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베르는 화가 났어요

나쁜 감정은 없다. 그러나 그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고 관리할 것인가.

by 이네스

작가님, 커피 한 잔에 글 쓰기 좋은 오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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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osse colere” 로베르가 화가 났어요.


이 책은 미레이 달랑세가 쓰고 에콜 로아지르가 2000년도에 펴낸 프랑스 그림책이다. 작가는 화가 난 소년 로베르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어느 날, 로베르는 잔뜩 화가 난 채 집에 들어온다. 신발을 신고 들어가는 로베르에게 아빠는 단지, 운동화를 벗으라, 고 하는데 로베르는 기다렸다는 듯이 신발을 아무렇게나 벗어던진다. 그런 로베르를 아빠는 멀뚱히 바라볼 뿐이다. 로베르는 저녁 식탁에 앉아 시금치를 보곤 투정이다. 그제야 아빠는 ‘진정될 때까지 네 방에 올라가 있으라’고 한다. 로베르는 자기 방에 들어서면서, 큰 숨을 내뿜으며 화를 꺼낸다. 로베르에게서 뿜어져 나온 커다랗고 붉은 화가 로베르에게 묻는다. '내가 뭘 할까?' 로베르는 작은 목소리로 ‘너하고 싶은 대로 해...’ 한다. 로베르의 화는 엄청난 힘을 가졌다. 이불, 베개를 뒤집고, 전등, 로베르가 좋아하는 장난감 등 방에 있는 물건들을 깨트리고 부순다. 로베르가 좋아하는 책이 모두 구겨졌다. 이런 상황을 지켜본 로베르는 당황한다. 황급히 부서지고 깨진 물건들을 정리하고 고친다. 그리곤 자신의 화를 아주 작은 상자에 넣는다. 로베르는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가며 아빠에게 큰 소리로 묻는다. '아빠 디저트 있어요?'


아빠가 로베르에게 섣불리 개입하지 않는 것은 사람의 감정에 대한 존중 곧 로베르에 대한 존중이다

먼저, 로베르는 밖에서 나쁜 하루를 보냈다. 그래서 화가 잔뜩 났지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알 수 없다. 화가 왜 났는지가 중요하지 않다. 우리의 감정은 무척 다양해서 나쁜 일이 있으면 화가 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니 말이다. 로베르는 그 화를 어떻게 다룰까 가 궁금할 뿐이다. 로베르의 화는 로베르의 모든 행동이나 말에 덕지덕지 붙어있다. 그럼에도 아빠는 로베르에게 섣불리 개입하지 않는다. 감정에 대한 존중이고 곧 로베르에 대한 존중에서이다. 왜 화가 났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지 않는다. 무관심해서가 아니다. 또 화를 내지 말라거나 하지도 않는다. 화가 났는데 화를 내지 말라고 하는 것을 주변에서 종종 듣는다. 진정하라는 말일 게다. 그러나 화나 났는데 화를 내지 말라고 한다고 해서 화가 사라지거나 가라앉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애꿎게 저녁 식탁의 음식을 탓하는 것은 보기 어렵다. ‘화’라는 감정은 자칫 다른 이를 다치게 할 우려가 있다. 로베르의 신발이 뭘 잘못하거나 저녁 식탁의 시금치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로베르의 화가 애꿎은 그의 신발이 저 멀리 나가떨어지는 것을 시작으로 시금치에게 그리고 이어서 계속 누군가에게 옮겨갈 것임을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아빠는 로베르의 감정은 이해하지만 화가 계속 누군가에게 옮겨가는 것은 삼가야 할 일일 뿐 아니라 로베르에게 일어난 감정에 대해 아빠가 개입할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에 ‘진정될 때까지 방에 있으라’고 한다. 그것은 로베르의 아빠로서, 그리고 어른으로서의 최소한의 권위,라고 봐도 좋을 듯싶다.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고 관리할까?

로베르는 자기 방에 들어가 숨을 깊이 들어마신 후 마침내 어마어마한 큰 화를 쏟아 낸다. 로베르에게서 뿜어져 나온 붉고 거대한 화는 정작 로베르에게 ‘내가 뭘 할까?’ 묻는다. 로베르는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당연한 듯 그러나 살짝 당황한 듯 어쭙잖게 말한다. 화, 라는 분노는 나쁜 감정이 아니다. 그러나 로베르의 '화'가 로베르에게 '내가 뭘 할까?'라고 물은 것은 '화'라는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는가는 전적으로 자기 자신에게 달렸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어떤 이는 닥치는 대로 부수고 깨트리고 때리면서 자기가 화가 났다는 것을 폭력으로 표출하는가 하면, 어떤 이는 자기가 화난 감정을 폭력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표현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는가는 사람마다 다르다. 난 어떻게 내 감정을 표현하고 관리하고 있는가, 를 들여다보게 되는 대목이다.


폭력을 경험하는 로베르

로베르의 화는 기다렸다는 듯이 로베르의 방을 아수라장으로 만든다. 불행히도 로베르의 방엔 로베르가 좋아하는 물건들로 가득하다. 로베르는 '화'의 폭력성에 놀라 당황한다. 로베르는 그의 물건들이 부서지고 깨지고 책들이 구겨지는 것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 화를 폭력으로 드러냈을 때 그 주변의 누군가는 그것으로 인해 다친다. 또 자신의 폭력적인 화의 분출은 고스란히 자기 마음을 다시 아프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화를 낼 당시엔 그것을 깨닫기는 어렵다. 로베르는 자신의 아끼던 물건들을 고치고 수리하고 구겨진 책들을 편다. 분노의 폭력이 남긴 상처들은 깊지만, 로베르는 그것을 안타깝게 눈여겨보며 하나하나 매만지고 정리한다.


그리고 로베르는 자신의 분노를 아주 작은 상자 안에 넣는다. 상처를 남긴 분노를 탓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자신에게 다양한 감정이 생기는 것과 그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후회하거나 자책할 일이 아닌 무척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로베르는 분노를 다시 자기 안으로 들여보내지도 않는다. 왜냐면 그동안 몰랐던 화의 폭력성으로 인해 주변에 상처를 내고 자신이 더 아팠는데 그 폭력성을 자기 안에 보존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로베르의 폭력성은 작은 상자 안에서 영원히 잠들 것이다.

다음에 또 나쁜 하루를 보내면 그에 따른 감정, 즉 화가 다시금 생길 수도 있지만 그때는 이번과는 다르게 자기감정을 표현할 것을 기대하게 된다. 누군가에게 애꿎게 화를 옮기거나 다치게 하는 일은 안 일어날 것 같다. 적어도 로베르에게는. 이 책을 읽는 나 역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