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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a Dragon Mar 02. 2023

골프는 골프선수에게
밥 같은 거예요!

KLPGA에서 17년간 투어 활동하던 홍란 프로(37)가 올해 전격 은퇴했다. 해외 무대가 아닌 국내 대회에서만 1047라운드 최다 출전, 17년 연속 시드 유지, 통산 4승 등으로 ‘성실함과 꾸준함의 대명사’인 그는 많은 후배로부터 닮고 싶은 선배로 존경을 받아왔다.


                                                           홍란. 사진 | KLPGA


우리는 누구나 언젠가 현직에서 은퇴한다. 그러나, 100세 시대인 요즈음은 ‘은퇴를 은퇴시켜라!’라고 할 정도로 계속 일을 해야 할 것 같은 사회적 분위기이다. 미국은 1986년부터 아예 정년 개념도 없앴다. 능력이 되면 계속 일한다. 나도 퇴직 후 잠시 쉬었다가 다시 일하고 있다. 물론 현역 때처럼 그리 정신없이 바삐 일하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가족들은 대환영이다. 활기가 생기는 것도 물론이다.


“저는 일을 계단 같은 것으로 생각했어요. 제일 꼭대기에 도달하기 위해 밟고 올라가는 계단. 하지만 실제 일은 밥 같은 거였어요. 매일 먹는 밥. 내 몸과 마음과 정신과 영혼에 영향을 미치는 밥요. 세상에는 허겁지겁 먹는 밥이 있고 마음을 다해 정성스레 먹는 밥이 있어요. 나는 이제 소박한 밥을 정성스레 먹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나를 위해서요.”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황보름 작가)』 소설에서 서점 주인 영주가 하는 말이 바로 내가 최근에 느끼는 그런 마음이다.


요즈음 우리 사회는 주 52시간제 정착의 영향인지 고소득이나 빠른 승진보다는 저소득일지라도 여유롭게 직장생활을 즐기면서 삶의 만족을 찾으려는 ‘다운시프트(downshift) 라이프’ 직장인들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높은 경쟁률로 어렵게 입문한 공무원 자리도 자기와 가치관이 맞지 않으면 쉽게 박차고 떠나기도 한다.


수많은 스포츠 선수들은 체력적 한계 등 이런저런 이유로 도중에 일찍 은퇴하여 다른 길을 선택한다. 상대적으로 육체적인 격렬함이 덜하고 멘털을 중요시하는 골프의 경우에는 국내외에서 40~50대 이후에도 투어 대회에 출전하는 선수들을 더러 찾아볼 수 있다. 40세에 은퇴한 정일미 프로는 챔피언스 투어에 2014년부터 출전하여 통산 13번 우승했다. 1961년생 KPGA 김종덕 프로는 현재 국내 챔피언스 투어의 최강자이다. 1970년생 최경주 프로도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지난 9월 26일 LG전자 박세리 월드 매치에 안니카 소렌스탐, 로레나 오초아 등과 함께 참가했던 영국의 로라 데이비스는 1963년생임에도 아직 현역 선수들과 필드를 누비고 있다. 2021년 영국 AIG 여자오픈에 출전해 41번째 출전 기록도 세웠다. 미국의 필 미켈슨도 51세에 메이저 우승을 했다.


오랫동안 선수로 활동하는 이들의 공통점은 지속적으로 적절한 체력 관리는 물론 골프 비시즌에는 가족들과 함께 충분한 휴식을 취하며 균형적인 삶을 즐기는 것이 원동력이라고 한다. 이들에게 골프란 직업(일)이고 즐거운 유희이며 동시에 삶 그 자체이다.


할 수만 있다면 우리도 챔피언스 투어뿐만 아니라 정규 투어에 오랫동안 출전하는 선수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이제는 골프라는 일 그 자체를 즐기며, 서점 주인 영주처럼 자신을 위해 소박한 밥을 정성스레 먹을 수 있는 경험이 풍부하고, 경륜이 묻어나는 진정한 프로들이 우리 곁에 계속 함께 있다면…. 홍란 선수의 은퇴식 현장을 직접 찾았던 필자는 잠시 꿈꾸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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