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하고 한갓진 시간이 많다 보니 간간이 떠오르는 단어가 있었다.
시절인연(時節因緣).
어린 시절 한 동네, 학교, 군대, 직장, 사회에서 만나고 떠났던 숱한 인연들. 한때는 영원할 것만 같았던 인연이 단지 필요할 때만 잠시 만나고 헤어지는 시절인연이었음을 새삼 깨닫게 될 때는 더욱 그랬다. 시절인연의 아쉬움이여. 아! 세월의 무상함이여.
인연(因緣)은 어떤 원인이나 조건에 의해 맺어진 관계나 연결이다. 인연이란 참으로 묘하다. 나처럼 만난 지 3개월 만에 겨우 3번 얼굴 보고 결혼해서 줄기차게 살아온 33년 차 부부의 질긴 인연이 있는가 하면, 뜨거운 열애 끝에 결혼한 지 3개월 만에 끝나는 허망한 인연도 보았다. 잠시 왔다 가는 인생, 잠시 머물다 갈 세상에서 인연이 남기고 간 생채기들을 돌아보며 반성할 것은 반성하고 부족한 것은 계속 채워나가야 한다.
나부터 더 성장해야 나보다 더 성장한 시절인연을 만나는 법이다. 어떤 인연은 짧게 스치듯 지나가지만, 그 여운은 깊고 강렬해서 오래가기도 한다. 어떤 인연은 나를 살리기도 하고, 나를 죽게도 한다. 평생 이어 가는 것이 쉽지 않다. 또 모든 관계를 그럴 필요도 없다. 그러나, 인연을 가볍게 받아들이다 보면 좋은 인연을 놓칠 수 있다. 잘못된 인연은 때로는 집착을 낳고, 나의 균형을 잃게 만들어 나를 망가지게 할 수 있지만, 좋은 인연은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그 속에서 서로를 지지하고 성장할 수 있게 도와준다.
“좋은 친구가 큰 재산이다.”라는 말이 있다. 나도 친구의 권유로 현재의 직장에 재취업했다. 그 친구에게 늘 고맙게 생각한다. 퇴직하고 보니, 놀고 있는 사람에게 일자리를 마련해 주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겠더라. 인생의 한갓진 오후에 별로 불러주는 이가 없을 땐 더욱 그러하다. 누군가에게는 취업을 도와주는 것이 최고의 우정이고 복지다. 한때 조직의 상사로 만난 인연이라면, 만날 때마다 자신의 화려했던 과거 공적만 자랑하지 말고 옛 부하의 취업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나도 몇몇 일자리를 추천해 주었다. 이 역시 시절인연에서 비롯된다.
“바람처럼 물처럼, 가는 인연 잡지를 말고, 오는 인연 막지 마세요.” 노랫말에도 나온다. 새로운 인연을 받아들이려면 우선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한다. 신통찮은 인연을 만나 또 고생하는 것보다, 지금까지 인연과 평생 함께 가고 싶다면 상대의 인격을 존중하며 변함없는 관심을 보여주고, 배려와 감사의 표현도 자주 하고, 정기적으로 연락하여 시간을 함께하는 등의 노력을 해야 한다. 인연도 공을 들여야만 필연이 되는 법이다. 반대로 서로의 성장에 방해된다면 과감히 그 인연을 놓아주는 용기도 필요하다.
결국, 좋은 인연은 우리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준다. 단순히 지나치는 인연에서 평생 인연으로 함께 갈 나의 굿 파트너를 찾아보자. 이미 지나간 인연에서 만날 수 있고, 새로운 인연에서 만날 수도 있다. 좋은 인연이 스치는 동안 우리는 늘 함께 성장하고, 서로의 삶을 더 아름답게 만들어 가는 여정을 함께할 수 있을 것이다. 평생 함께할 나의 굿 파트너는 누구일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