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네스 Feb 02. 2024

일상이 우리를 예기치 않은 세계로 끊임없이 이끌지라도

도서관이다. 아이가 자유롭게 다닌다. 아이의 종종거리는 발자국 소리에 도서관 사서가 아이를 따라간다. 조용히(?) 하게 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아이는 그 순간, 상황을 아예 바꾼다. 아이는 힘을 내어 사서의 손이 닿지 않게 하려고 뛴다. 아이의 발자국 소리와 함께 웃음소리는 어두침침하고 무겁고 게다가 싸늘한 장소에 유쾌하게 울려 퍼진다. 어린이는 갑자기 일어나는 예기치 않은 상황을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 타고 난 걸까? 그것도 주변에 있는 물건들 혹은 사람들을 자신의 즐거움으로 끌어들이면서 말이다.   

   

그림책 한 권이 눈에 들어온다. 겉표지에는 아기 돼지가 안락의자에 앉아 조명을 받으며 책을 읽고 있다. 그림책 “카임 키숑이 책을 읽어요”이다.   

   

책을 읽는 것은 다른 이들의 삶을 능동적이며 역동적으로 경험하면서 세상과 사람들을 이해하는 일이다

   

독서는 고독한 활동이다. 그러나 매우 능동적이다. 우리가 직접 책을 펼쳤을 때  비로소 수많은 이야기들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림책 “카임 키숑이 책을 읽어요” 는 프랑스 작가 아나이스 보즐라드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 에꼴데로와지르 출판사에서 2023년에 출판했다. 겉표지를 넘기면, 본문이 시작되기 전 이미지를 볼 수 있다. 카임이 커다란 책을 고개를 숙여 내려다보고 있다. 책은 굳게 닫혀있다. 그 책을 펼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한 듯하다. 카임은 과연 그 책을 펼칠까,라는 의문이 들지만, 카임과 함께 그의 내면의 세계로 여행을 할 수 있는 순간이 우리, 독자들에게도 펼쳐진다. 우리는 이미 능동적인 삶을 살 준비가 되어있다.   

   

그림책 "카임 키숑이 책을 읽어요"는, 아기 돼지 카임이 자기가 좋아하는 책의 주인공인 염소의 모험이야기를 읽는 이야기로, 이야기 속에 다른 이야기를 끼워 넣는 '미정 아빔'( la mise en abyme)의 기법을 사용하고 있는 게 특징이다. 

그림책, "카임 키숑이 책을 읽어요" 

카임은 혼자 책을 읽기 시작한다. 주변의 다른 아기 돼지들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다른 놀이를 하느라 분주하다. 각자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을 막을 이유 없다. 카임이 읽는 책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주인공인 염소는 자신의 비행기로 여행을 시작한다. 여행 중, 수차례 예기치 않은 일, 뜻밖의 상황들에 직면한다. 그럴 때마다 염소는 능숙하리만치 위기 상황을 지혜롭게 넘긴다. 먼저, 날개가 부러진 염소의 비행기가 추락을 하는데, 웬걸... 어느새 날개 없는 비행기를 자동차로 변신시켜 도로 위를 신나게 달리고, 신나게 달리던 자동차의 바퀴는 임무를 다했는지, 자동차 몸체에서 빠져나간다. 바퀴가 없는 자동차 몸체는 그러나 문제없다. 물을 만나 카약으로 거듭나게 한다. 드넓은 바다를 항해를 하면서, 거친 파도를 예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염소는 그마저 즐긴다. 드높은 파도를 이용해 서핑을 하는가 싶더니 앗... 카약이 파도에 부서져 해변가에서 조각이 난다. 그러나 부서진 카약을 단아하고 아담한 여행자의 안식처로 탈바꿈시키는데 염소의 탁월한 창의력이 빛을 발한다. 카임은? 염소의 모험 여정에 함께 한다. 감정이입을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꿈을 꾼다. 

도서관에서 뛰던 아이 역시 그의 인생에서 다른 예기치 않은 일을 만나도 염소처럼 지혜롭게 넘기면서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 나갈 것 같은 기대와 설렘에 책을 덮을 수가 없다. 읽고 또 읽는다.   

카임은 염소의 모험이야기를 여러 번 읽으면서 예기치 않은 일을 만났을 때의 생길 수 있는 감정들을 조절하는 방법을 스스로 배우고 있다. 
비행기로 시작한 염소의 보험 여행은 중간에 많은 어려움을 만나도 이어진다.

   

우리의 삶은 수많은 다양한 변화의 영향을 받는다. 정신분석학자, 발레리아 사바테르(Valeria Sabater)는, 프랑스 잡지 "우리들이 사유"에서 '뇌'의 특성에 대해 언급한다. 우리의 뇌는 우연과 변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때문에 외부환경의 변화를 위협적인 것으로 여긴다. 다시 말해 일상에서 예기치 않은 일이 발생했을 때, 그것을 위협으로 간주해 그에 대한 대응책으로 이전의 경험들을 탐색하고, 표본을 찾아내어 그대로 행하려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오래전에 들은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결혼식을 막 마친 신혼부부가 신혼여행을 떠나 호텔방에 들어가면, 대부분의 신혼부부들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텔레비전을 켜는 것이라고 했다. 긴장했을 때 그것을 풀기 위해서는 우리의 뇌는 평소에 "하던 대로, 습관대로"하려고 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지금과는 다르게 예전엔 텔레비전을 보는 게 일상 중의 일상이었고, 혹 보지 않아도 습관적으로 틀어놓고 사는 경우가 많아서 익숙한 일 중에서도 제일이었던 것이다. 요즘은?      


