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금까지 읽은 차트 책 중 단 한 권을 고르라면 ‘차트의 기술’입니다. 애널리스트 출신으로 지금은 투자자문사 대표인 저자 김정환 작가는 제가 아는 한 국내 최고의 차트 전문가인데요, 이번에 거의 20년 만에 나온 ‘차트의 해석’은 ‘차트의 기술’의 심화 편으로 투자자에게 정말 큰 도움이 되는 책입니다.
주식 투자에서 기본적 분석이 수학의 정식 기본 편이라면 기술적 분석은 실력 편입니다. 고수들일수록 특히 투자를 매일매일 하는 단타족이나 트레이더일수록 차트를 중시하며 기술적 분석의 유효함을 강조합니다. 기술적 분석의 이치는 간단합니다. 차트 이면의 수급의 심리를 읽음으로써 미래의 주가의 추세를 맞힌다는 건데 이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우선 차트 모양이 워낙 다양하고 비슷한 차트를 갖고도 해석이 다양할 수 있기에 엄밀히 말해서 차트분석은 기술보다는 예술에 가깝습니다. 기본적 분석은 “PER이 낮으니 사라”는 분명한 공식이 있지만(물론 그 공식대로 주가가 움직여주지는 않지만) 기술적 분석은 솔직히 국내처럼 중소형주로 장난치는 세력들이 많은 나라에서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움직이지가 않습니다. 서울대 컴퓨터공학부의 문병로 교수 같은 경우는 빅 데이터의 알고리즘 분석에 의거해 차트분석에 의존한 기술적 분석을 현대판 점성술로 극단적으로 폄하하기도 합니다.
기술적 분석이 맞으려면 두 가지 전제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이번만은 다르다”는 말이 시장에서는 영원히 거짓말일 것, 인간의 심리는 과거에 비해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할 것. 두 가지 전제가 선행되어야만 차트를 믿고 내가 매수할지 매도할지 아니면 홀드 할지를 결정할 수 있는 거죠. 일종의 믿음의 영역입니다. 시장에서 차트를 보고 매매시점을 고르는 사람들이 많다는 믿음에서 더욱 힘을 발휘하죠. 기본적 분석은 살 종목만 가르쳐주지 언제 팔지를 알려주지는 못합니다. 사야 할 때와 팔아야 할 때를 가르쳐주는 건 기술적 분석뿐인데 문제는 기술적 분석은 철저하게 과거의 데이터로 미래를 예측하려 한다는 점이죠. 만약 과거와 미래는 다르고, 사람의 심리는 언제든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기술적 분석을 신뢰하기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때는 기본적 분석을 통한 장기투자가 몸에 맞는 옷일 수도 있습니다.
책은 모두 25 장에 걸쳐 미국 그리고 일본의 차트 분석의 기술들을 다양하게 소개하고 있는데요, 차트는 우리가 가장 많이 쓰는 캔틀 차트를 비롯해서 일본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가 없습니다. 책에는 캔들 차트 그리고 캔들 차트를 만든 혼마 무네히사의 또 다른 비기 사케다 5 전법, 주가와 거래량의 상관관계를 중심으로 하는 역사 계곡선. 주가 상승과 하락이 얼마나 빨리 이루어지는지 파악하는 삼선전환도, 시장 가격의 등락 상황을 보여주는 스윙 차트, 가격 변동폭 차트로 불리는 카기 차트와 종가를 기준으로 최소 가격 변동폭을 설정하는 렌코 차트까지 전체 비중의 3분의 1 정도가 미국이 아닌 일본에서 유래된 차트를 해설합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골든 크로스 데드 크로스도 일본에서 유래한 용어죠.
