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여름, 북경에서 들렀던 한 식당의 게 요리는 가끔 기억 속에서 떠오르곤 한다.
마늘과 마자오 오일이 복잡한 화음을 이루며 향을 피워 올렸고, 그 위로 라오깐마와 즈마장이 더해져 맛의 깊이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 요리는 친절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게 요리라는 것이 으레 그렇듯, 입보다는 손이 훨씬 바쁘게 움직여야만 했으니까.
손끝에서는 게의 육수가 뚝뚝 떨어진다. 마치 방앗간에서 쥐어짜는 면포에 매달린 깨 기름 한 방울마냥 그것은 식탁 위로 토독토독 낙하했다. 야만스러운 기품으로 게의 두꺼운 다릿살을 '빡' 소리와 함께 부러뜨린다. 그러면 그 파편들은 꽤나 정교한 궤적을 그리며 동석한 사람들에게 날아간다. 그 작은 파편들은 셔츠 깃이나 소매 끝에 안착해, 하루 동안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것이다. 수저와 유리컵에 남은 반들거리는 자국들도 마찬가지다.
이 식탁 위에서, 쓸모없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그것들은 증명하고 있다.
살려고 음식을 먹는다지만 이렇게나 불친절하게, 껍질째 툭 던져지는 게 요리는 '난 살아있다' 혹은 '살아간다'는 느낌을 주는 음식에 가깝다.
아시아와 서양의 요리를 구분하는 특징 중 하나가 입에 넣었다가 무언가 뱉어내는 행위가 있느냐 없느냐라고 한다. 특히 생선 쪽은 디쉬에 뼈나 가시라는 요소가 서빙되는 것을 금기라고 볼 정도로 소거한 채, 오로지 살코기만을 올리는 것을 정석으로 한다.
그렇다고 아시아의 요리사들이 게을러서 뼈를 발라내지 않는 건 아닐 것이다.
아마도 그들은 식사를 하는 우리에게 삶의 어떤 질감을, 그 까칠하고 딱딱한 부분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현란하게 젓가락을 움직여야만 평온한 식사를 할 수 있는 갖가지 생선구이들도, 유별나게 뼈를 살려서 손질하는 LA갈비도, 버리는 게 더 많이 나오는 것 같은 간장 양념 게장도, 땀 삐질삐질 흘리며 입술 부르트게 먹는 매운 닭발도 그런 면에서 그렇게 불친절하게 요리되어 나오는 모든 것들이 말이다.
그래서 생각해 보건대, 그 불친절함 속에는 일종의 기묘한 사랑 같은 것이 깃들어 있는지도 모른다.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은,
마치 오래된 서랍 깊숙한 곳에서 찾아낸 해진 종이의 편지지처럼 뭔가 따스한 감각을 이끌어 낸다.
확실한 건, 그해 여름 마라마오시에의 마라는 꽤나 달달했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