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막장 드라마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데요, 그 이유는 실은 막장드라마가 모든 드라마 중에서 가장 현실과 유사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리얼리티를 살렸다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같은 드라마가 판타지에 가깝죠. 실제 대다수(99.99%) 자폐아들은 우영우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삽니다. 그들과 그들의 가족에게 희망을 주는 건 좋지만 그렇다고 해서 드라마 하나 때문에 현실이 달라지는 건 아니죠. 현실을 잊고 싶어서 드라마를 보고 싶은 건데 그래도 현실을 드라마로 굳이 보고 싶다면 막장드라마를 선택하면 됩니다. 올해 7월 말 넷플릭스에서 개봉된 ‘블랙의 신부’는 우리가 매일 아침마다 보는 불륜과 치정 그리고 복수로 점철된 전형적인 막장 드라마입니다. 여기에 출생의 비밀까지 등장하니 정말 막장의 모든 것을 갖춘 드라마죠. 특히 대한민국 모든 국민의 관심사인 대선의 해에 유력 대선 후보의 혼외자식까지 등장하니 갖출 것은 모두 갖춘 막장 드라마의 끝판왕이죠. 넷플릭스가 요즘 이런 드라마에도 투자하나 싶었는데 놀라운 사실은 1회를 본 다음 계속해서 마지막 회까지 보게 만드는 힘이 있는 드라마였습니다. 욕을 먹어도 끝까지 보는 드라마가 1회만 보고 중동무이로 끝나는 좋은 드라마보다 넷플릭스에는 도움이 더 될 수 있겠죠. 이 드라마는 꽃뱀에게 물려 억울하게 죽은 남편의 복수를 위해 주인공(김희선)이 갖은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결국은 복수와 성공하면서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블랙 레벨(자신 1000억 원 이상의 남편감)의 게임업체 사장과 재혼에 성공한다는 정말 전형적인 신데렐라의 재혼 버전입니다. 배우들의 연기는 출중했지만 어찌 보면 너무나 뻔한 전개 때문에 막장 드라마를 많이 본 마눌님은 어떤 대사가 나오질 정확하게 맞히더군요. 막장 드라마처럼 현실에 충실하면서 공식에 충실한 장르도 없습니다. 그런데 막장 드라마는 철학에도 충실합니다. 사실 제일 좋은 철학은 일상의 삶에 기반을 둔 철학이고 그런 의미에서 일상의 삶과 삶을 지배하는 욕망에 무한 충성을 맹세한 막장 드라마에서 철학적 영감을 얻는 건 대단히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런 막장 드라마도 우리에게 생각 거리를 던져줄까요? 얼마든 가능합니다. 시궁창에서 연꽃이 피어나듯 철학이란 막장 아니라 막장보다 더한 지옥에서도 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제대로 된 의식이라는 게 있다면 철학은 막장이든 지옥이든 장소를 가리지 않습니다.
◆인간에게 결혼은 어떤 의미인가?