저는 존 리가 일본은 국민들이 주식을 안 해 국가경쟁력이 떨어졌다는 말을 할 때마다 정말 존 리가 일본 주식 시장을 알고나 하는 이야기인가 의심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매일 보는 차트 양봉 음봉을 비롯해서 거의 기술적 분석의 절반 정도가 일본에서 유래한 건데 일본이 주식을 안 하는 금융 후진국으로 부를 수 있을까? 도대체 이를 알고나 하는 소리인가 궁금했던 적이 있습니다. 더군다나 쌀 선물의 신으로 기술적 분석의 교주나 다름없으며 캔들차트의 발명자 혼마 무네히사를 국내의 고수들이 절대적으로 신봉하고 있으며 윤지호 이베스트 투자증권의 리서치센터장을 포함 많은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무라카미 구니오의 4계절 이론을 극찬하고 있죠. 일본에서 이미 70년대 개인 소득세 1위를 기록한 개인투자자 고래가와 긴조 같은 이의 전기가 투자자들의 바이블로 인정받는 상황에서 일본은 주식을 안 해 국가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주장은 제가 보기에는 너무나 근거가 빈약했습니다. 물론 현재 인구 대비 주식 투자자 비율은 한국이 일본보다 높은 건 사실입니다. 그런데 2020년 코로나 유동성 장세 때 거의 곱절로 늘어난 개미투자자들 덕분이지 원래부터 우리가 일본보다 주식을 더 많이 하고 자산을 주식으로 보유한 사람들이 많았던 것은 아닙니다.
이들 외에도 사례가 있습니다. 국내 성투한 개미들 사이에서는 25일 이평선만 보며 크게 떨어진 주식만 사들였다 반등했을 때 잽싸게 판 역스윙매매로 수천 억 원을 번 BNF 같은 투자자들이 존경의 대상으로 극찬받고 있는 걸 고려하면 일본은 미국과 달리 주식과 금융에 무지했기 때문에 경쟁력을 잃었다는 주장은 더더욱 설득력이 없죠. 우리가 상승 종목을 빨간색 하락종목을 파란색으로 표시하는 것도 일본의 관행을 그대로 쓴 결과입니다. 미국은 우리와 반대죠. 우리의 주식 시장은 2000년 나스닥 기술주 열풍이 불기 전, 더 길게 잡으면 극히 최근의 서학 개미 열풍이 불기 전까지는 분명 일본 시장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았습니다.
일본이 차트의 대국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제 생각에는 1870년으로 동양에서 가장 먼저 주식이 시작된 나라가 일본이라는 게 가장 큰 이유입니다. 선물시장은 에도 시대 초기에 오사카에서 시작됐으니 사실상 세계 최초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문화와 관계가 있습니다. 동양에서는 주판을 사용했죠. 주판은 계산을 시각화해서 보여주는 장치죠, 스윙 차트의 초기 버전을 비롯 일본에서 만든 차트들의 원형을 보면 일본인들이 주식의 시장 전체의 흐름을 보여주는 데 당시 익숙한 수제 계산기인 주판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그리고 철학적인 배경도 있습니다. 차트를 보는 이유는 흐름을 통해 사이클을 파악하자는 철학에서 기인합니다. 흥망성쇠의 동양적 역사관을 지닌 일본으로서는 주식 시장 역시 인간의 모든 역사처럼 사이클을 지니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차트를 통해 그 사이클을 찾아내려고 노력했을 수가 있습니다. 또 한 가지 일본인들 역시 중국인처럼 음과 양의 교차로 세상만사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는 점도 한 요인입니다. 카기 차트에서 강조하는 것이 양에 살아 음에 팔라는 주문인데, 음양적 사고로 주식시장을 바라보면 주식시장 역시 상승과 하락을 끝없이 반복하는, 주역에서 이야기하는 세상의 이치와 크게 어긋나지 않죠.
저자는 버핏과 그레이엄 때문에 펀더멘털을 강조하는 가치투자가 계속 강세를 보이면서 기술적 분석은 사실상 장송곡처럼 느껴지는 분위기라는 점을 인정합니다. 그런데 저자 말대로 주식에서 돈 버는 유일한 방법은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길뿐입니다. 그리고 대주주나 증권사 소속이 아닌 한 기업탐방이 쉽지 않은 우리나라 현실에서 차트는 공부를 통해 다른 투자자보다 시장의 흐름을 좀 더 빨리 읽을 수 있는 방법이 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개인투자자 그리고 전업투자자로서 단타를 해서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사람일수록 차트에 대한 공부는 여전히 필수적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