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역사시간에 매주 목요일마다 책을 읽는다. 목요일에는 역사 선생님께서 한 트롤리 가득 책을 가져오신다. 자신이 고른 책을 한 달간 읽고, 독서일지도 작성한다. 나는 김애란 작가의 <바깥은 여름>을 읽고 있다. 45분의 수업시간 동안 진심으로 몰두하며 읽었던 책이기에 소개해보려 한다.
인상 깊게 읽은 글귀이다.
“이해는 품이 드는 일이라, 자리에 누울 땐 벗는 모자처럼 피곤하면 제일 먼저 집어던지게 돼있거든.”
(가리는 손 中)
유리벽에 대가리를 박고 죽은 새처럼 번번이 당신의 부재에 부딪혀 바닥으로 떨어졌다.
(어디로 떠나고 싶으신가요 中)
‘휴대전화 속 부고를 떠올리며 문득 유리 볼 속 겨울을 생각했다. 볼 안에선 하얀 눈이 흩날리는데,
구 바깥은 온통 여름일 누군가의 시차를 상상했다.’
(풍경의 쓸모 中)
익숙함이 주는 쓸쓸함, 소중했던 누군가의 빈자리. 그 서늘하고 고독한 감정들을 문장 하나하나에 꾹꾹눌러 담은 이 책이야말로 완벽한 단편소설이 아닐까싶다.
<가리는 손>
‘재이’는 자신의 친구들이 폐지를 줍는 할아버지에게 담뱃갑을 던지고 할아버지를 폭행하는 장면을 보았다. 재이는 그의 친구들이 할아버지를 마구 때리고 ‘틀딱’이라고 하는 모습을 보며 비명을 지르는 자신의 입을 손으로 막는다. 알고 보니 재이가 가린 것은 폭행당하는 할아버지를 보고 지르는 비명이 아니라, 웃음이었다.
재이의 엄마는 생일 케이크 촛불에 비친 재이의 미소 짓는 얼굴을 바라본다. 그리고 불현듯, 그 미소를 어디에선가 본 것 같다는 싸늘한 느낌을 받는다. 곧, 생일 촛불에 비친 재이의 표정과 할아버지가 폭행당하는 동영상에 나오는 재이의 표정이 같다는 것을 알아챈다. 그리고 자신의 아이가 억울함의 대상이 아닌 폭행사건의 ‘가해자’라는 것에 충격을 받는다.
‘불현듯 저 손, 동영상에 나온 손, 뼈마디가 굵어진 손으로 재이가 황급히 가린 게 비명이 아니라 웃음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정말 그렇다면 그동안내가 재이에게 준 것은 무엇이었을까.’
(220p.)
재이는 왜 웃음을 가렸을까?
그 행동이 감춰져야 한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고있었기에, 사회적으로 바른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기에 그런 것 아니었을까? 우리의 모습이 하나하나 보이고 평가되는 이 세상에서, 우리는 모두 ‘가리는 손’을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우리의 잘못된 행동을 사회적으로 바르게 보이도록 포장하여 모순되게 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보게 된다.
<바깥은 여름>은 이별을 겪은 이들의 고통과 상실을 사실적으로 나타낸다. 누군가와 이별하고, 깊었던 신뢰가 사라지고,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이야기들로 잊어버릴 수 없는 ‘상실’을 다룬다. 그래서 책을 읽을 때 마음이 한없이 서늘해지기도 하고 끝없이 우울해지기도 하였다.
책의 맨 첫 이야기가 ‘자식을 잃은 부부가 겪는 일’을 다룬다. 첫 작품부터 강렬한 타격을 받았다.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두 번째 작품을 읽을 적부터 단단히 마음의 준비를 하였지만, 어둡고 서늘한 이야기와 문장들이 끝없이 이어져 나에게 충격을 주었다.
우리는 매일매일 무언가를 잃는다. 자존감, 사랑, 명예, 신뢰 등.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로 하는 요소들을 다 갖춘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다. <바깥은 여름>은 소중한 것, 없어서는 안 될 무언가를 뺏긴 사람들이 생기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그 무언가가 사람일지라도.
인간의 어쩔 수 없는 불행을 담은 책이지만, 그 불행이 죽을 의지를 살 의지로 바꿔줄 수 있는 조그마한 가능성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그건 아마 빠져나올 수없을 정도로 깊은 불행은 아니지 않을까. 인생을 살아가면서 나의 전부인 어떤 것을 잃었을 때, 그 상황에서의 나의 태도가 아주 조금이라도 상황을 바꿔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겉으로 완벽하고 행복해 보이는 사람이어도 보이지 않는 곳에 하수구만큼 깊고 어두운 덩어리를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
우리는 다 인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