결혼과 주식의 공통점이 주식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됩니다. 세 가지가 있습니다, 가장 큰 공통점은 “둘 다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한다”는 점입니다. 제 경험상 어차피 후회할 거라면 해보고 후회하는 게 낮습니다. 그래야 후회가 덜 고통스럽습니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게 인간의 후회라면 그 강도를 줄일 필요가 있죠. 그리고 두 가지가 더 있습니다. 둘 다 기대로 시작해서 실망으로 끝나는 것도 공통점입니다. 미국의 이혼률은 50%입니다. 결혼한 부부 절반이 법적인 이혼을 거치죠. 여기에는 사별이 포함돼 있지 않습니다. 그 나머지 50% 중 44%는 이혼을 고민하지만 실행하지는 않습니다. 자식 때문에 대안이 없어서 그냥 사는 거죠, 실제 성공한 결론의 비율은 5% 이하라는 결론이 나오죠. 이는 정확히 주식에서 돈을 버는 개미들의 비율과 일치합니다. 그리고 술자리 안주로 가장 많이 등장한다는 특징도 공통점입니다. 술자리 안주로 등장할 때는 부정적인 소식이 압도적으로 높은 남의 결혼 이야기(누가 바람을 핀다, 누가 이혼직전이다라는 식으로 회자되죠.)와 누가 주식으로 돈 벌었더라는 부러움과 누구는 얼마를 날렸더라는 속으로는 고소해 하는 감정이 반반씩 섞여 있다는 점에서 차이는 있죠. 저는 단순한 농담으로 들리지 않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통찰입니다. 주식을 하시는 기혼자분들은 정말 더더욱 공감이 가실 내용입니다. 주식과 결혼이 이렇게 비교대상에 올려지는 이유는 사실 따로 있습니다. 바로 동기가 같기 때문이죠. 주식을 하는 유일한 이유는 돈 때문이라는 사실을 아마 다른 책 리뷰에서도 쓴 바 있죠. 그런데 결혼은 어떨까요? 정말 돈 때문에 하는 걸까요?
이 드라마는 인간이 결혼하는 이유는 사랑이 아니라 조건 정확히는 돈 때문이라는 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솔직하죠. 특히 초혼이 아닌 재혼의 경우 사랑은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고 내가 자산 1000억 원 이상의 재혼남의 재혼 상대가 될 외모와 학벌을 갖추었는지가 중요하다는 점을 결혼정보회사의 사장은 말합니다. 저는 결혼이라는 제도가 인간의 역사 속에서 탄생한 게 아니라 문화 정확히는 경제 행위가 본격적으로 존재하게 된 시점부터라고 생각합니다. 엥겔스가 말한 ‘가족의 기원’은 인간이 느끼는 사랑이라는 숭고한 감정보다는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제 행위에 가깝다고 본 탁월한 통찰력을 보여주고 있죠. 그런 점에서 조건 때문에 결혼하고 또 불륜 때문에 벌어지는 치정과 복수 이야기의 원조는 마르크스적으로 풀어갈 수 있습니다. 이혼한 부부의 사유들을 보면 가장 많은 게 불륜이지만 사실 불륜의 이유 역시 대개는 경제적인 연유, 즉 남성이 내가 돈을 많이 벌었다는 일종의 괴시욕 때문이라는 점에서 결혼과 결혼의 끝을 의미하는 불륜까지 모두가 경제적입니다. 막장 드라마는 이 걸 너무 노골적으로 보여주니까 사람들에게 욕을 먹는 것이고 사람들은 욕하면서도 끝까지 보게 되는 거죠.
◆결혼에 대한 다른 가설들의 문제점
인간이 결혼하는 이유를 다른 각도에서 얼마든 분석할 수 있습니다. 바로 외로움 때문이죠. 혼자서 살기에는 너무 외롭습니다. 남편이나 아내 혹은 자녀까지 있으면 덜 외로울 수 있습니다. ‘인간은 왜 외로움을 느끼는가’의 저자이며 사회 신경과학자인 존 카치오프는 외로움이 인간의 잔화 과정에서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주장합니다. 외로움을 느끼면서 짝을 만나 가족을 이루고 그 가족이 확대되면서 사회가 이루어지고 결국 이기적 유전자를 이타적으로 바꿀 수 있었다는 게 그의 주장입니다. 틀린 이야기는 아닙니다. 특히 나이 들어서 하게 되는 결혼은 경제적 이유보다 더 클 수 있다는 걸 저도 잘 압니다. 그러나 외로움과 경제적 요인 둘 중에서 무게를 따지자면 압도적으로 후자가 더 무거울 겁니다. 막장 드라마가 아닌 로맨틱 코미디는 결혼이라는 것을 결과로 보고 그 과정에 이르는 시발점을 인간의 외로움으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 막장 드라마와는 접근 방법이 다르죠. 그런데 이런 드라마들이 간과하는 것이 있습니다. 결혼은 사실 결과가 아니고 시작일 뿐이며 결혼이라는 긴 삶의 과정에서 점점 더 나이가 들수록 커지는 것이 경제적 조건이라는 사실이죠.