프랑스 작가 폴 부르제(Paul Bourget)는 "우리가 생각하면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한다"라고 한 것처럼, 역설적이게도 우리의 뇌는 습관, 즉 익숙한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우리에게 능동적으로 그리고 끊임없이 사유하길 요구한다. 인간에게 있는 창의성을 활용하면서 우리에게 다른 세상을 향해 문을 활짝 열어놓길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저항하는 존재로서어린이 – 상황을 탓하거나 후회하지도 않을뿐더러 가만히 있지 않는 어린이    

 

카임이 좋아하는 이야기의 주인공, 염소는 예기치 않은 상황에 적절하게 대응한다. 염소는 자신에게 예고 없이 벌어진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는데, 특히 그때그때의 변화 - 말이 변화이지 장애와 결핍- 을 활용하는 능동적이고 역동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마치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를 모험에 대비하기 위해 이미 프로그램화된 것처럼 말이다. 비행기로 하늘을 날다가 갑자기 날개가 떨어져 나갔을 때, 그나마 평평한 장소, 도로 위에 착륙을 시도한다. 이미 떨어져 나간 날개에 대한 미련은 없다. 여행을 지속하기 위해 바퀴 달린 이동 수단이면 족하다. 도로를 달리기 위해서 말이다. 자동차 바퀴 역시 오래 사용하면 닳기 마련이다. 바퀴가 떨어져 나갔을 때, 여행을 지속하기 위해 도로를 고집할 필요 역시 없다. 드넓은 바다로의 항해가 가능하니까 말이다. 여행 즉 새로운 세상에 대한 호기심은 애초의 환경이 바뀐 들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자신이 의도치 않고, 피할 수 없는 변화를 탓하거나 후회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지도 않다. 예상치 않은 변화는 그것을 직면하는 삶의 주체자에게 상상력과 창의력을 더해 더 즐거운 여행을 예고할 뿐이다. 정신분석학자, 발레리아 사바테르는 예기치 않은 일에 직면했을 때 또는 급작스런 변화가 우리 일상을 엄습할 때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일은 '목적'이라고 했다. 목적 또는 목표를 기억하면서 위기상황에 마주해야 한다는 것이다. 갑자기 벌어진 일을 탓하거나, 후회하는 일은 아무 소용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가만히 있는 것 역시 해결의 방법이 아니다. 염소에게 교통수단의 장애와 변화는 세상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더해주고 있다. 

게다가 카누마저 파도에 부서져 바닷가에서 조각이 났을 때, 염소는 공책과 연필을 꺼내는 것도 잊지 않는다. 사유하는 시간이다. 위험하고 긴장의 연속이었던 여행을 잠시 뒤로하고 자신만의 은밀한 경험을 내면에 잡아두는 순간이다. 자기 자신에게 말을 걸면서,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는 시간이다. 자신에게 있는 풍부한 자원을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여행 중에 발견한 것에 대한 섬세하고 자세한 묘사는 그래서 다른 사람이 겪을 수 있는 이야기로 거듭난다.     


사유하는 염소의 글 덕분에, 카임은 염소의 특별한 여정에 함께 한다. "여러 번 반복해서" 말이다. 때문에 비행기의 날개가 떨어져 나가는 사고가 일어나도 카임은 아무런 두려움이나 근심이 없어 보인다. 그저 태연하게 책장을 넘길 뿐이다.      


어린이 문학 전문가 소피 반 데르 린덴은 어린이의 "반복해서 책 읽기"에 대해 강조한다. 어린이는 한 권의 책을 한 번, 두 번 세 번 혹은 수십 번 반복해서 읽는 것을 좋아하고, 좀 더 어린아이들은 어른 혹은 부모에게 그것을 요구한다. 책을 반복해서 읽으면서 아이는 이야기를 깊이 있게 이해하고 또 전체적인 맥락을 파악한다. 뿐만 아니라 기억력은 반복해서 읽기에 의해 단련이 된다. 더욱이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다룰 줄 알게 되는데, 책을 여러 번 거듭 읽으면서, 어린이는 다가올 장면을 알게 되고, 그 장면에 반응할 본인의 감정을 준비한다. 한 권의 책에서 자신의 감정을 스토리의 맥락에 따라 온전히 다루게 될 즈음 아이는 서서히 그림책을 손에서 놓는다. 그리고 다른 그림책의 세계로 향한다.  

