캔들로 자민당에서 파벌 정치를 뿌리뽑는 것이 가능할까? 난 절대 불가능할 것이라고 본다. 사실 파벌이라는 것부터 일본 정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 정치에도 다 있고 심지어 한국 정치에도 파벌이라는 이름이 아닐 뿐이지, 대체어로 조금 느슨한 형태 느낌의 "계파"라는 용어가 존재한다. 게다가 자민당은 1955년 자유당과 민주당의 합당으로 창당되었던 시기부터 요시다의 보수 본류, 하토야마의 보수 방류를 따라 노선이 나뉘며 파벌 정치가 시작되었고 하물며 전전 제국 시대에도 "삿초도히"를 중심으로 한 번벌 정치가 있었던 나라다. 그런 점에서 보았을 때, 지금 당장은 급한 불부터 끄기 위해 파벌 해체한다는 입장을 내보일 수 있어도 수십년 동안 이어져온 자민당의 파벌 정치가 이 사건 하나로 끝날 가능성은 없다. 록히드 스캔도, 리쿠르트 사건도, 사가와규빈 스캔들도,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극장 정치"조차도 최종적으로 깨부수지 못했던 것이 바로 일본 자민당의 파벌 정치였으니 말이다.


또한 한국에서는 자민당의 파벌 정치가 일본 정치의 후진성을 이야기할 때 거론되며 마냥 부정적인 것으로만 인식되는데 꼭 그렇게만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조금 다르게 보자면 파벌 정치는 자민당 내에 여러 개의 정당들이 존재하는 개념이었고 자민당이 수십년 동안 독주하는 상황에서 내부적으로 내각을 견제하는 시스템이기도 했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55년 체제 동안 헌법 개정과 재무장을 주장하는 보수 방류 계열이 크게 부상하지 못한 것 또한 파벌 정치 덕분이었으며 일본인들 입장에서는 비록 썩은 부분이 있을지라도 경제 성장 과정에서 국가정책의 방향과 기틀을 잡아오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 정치 세력이 자민당인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따라서 파벌 정치가 부패 문제와 일본 정치의 퇴행을 불러온 면도 크지만 우경화 속도를 늦추는 등의 이면도 있었으며 야합, 밀실 정치를 할 때만큼이나 정상적인 "정당 내 정당"으로서의 역할을 한 사례 역시 많았었기에 양면성이 극과 극으로 공존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2021~2024년 기시다 후미오 내각 지지율 (NHK 조사)
2023년 정당 지지율 (NHK 조사)

https://www.nhk.or.jp/senkyo/shijiritsu/

국내 일각에서는 이번 스캔들 덕분에 일본 야당이 정권교체에 성공하여 자민당 일당 독주를 끝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조금 나오는 것 같던데 당연히 불가능하다. 그게 진작에 가능했으면 2018년 모리토모 스캔 때 아베는 쫓겨나고도 남았을 것이다. 일본 정치사에서 자민당이 정권교체 당한 사례는 1993년과 2009년으로 총 2번이었는데 둘 다 부패 문제 때문에 무너졌다기보다는 경제 문제가 결정적인 이유였다. 1993년도는 이미 거품경제의 붕괴로 본격적인 불황이 가속화되는 시기였기에 사가와규빈 스캔은 그냥 기름 붓는 역할 정도였고 2009년도는 잃어버린 20년이 아베(1차)-후쿠다-아소로 이어지는 고이즈미 이후의 자민당 내각들의 미숙함으로 인해 경제난이 심해져서 메니페스토, 생활 정치를 앞세운 민주당에게 총선에서 패해 무너진 사례였다. 한마디로 일본에서 정권교체의 가장 큰 특징은 경제적인 것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그러나 그때와 지금의 상황이 다른 점이라면, 적어도 2024년 현재의 일본 경제 상황은 1993년이나 2009년 만큼 최악은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 일본 경제 상황은 비록 독일에게 밀려 4위로 내려 앉았다지만 전세계 불황 경기 상황 속에서 1%대 성장률을 기록하는 등 주변국들에 비해 나름 선방하고 있는 추세이고 GDP는 무려 6.0% 수치가 성장했다. 수출산업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자동차 시장의 경우 기시다가 인위적으로 계속 조장하는 엔저 혜택을 톡톡히 누렸고 급증한 관광객 소비도 수출 이익을 끌어올렸다. 이는 과거 아베노믹스 때부터 이어져 왔던 엔화 가치를 끌어내려 수출 기업 이익을 늘리고 주가를 부양하려 했던 대규모 금융완화 기조가 이제야 큰 성과를 보이고 있는 것이며 거품경제 붕괴, 잃어버린 20년 극대화 시기와는 다소 차이가 있는 상황이라는 얘기다.