잠시 동안도 떨어지기 싫어서 항상 같이 있고 싶어서 마치 더스티 스프링필드의 노래 제목처럼 ‘Only wanna be with you’ 때문에 인간은 결혼하는 존재라고 믿고 싶은 분들도 많을 겁니다. 결혼하는 제도로 둘의 관계를 인정받고 싶은 게 아니라 영원히 함께 있고 싶어서 결혼한다는 거죠. 언제나 늘 곁에 있고 싶은 것 이게 바로 사랑입니다. 이런 감정 없이 결혼하는 사람들은 정말 불행한 길을 갈 것 같은 걱정을 해주기도 합니다. 정말 이런 감정으로 시작해 죽을 때까지 이런 감정을 끝까지 유지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그게 어려운 게 아니라 안 된다는 사실을 인류의 역사 특히 결혼의 역사가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는 게 역설 중의 역설이죠. 결혼을 해본 사람들은 이 말이 얼마나 무게감 있는 진리인지 잘 압니다. 연애는 이상, 결혼은 현실.
◆드라마의 최대 반전 박훈의 양보를 두 도시 이야기와 비교하다
‘블랙의 신부’는 결혼이 이상이 아닌 현실임을 그 어느 드라마보다 잘 보여주며 사람들은 이상 때문에 서로 속고 심지어 죽이는 게 아니라 오직 현실의 욕망 그리고 모든 욕망을 해결시켜주는 유일한 수단인 돈에 대해서 너무나 진지하고 솔직하게 말하는 드라마입니다. 그래서 K막장이라는 별명도 얻었습니다. 넷플릭스의 다른 시리즈에는 이와 비슷한 드라마가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물론 비도덕성의 화신이나 다름없는 정치인이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이상적인 정치인이라고 보이는 점, 김희선이 복수를 위해서 선택하는 수단들이 작품 속에서 그려지는 김희선의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 등 작품의 개연성과 완성도에는 적지 않은 약점들도 보입니다.
속물과 욕망이 판을 치는 이 드라마에서도 순수가 있었으니 그 정점은 마지막 장면에서 자신을 평생 사랑하는 첫사랑 박훈과 김희선이 맺어지는 게 아니라 박훈이 결혼식 당일날 김희선의 행복을 위해 김희선이 진정 사랑하는 게임회사 사장에게 결혼식 신랑 자리를 넘기는 장면이었습니다. 이는 찰스 디킨슨의 두 도시 이야기에서 사랑하는 여자가 사랑하는 남자가 죽을 위기에 처하자 자신이 옷을 갈아입고 처형당한 변호사 카턴의 희생과 비교됩니다. 저는 카턴의 희생이 숭고하다는 생각은 들지언정 사랑의 본질이 정말 상대에게 조건 없이 주는 것이라면 그 정의에는 어울리지 않는 다른 의도가 있다고 해석했습니다. 그의 편지에서도 드러나지만 그는 그녀의 기억에 평생 남는 존재가 되려고 했습니다. 특히 남편과 열정이 조금씩 식어갈 때 그녀의 기억이 그녀를 얼마나 괴롭힐지 분명 알았을 거라는 점에서 저는 카턴의 행동에서 이타성보다는 이기심을 읽었거든요. 그런데 박훈은 정말 드라마 속에서 결혼이라는 제도로 그녀를 소유하려는 생각보다는 그녀가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의 욕망을 희생했다는 점에서 진정한 사랑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진정한 사랑이라면 결혼 같은 것 고려하지 않고 상대의 행복만 생각하겠죠. 그러고 보면 과정에서 온갖 막장이 판을 쳤지만 결론만큼은 꽤나 순수했던 드라마였습니다.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게 해 준 철학의 도구이기도 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