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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caleopard Jul 17. 2024

메이지 유학자들의 군사사상

나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1. 도쿠가와 막번체제에서 메이지 일본으로의 이행은 유학의 이념이 추동한 혁명이었다. 이때 유학이란 송학 뿐만 아니라 신도, 불교, 도가 등이 상호작용하며 형성된 것이다. 메이지 일본의 건설은 단순한 서구화가 아니었음은 물론이고, 유학이 그저 서구 사상을 수용하는 수동적인 매개물에 그쳤던 것도 아니었다. 유학적 사유의 내용과 형식이 정치 참여자들을 사로잡고 있었다. 유학 사상은 메이지 정치의 사상과 행동을 상당한 정도로 규정했다. 


2. 도쿠가와 막번체제에서 메이지 일본으로의 이행은 사무라이 계급의 몰락 과정이기도 했다. 평시의 계급적 특권이 부정되고 사민평등이 확립되었다. 전시에 전투원 자격을 독점하는 특권도 상실하고 국민개병이 실시되었다. 이러한 병제의 전환은 문약文弱을 경멸하고 고고하게 전사의 긍지와 무위武威를 과시하는 사무라이 명예문화에 대한 비판 및 수정과 함께 이루어졌다. 이전까지 사무라이는 평시에는 서리였고 전시에는 전사였는데, 막말유신기의 전환을 거치며 평시에는 사대부로, 전시에는 군인으로 변하게 된 것이다. 문文과 무武 양 부문이 아리스토크라시에서 데모크라시로 이행했다. 즉 봉건 세습신분제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던, 획일화된 조건의 평등이라는 관점이 출현했다. 


3. 사무라이 명예문화와 구분되는 메이지 군사문화를 창출 하는 과정에서 폭력에 대한 관점의 전환에 유학이 기여했다. 폭력을 어떻게 개념화할 것인가? 폭력 담당자의 자격은 무엇인가? (내재적이거나 관계적으로 이해된)바람직한 폭력의 질은 무엇인가? 폭력과 보편 이념의 관계는 무엇인가? 어떤 폭력이 더 많은 역량을 지니고 있는가, 즉 더 강한가? 이런 질문들에 유학이 답을 제공했다. 막말유신기를 거치며 유학은 탑다운(통치이데올로기)과 바텀업(반체제)의 두 조류로 나뉘어졌는데 이 두 조류가 상이한 답을 제시했음은 물론이다. 


4. 일본의 제국주의에는 이 같은 제국의 이념으로서의 유학이 뒤섞여 있었다. 이 논의는 가라타니에 기초한다. 메이지유신은 국내 식민지화이기도 했지만, 천하 통일이기도 했다. 


5. 송학은 사무라이 명예문화를 비판하고 그것에 내면적 자기규제(호연지기-자반이축)라는 송학적 굴레를 도입하려고 했다. 이는 구마자와 반잔에서부터 보이는 오래된 발상인데, 메이지 시기에 들어서면 이것이 국민개병의 정당화 논리가 된다. 모두가 스스로 돌아봐서 삼가는 호연지기를 기를 수 있고 길러야 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자기수양하여 성인이 될 수 있다는 도학적 평등론은, 도의적 용기가 사무라이 명예문화의 무위를 대체한 것과 맞물려서 국민개병의 논리를 형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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