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한국판 종이의 집을 보고 극찬을 한 사람인데요, 원작을 보고 나서 극찬을 거둘 수밖에 없게 된 조금은 우유부단한 넷플릭스 유저입니다. 애국심이라는 기준 외에 어떤 기준으로도 원작을 넘어설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네요. 제가 생각할 때 이 작품의 리메이크는 비비안 리나 클라크 케이블보다 외모가 한참 떨어지는 요즘 배우들로 원작을 찍는다는 소식만으로도 사람들의 욕을 먹을 수밖에 없는 그런 확률 0의 대도박을 했다고 볼 수밖에 없네요.
원작은 가난과 빈곤 직업의 귀천 국가의 역할 삶과 죽음의 문제 사랑과 가족 그리고 우정, 전쟁의 본질 등 정말 많은 것을 이야기하는 철학의 뷔페였는데요, 저는 이 중에서 이 질문에 천착하고자 합니다. ‘정의로운 도적은 가능한가’
(1) 왜 전 세계는 21세기 스페인의 은행강도들에 열광했을까?
우선 이 문제를 고민해보죠.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현행법이 아니라 역사 속 어떤 시대 어떤 나라에서 어떤 법을 적용해도 범죄자 그것도 가장 강력한 응징을 방아 마땅한 은행 강도들을 사실상 미화한 작품입니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오징어 게임과 함께 비영어권 작품 중에 넷플릭스 유저로부터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입니다. 아직 시리즈 1인 오징어 게임은 어떻게 보면 한 편의 블락버스터 영화와 같이 넷플릭스 유저들의 마음을 일시적으로 그리고 폭발적으로 사로잡았다면 종이의 집은 1이 제작된 2017년부터 시리즈 5가 공개된 2021년까지 장장 4년 동안 영어권 비영어권 가리지 않고 모든 넷플릭스 유저들의 사랑과 관심을 독차지했던 작품입니다. 시청자들은 권선징악을 너무나 원하고 시청자 취향에 아부하는 전형적인 범죄 드라마였다면 교수를 비롯한 종이의 집의 강도들은 당연히 응징으로 끝났어야 했죠. 그러나 넷플릭스 유저들이 다른 건지, 아니면 2017년부터 21년까지 적어도 유럽의 정서는 경찰이 아닌 도둑의 입장에서 드라마를 볼 수밖에 없게 만든 사회적 필연성이 있었던 건지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둘 다일 수 있죠.
원작의 시즌 2(어쩔 수 없이 스포일이 되겠지만)에서 스페인 국립은행 앞에 모여들어 강도들을 지지하는 200만의 스페인 마드리드 시민들의 정서를 극히 도덕적인 일부 시청자를 제외한 대다수의 시청자들이 공유하고 있는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물론 이런 엄청난 강도 사건은 일어난 적도 없고 일어날 수도 없지만 경찰보다는 강도를 편드는 민심은 솔직히 굉장히 사실적입니다. 왜 사람들은 한두 푼도 아니고 수 조원의 돈과 금을 훔치려는 강도들을 응원하고 있을까요? 이 역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실마리는 시즌 3에서 데모대들이 외치는 구호에 담겨 있습니다. “이 체제는 우리를 위해 일하는 게 아니다.” 누구를 위해 국가는 일할까요? 부자일까요? 사회적 약자일까요? 아니면 모두일까요? 그런데 사회적 약자를 위해 일한다고 말하는 정부는 있어도 부자들을 위해 일한다는 정부는 없습니다. 물론 유럽의 대부분 사회민주당이 집권한 나라에서는 특히 더 그렇죠. 미국도 공시적으로 자신들은 부자들을 위한 나라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고요. 중국까지 포함할 경우 전 세계는 국가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일종의 21세기판 사회계약에 모두 동의를 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2017년 스페인의 집권당이었던 보수정당 국민당은 사실 뿌리가 프랑코 독재정권 때 가장 온건했던 문화부 장관 마누엘 프라가입니다. 스페인은 우리처럼 우파 독재의 역사가 좌파 정부보다 훨씬 긴 나라입니다. 사람들은 우파가 집권할 때 그들의 탐욕과 부패에 분노하고 좌파가 집권할 때 그들이 보여주는 무능력에 절망합니다. 우리처럼 좌파에 위선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나라도 많습니다. 한 마디로 “못 믿겠다”입니다. 좌도 우도 못 믿겠다는 분노는 자연스럽게 스페인 국립 은행 건물 앞으로 사람들을 모은 겁니다. 국가와 국가를 운영하는 정치인 모두를 부정하는 저항을 넘어선 무정부주의의 가능성까지 엿보였습니다. 