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네스 Sep 28. 2024

지나친 호기심은 더 이상 해가 되지 않는다.

<조금만 더>

그림책 "조금만 더"

어린이의 호기심은 무한하다. 

여기, 아미르는 무한한 호기심으로 문 저편에 있는 비밀을 밝히는 데 성공한다. 


아미르는 빨리 키가 크고 싶다. 아미르 집에 빨간 문이 있는데, 그 문은 늘 두 겹으로 잠겨있다. 문 뒤에 뭐가 있을까 궁금해하는 아미르에게 부모는 아미르가 그 문에 가까이 가는 것을 금지했다. 아미르가 너무 어리다는 이유에서다. 아미르는 하루하루 자라고 있다. 그런데, 아미르의 부모는 정원에 있는 플라스틱으로 된 꼬마 요정을 보여주며, 그 요정의 키를 넘어서야 한다는 조건을 내세웠다. 그 인형보다 키가 커야지 빨간 문을 열 수 있는 권리를 주겠다는 것이다. 아미르가 빨리 크고 싶은 이유다. 문을 열 수 있는 권리! 를 갖기 위해서 말이다. 

아미르는 빨간 문 너머에 뭐가 있는지 무척 궁금하다 아빠는 너무 어리다는 이유에서 그 문을 열 권리를 주지 않았다. 대신 꼬마요정의 키를 넘어서면 그때 가능하다는 거였다. 


열심히 운동하고 잘 먹었다. 그렇다고 뭐든 먹을 수는 없고... 좋아하는 것만 골라서 잘 먹었다. 그리고 밤이면 기지개를 켜서 어떻게든 키를 늘이는데 애썼다. 그러나... 아침마다 아미르의 '의식'이 되어버린 꼬마요정과의 키재기에서 늘 '조금' 부족했다. 아침마다 느껴야 하는 실망감에, 아미르는 '크는 게 불가능한 거야? 난 안 되는 거야?" 했지만, 그렇다고 호기심이 줄어들지는 않았다. 


어느 날 밤, 소변을 보러 화장실에 가는데, 글쎄... 빨간 문이 살짝 열려있는 것이 보였다. 순간 망설였다. 부모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그래 난 아직 어려..., 다른 한 편으론, 한 번 보기만 하는 건데 뭐... 아무도 모를 텐데... 그 와중에 부모님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아미르 거기서 뭐 해? 어서 돌아가서 자야지"  망설이다 보니 기회를 놓쳤다. 다음 기회를 기대하며 발길을 돌려야 했다. 다음 기회가 올는지 확신을 못하지만 말이다.

호기심은 아무것도 아닌 것에 경탄하고 모든 것에 관심을 갖게 되는 성스런 힘이라고 했는데, 웬걸, 부모님의 권위 앞에 힘을 잃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정말 이상했다. 아미르는 왜 자라지 않는 걸까?  아미르의 모험이 시작되었다. 부모님이 안 계시는 틈을 타서 아미르는 집안 구석구석을 뒤졌다. 열쇠를 찾기 위해서다. 꾸러미 하나하나를 뒤져, 결국 어느 날 열쇠 꾸러미를 찾았다. 아미르는 열쇠를 하나하나 맞춰봤다. 아미르의 모험을 따라가다 보니 가슴이 두근두근 거리는데, 아미르가 찾아낸 열쇠가 딱 맞았을 때 이제 됐나 싶었다. 그런데, 문을 돌려도 돌려도 꿈쩍 안는다. 다시 보니 문 꼭대기에 또 하나의 열쇠구멍이 보인다. 의자 위로 올라가 열쇠꾸러미에서 열쇠를 찾았다. 첫 번째는 열쇠구멍에 들어가지 않았고, 두 번째 열쇠는 구멍에서 돌아가지 않았고, 세 번째, 그래 세 번째 열쇠가 딱 맞았다. 


드디어 삐걱 소리를 내면서 문이 열리는데, 너무 캄캄해서 아무것도 볼 수가 없다. 어둠에 눈이 익을 때까지 기다리며 한 걸음 한 걸음..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앞으로 나아가는데, 아미르 앞에 펼쳐진 광경을 믿을 수가 없다. 아미르 눈앞엔 많은 형체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바로 정원에서 매일 아침 키겨루기를 해서 실망감을 준 꼬마 요정들이 크기별로 줄 서있는 거다. 