 

그림책, "카임 키숑이 책을 읽어요"의 한 장면을 예로 들면, 염소의 비행기가 하늘을 날다가 공중에서 날개가 떨어져 나간다. 사고다. '앗!' 놀랄 수 있고, 두려울 수 있다. 걱정할 수 있다.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 감정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다음 장면에서 비행기는 도로에 착륙하고 염소는 도로를 쌩~ 하고 달린다. 이때 드는 감정은 바로 앞 장에서 생겼던 두려움, 걱정은 말끔히 사라진다. 카임은 비행기의 날개가 떨어져 나가는 장면에서 아주 태연하게 책장을 넘긴다. 카임의 태연한 얼굴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여러 번' 읽었구나, 이다. 왜냐면, 다가올 다음 장면을 잘 알고 있고, 그래서 두려워할 게 아무것도 없다. 특히 염소 본인이 닥친 예기치 않은 상황에 섣불리 두려워 떨거나 날개를 잃게 되어 슬퍼하거나 하지 않는다. 카임은 이미 이야기 속으로 온전히 들어갔기에 아무런 편견 없이 염소의 감정에 이입하고 있으며, 사고가 났다고 두려워하고, 걱정부터 하는 것은 감정을 소비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차츰 알아가고 있다. 염소의 모험이야기를 온전히 다 이해하고 이야기의 흐름에 대한 맥락을 전체적으로 파악하고 있다. 특히, 알면 두려울 게 없다.  두려움은 일반적으로 낯설고 모르는 것에서부터 비롯된다. 어둠에 대한 두려움은 어둠 속에서는 뭔가를 구별하는 게 어려워 모르는 채로 있어야 하기 때문에 생기는 감정이다. 사고가 났을 때 일단 두려움이 앞선다. 사고가 왜 일어났는지, 어떻게 처리되는지 모르기 때문에 두려움이 생기고 이어서 걱정이 생긴다.  책 읽기는, 더욱이 반복해서 읽는 것은 책에서 펼쳐진 상황을 전체적으로 파악하고 직접 경험하는 것과 같다. 다양한 경험을 거듭할수록 뜻하지 않은 상황에 참착하게 대처하는 유연함도 기를 수 있을 것이다. 

       

카임은 책을 덮는다. 잠잘 시간이다. 그러나 아쉽지 않다. 염소와 함께 했던 특별한 경험으로 카임은 혼자 모험을 떠난다. 염소와의 "거듭된" 특별한 모험은 자신의 내면세계를 섬세하게 들여다보는 계기였고,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책을 읽기 이전과 이후 또 여러 번 반복해서 읽은 후의 카임이 성장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은은하게 퍼지는 카임의 잔잔한 미소가 그것을 말해 주고 있다. 

염소는 긴박했던 여행 중 바닷가에 머물며 자신의 여정을 이야기로 쓰고, 카임은 그런 염소를 부드러운 미소로 바라본다. 카임은 염소의 여정에 여러 번 함께 하며 타인의 삶을 경험한다


     

카임의 옆에 다른 아기 돼지가 어느새 다가와 있는 것이 눈에 띈 것은 책을 덮을 때 즈음이다. 카임과 다른 경험을 한 게 분명하다. 카임이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할 때, 옆에 있던 아기 돼지는 카임의 비행기를 손으로 붙잡고 하늘을 날고 있는 꿈을 꾼다. 같은 책을 읽음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느낌은 다르다.    

같은 책을 읽더라도 읽은 후의 느낌은 각자 다르다. 카임이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하는 꿈을 꾸고, 같은 책을 읽었던 다른 아기 돼지는 비행기를 손으로 붙잡고 하늘을 나는 꿈을 꾼다

  

작가 아나이스 보즐라드는 그림책 "카임 키숑이 책을 읽어요"에서 미정아빔(mise en abyme)의 기법을 사용하는데, 이 테크닉은 그림 속의 그림, 이야기 속의 이야기라는 격자구조의 기법으로 한 이야기 속에 다른 이야기를 끼워 넣어 책 읽기를 역동적으로 만드는 효과를 준다. 염소의 모험 이야기와 카임의 책 읽기의 즐거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또한, 두쪽에 걸친 페이지 전체를 이용해 카임의 현실과 염소의 픽션을 한데 어우러지게 하는 레이아웃 기법을 사용하는데, 미졍아빔의 효과를 극대화시키고 있을뿐더러 마치 염소의 모험이야기에서 비롯한 카임의 꿈의 절실함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 꿈의 현실화를 예고하는 듯하다. 

작가는 주된 이야기에 다른 이야기를 끼워넣는 미졍아빔, 기법의 사용과 두 쪽에 걸친 면에 두 이야기를 동시에 마치 한 이야기처럼 배치하는 레이아웃으로 이야기에 박진감을 주고 있다.


책을 읽는 것은 예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삶을 사는 순간이다. 그러기에 이미 읽은 이야기들은 일상에서 경험한 것과 같아 우리 내면에 차고 차곡 쌓여 우리 삶의 여정에 동반한다. 카임과 염소의 이야기는 일상에서 예기치 않은 낯선 일들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에 깊은 울림을 준다.  


작가의 이전글 나는 누구인가... 다른 이들 없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