스페인은 PIGS로 불리며 유로에서 못 나가는 네 나라(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다 라틴족이네요) 중 한 나라입니다. 우리가 스페인 하면 떠오르는 기업이 있습니까? 상품이 있습니까? 여행업이 국가를 먹여 살리는 그런 나라죠. 그러면서 부의 빈부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고 이제는 약자가 일부가 아닌 다수가 되는 그런 나라가 되었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스페인의 정치적 사정은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덩치가 다른 국가들을 모아 동일한 통화로 묶는 과정에서 PIGS 국가들은 당연히 큰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죠. 프랑스나 독일 그리고 잘 사는 복지국가까지 함께 묶이면서 부채가 많고 돈 벌어줄 캐시 카우가 여행업이나 낙농업 외에는 없는 네 나라는 처음부터 소외된 왕따 같은 존재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드라마가 이런 시점에서 공개하면서 단순한 은행 강도를 넘어 국립 은행에 보관된 금을 통째로 털어 스페인이라는 국가를 파산하려는 이런 시도에 손가락질이 아니라 환호를 보내는 현실은 정말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권력은 피지배자가 믿거나 적어도 국가와 나는 동업은 하고 있다는 생각이 있어야 유지될 수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다행히 교수의 놀라운 기지로 자신들은 살아서 자유를 누리고 스페인 정부의 파국은 막지만 예전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이런 설정의 드라마에 절대다수가 열광하고 환호를 보내는 이유죠. 지금 현재 민주주의는 스페인뿐 아니라 전 세계 모두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선거를 통해 선출된 권력이 뽑아준 사람들을 위해 일하지 않고 소수의 부자 글로벌 대기업의 이윤을 위해 일한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바뀌지 않는 이상 로빈후드 홍길동은 더욱 강력한 대중적 지지와 교수를 연상케 하는 완벽한 리더십과 계획능력과 판단력을 갖춰 등장할 수 있습니디.
(2) 그들을 21세기 로빈후드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
이 영화를 감상한 시청자들의 상당수는 그들을 의적이라고 부르는 데 전혀 주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우선 그들의 행위를 통해 스페인 정부가 얼마나 무능력하고 인권을 무시하는지 느끼게 되죠. 반면 교수를 비롯한 강도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인질을 헤치지 않고 경찰이나 특수기동대 그리고 시리즈의 최고 몰입의 순간인 전쟁 신에서 코만도와 싸울 때에도 필요 없는 인명 살상을 최소화합니다. 끝까지 도덕성에서 결찰을 앞서 시민들의 여론을 자기편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조폐국에서 찍어놓은 돈은 결국 누군가의 돈이고 인질극이라는 이름으로 결국 시간을 벌어 새로운 돈을 인쇄해 어느 누구의 돈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들을 의적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시즌 3에서 스페인 국립은행으로 침투하는 과정에서 제플린을 이용 자신이 훔친 돈의 10분의 1을 공중에서 뿌려 평범한 스페인 시민들이 그 돈을 줍기 위해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된 것도 그들이 자신의 돈을 서민들과 나누는 의적이라는 증거로 볼 수 있죠. 교수는 사랑하는 여인의 어머니가 자신이 교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음을 깨닫고 결국 그녀를 심장마비처럼 보여서 자연사하도록 유도할 수 있었는데 나중에 장모가 되는 그 부인이 커피를 마시는 순간 커피잔을 손으로 쳐 살리는 장면에서 교수는 강도와는 어울리지 않는 휴머니스트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죠.