도저히 믿을 없는 광경에 아미르의 눈은 커질 때로 커져 동그래지고, 벌어진 입은 다물어질 줄 몰랐다. 


탐정 소설도 아니고, 어린이 그림책을 보면서 마음이 이토록 조마조마해지기는 처음이다. 그리고 아미르처럼 마지막 페이지에서 아미르가 발견한 비밀의 실체에 말문이 막혀 내가 뭘 잘 못 봤나... 몇 번을 다시 읽었다. 


우리가 동심이라고 이야기하는 어린 시절의 마음에는 "호기심"이 있다. 세상에 대한 열린 마음으로 주변의 모든 것들, 모든 사람들 그리고 저 너머에는 뭐가 있을까 궁금해하는 마음이고, 다른 세상을 향한 열린 마음이다. 그런데 그 호기심이 나이를 먹을수록 사라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왜 그럴까? 


이 그림책에서 그 이유를 설명해주고 있다. 그리고 일깨워주고 있다. 

호기심, 은 선물과도 같다. 그것은 어린이에게 그들을 둘러싼 환경과 세상을 탐험하도록 부추긴다. 끊임없는 질문을 하면서 말이다.  어느 순간까지 몰랐던 세상을 알고자 하는 갈증이 일어날 때 도전을 받게 되는데, 시련, 위험 또는 위협 등을 만날 수 있다. 그 시련은 그림책에서 처럼 부모가 될 수 있다. 영혼이 노예화가 되는 것은 일상의 규칙, 법, 윤리, 도덕, 학교 교육, 관습, 전통, 일상의 습관 등을 거친다. 이들의 중요성을 비방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질문하는 것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문서화된 것, 누군가가 옳다고 강하게 말한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질실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믿어 의심치 않는 자명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현실, 그것을 진실로 받아들이기 이전에 그것이 있을 만한 것인지에 대한 질문과 자문이 앞서야 할 것이다. 시련을 넘어섰을 때, 감추어진 진실을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부모가 정한 규칙, '넌 너무 어리기 때문에 저 문을 열 권리가 없어'라고 했을 때, 사실 저항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아미르는 점차 질문이 생겼다. 왜 매번 조금 부족한 거지? 그렇다면 난 안된다는 거야?.... 그리고 빨간 문이 절대 열리지 않는 문이 아니라는 것도 어느 날 밤 확인했다. 충분히 열릴 수 있는 문인데 왜 어리다고 안 되는 걸까?... 아미르가 크면 문을 열 수 있는 '권리'가 아미르가 큰다고 해서 주어지기나 하는 걸까? 그 권리는 평생 아빠의 노예로 살아갈 의무를 대신한 말과도 같다. 아미르는 자신이 마주한 현실의 실체를 파악했다. 끊임없는 호기심으로 현실이 안고 있는 비밀, 진짜 현실을 보게 된 것이다. 


이 그림책은 우리를 숨 막히게 하려고 늘 애쓰는 사회, 에 맞서고 있다.  늘 아무것도 아닌 것에 경이로워하고 호기심을 늦추지 않는 어린이의 힘으로 진실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을 아미르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질문이다. 자문이다. 지나친 호기심은 해가 된다는 말을 들으면서 자랐다. 그러나 이제 바뀌어야 한다. 지나친 호기심은 더 이상 해가 되지 않는다. 질문하고 또 질문해야 할 것이다. 


그림책 "조금만 더"는 프랑스 출판사 D'eux 에서 미셀 이스코피에 글과 크리스 디 지아코모 그림으로 올해 8월에 발행되었다. 그림책의 제목 "조금만 더"는 어른이 아이에게 금지했기에 늘 조금 모자라는 사람으로 인식하게 하는 말이기도 했지만, 조금만 더 앞으로 한 발 만 더 내딛으면 마주한 현실의 진실을 볼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작가는 제목에서 말의 의미의 뉘앙스를 더해 재미를 주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괴물이라는 두려움의 정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