따라서 내가 지금 일본 정치 상황을 굳이 특정 시기에 비유해야 한다면 1993년이나 2009년보다는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총리되기 직전의 상황이 적합하다고 본다. 고이즈미 직전 총리는 모리 요시로라는 인물이었는데 이 사람은 걸핏하면 망언으로 논란이 되어 인기도가 바닥에 가깝던 정치인이었다. 한국에서도 조금 인지도가 있는 "신의 나라" 드립을 쳤던 사람이 바로 모리 요시로였으니 말이다. 실제로 모리 요시로의 지지율은 5.7%대로 역대 최저 수준이었으며 이 양반은 결국 사고가 발생한 중에도 골프 치고 있다가 욕 먹고 사퇴하게 되었다. 그러나 지지율 한 자릿수 총리를 배출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자민당은 정권 교체를 당하기는 커녕 오히려 후임 총리로 선출된 고이즈미 준이치로를 거쳐 아베 신조(1차 내각, 이후 2012년 재집권), 후쿠다 야스오, 아소 다로까지 이어져 2009년 민주당의 하토야마 유키오가 총리가 될 때까지 자민당의 정권 연장이 계속되었다. 물론 지금 자민당에 고이즈미 준이치로에 필적할 만한 카리스마를 가진 차기 총리 후보가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문제는 입헌민주당의 상태 및 지지율이 당시의 일본 민주당보다 개판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정권교체 가능성은 사실상 0%.

https://newsdig.tbs.co.jp/articles/-/646935?display=1

NHK 2024년 1월자 자민당 파벌 관련 조사 결과. 지금 그대로가 좋다는 의견은 단 5%에 불과했다.

차기 총리를 선출하는 자민당 총재 선거는 2024년 9월 치러질텐데 지금 이 시점에서 1위는 전직 자민당 간사장이었던 이시바 시게루이고 2, 3위를 고이즈미 신지로 전 환경대신과 고노 다로 현 디지털 대신이 뒤를 이어 추격하고 있는 모양새이다. 이 중에서 이시바 시게루, 고이즈미 신지로는 무파벌 정치인이고 고노 다로는 지공회라는 아소 다로 전 총리 계열의 파벌에 소속되어 활동하고 있는 정치인이다. 현재 자민당 파벌 해체 분위기 속 지공회는 당장은 해산을 보류하며 눈치보는 듯한 스탠스를 취하고 있는데 과연 여기서 지공회가 이대로 계속 존속할지, 아니면 세이와 정책연구회 및 지수회, 굉지회를 따라 자진 해산의 길로 갈 지에 따라 자민당 내 차기 총리 대결 구도의 움직임이 변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우선 이시바 시게루는 여론조사에서는 압도적인 인기를 얻지만 문제는 당내에서 인기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한반 탈당했었던 이력 탓인지 그에게는 배신자라는 이미지가 계속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이고 이 때문에 아베 집권기 동안 그의 아성을 넘보지 못했었다. 고노 다로도 비슷한 케이스로 대중적인 인기는 높지만 당내 기반이 부족한 경우인데 무엇보다 마이넘버 사태 당시 디지털 대신 자리에 있던 특성상 역량에 대한 의구심도 있는 편이다. 파벌 정치가 지금 표면적으로나마 자진 해산 분위기 속에서 와해되는 분위기라고 해도 파벌에 소속되었던 의원들의 힘은 여전히 막강한지라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파벌의 재구성이 가능한 상태라서 여전히 고노나 특히 이시바는 당내에서 지지받기 좋은 조건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은근 주목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한국에서는 "펀쿨섹좌"로 유명한 고이즈미 신지로다. 단순히 개그 캐릭터로만 소비되기엔 환경대신 시절 신분증 개혁 등의 의외의 유능한 면모와 더불어 차기 총리 순위에서 고노 다로랑 같이 2, 3위를 다투고 있어서 마냥 무시할 만한 존재가 아니다. 또한 무파벌 정치인이라 이번 자민당 파벌들의 정치자금 스캔 문제에서 비교적 자유롭고 기시다 내각 들어서 유독 심하게 견제를 받았는지라 실책 역시 책임론에서 빠져나갈 구멍이 있기에 은근한 복병으로 자리잡기 좋은 사람이다. 어쩌면 당내 비호감 이미지가 강한 1위 후보 이시바 시게루보다도 당내에서 기반과 입지가 강하다고 볼 만한 정치인이 바로 고이즈미 신지로라서 그런지 만약 올해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진짜로 당선된다면 아버지와 비슷한 일본 정치의 "다크 호스"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 흥미가 생긴다.


아무튼 이번 자민당 정치자금 스캔은 올해 9월에 예정된 차기 총재 선거의 향방에 커다란 변수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으며 비록 정권교체 그런 거는 없겠다만 안 그래도 하락세인 기시다 내각의 지지율을 계속 밑으로 박게 만드는 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결국 "새로운 자본주의"를 앞세운 채 제2의 이케다 하야토를 꿈꾸며 야심차게 총리직에 선출된 기시다 후미오였지만 그 끝은 자민당의 흑역사인 모리 요시로나 미야자와 기이치가 맞이 했던 파국을 향해 가고 있는 중이다. 이 정도로 일본에서 평가가 안 좋은 총리는 굳이 찾아봐야 소비세 개판치고 아베한테 정권내준 노다 요시히코나 동일본 대지진 및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있었던 간 나오토, 그냥 재앙 그 자체인 아소 다로랑 하토야마 유키오 정도가 끝일텐데 이런 상황이다 보니 차라리 스가 요시히데를 재평가하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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