신자유주의 이후 양극화가 더욱 심화되는 세상에서 이런 식의 균열이 내부에서 일어날 때 그 사회는 가장 큰 문제를 드러낼 수밖애 없죠. 도덕질을 통해서라도 사회적 모순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아를 고치도록 서민듫이 들고일어나게끔 만들었다는 점에서 분명 의적이라고 불릴 수 있습니다.
(3) 그들이 절대 의적이 될 수 없는 이유
그러나 그들을 절대 의적이라고 부를 수 없는 이유도 만만치 않습니다. 우선 그들이 조폐국을 멈춰 은행의 돈을 새로 찍어 가져갔다는 점에서 그 돈이 국가의 경제를 위해 쓰여아 할 시간을 위해 사용된 것으로 그들은 그들이 돈을 찍은 만큼 전 국민의 시간을 빼앗은 겁니다. 시간을 빼앗은 범죄는 교도소에서 시간으로 갚아야 할 중대한 범죄죠. 그리고 24억 유로라는 돈이 시중에 풀리면 그 돈이 당연히 인플레이션을 유발해 갑자기 물가를 상승시켜 고통을 특히 서민들에게 심화시키는 효과가 발휘됩니다. 금리는 올라가고 돈이 없이 및으로 사는 사람들은 그들이 원치 않은 부수적 피해물이 되어서 파산자가 속출할 겁니다. 그리고 한 국가의 재정 상태를 보증해주는 국가의 금을 통째로 빼낸다는 것은 정말 신선한 아이디어이고 그 방법은 철저하게 공학적으로 검증받았지만 그런 시도 자체는 어떤 의도로도 용납될 수 없습니다. 교수는 자신의 직업을 자신의 머리만큼 만족하는 사람입니다. 절대 자신이 목표했던 90톤의 금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결국 국가 파산이냐, 자신들을 풀어주고 새 신분을 줄 것인가?를 선택하라고 대령에게 강요하고 대령은 결국 국가 파산을 피하기 위해 그들을 풀어 주고 그들이 금괴 대신 주고 간 황동으로 국가가 보유한 금의 보유량이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기에 공모합니다. 이는 모든 것이 계획되는 교수의 선견지명에 따른 결과였습니다. 두 사람 모두 위너가 된 것은 사실이지만 교수는 국가의 아익이나 대중의 실절적 삶의 개선보다 자신의 계획의 성공을 더 중시하는 사람으로서 그는 의적이 될 수 없다는 주장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습니다.
두 주장 모두 설득력이 있습니다. 아마 사람은 믿고 싶은 대로 믿는 존재이기 때문에 도덕성이 강하고 국가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의적이 아니라는 주장에 동의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국가는 레비아탄이라는 괴물로서 비트코인을 저항의 상징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 드라마에 열광하며 이들을 의적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습니다.
저는 이 드라마를 넷플릭스 드라마 중에서 가장 재미있게 본 사람이지만 저는 교수를 비롯한 일당들이 의적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의적이라 말 자체가 형용 모순이거든요. 도적은 아무리 명분이 좋아도 도적은 도적일 뿐입니다. 정의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어떤 범법 도적 살인 폭력 사기 등도 결코 정의가 될 수 없습니다. 정의는 그 본질상 실천 괴정에서의 정의는 물론, 결과로써의 정의도 포함됩니다. 도적질은 사회가 인정한 부의 이동 수단을 거부하고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멋대로 부위 이전을 시도함으로써 기존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행위입니다. 저는 드라마애는 열광했지만 드라마가 표방한 의적의 가능성애는 조금도 동의하지 않습니다. 교수는 그 뛰어난 머리와 사람의 심리 꿰뚫기, 거의 모든 변수를 고려한 치밀한 계획력을 보았을 때 강도 대신 주식이나 선물 옵션을 했더라면 아마 그 정도의 액수는 출분히 벌었을 겁니다. 그런데 그건 그가 강도를 해야 하는 사회(스페인)보다는 세계적인 투자자로 만드는 사회(미국)가 제게는 좀 더 정의로운 사회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