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인《콘텐츠 만드는 마음》 [review]
<콘텐츠 만드는 마음>은 총 삼부작으로 구성된다. 콘텐츠를 읽는 사람, 만드는 사람, 그리고 일하는 사람으로서의 자아가 담겨 있다. 저자 서해인의 세 가지 자아는 곧 좋아하는 것을 오롯이 좋아하는 사람, 좋아하는 것에 대해 책임감을 갖게 된 사람, 그리고 좋아하는 것과 나 사이의 균형을 찾아가는 사람으로서의 이야기로 다가왔다.
문화 예술 콘텐츠를 사랑하는 마음을 오래토록 간직하기 위해, 아트인사이트 에디터가 된 나에게 눈에 띄는 도서였다. 나 역시 콘텐츠를 보는 사람에서 콘텐츠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그리고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으로 변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유효한 꿈인지는 모르겠지만, 음악을 좋아하는 나는, 언젠가 매 호 테마를 정해서 국내외 앨범을 가리지 않고 소개하는 매거진을 발행해 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콘텐츠를 좋아하는 걸 넘어서서 만들어보고 싶다는 마음은 여전하다. 하지만 오롯이 나를 위한 일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내 글이 닿는 과정에서 나의 마음은 가끔 왜곡되곤 한다. 의도하던 의도하지 않았던 종종 나와 다른 사람 간에 잡음이 발생하곤 한다. <콘텐츠 만드는 마음>은 왜곡이 발생하는 지점이 정확히 어디인지를 세밀하게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이었다.
꽤 좋았던 콘텐츠 중에서도 굳이 가장 좋은 두 가지를 뽑는다. 이 단계에서는 다음과 같은 기준을 적용한다. 전체가 탁월하지 않고, 부분만 좋아도 괜찮다는 게 첫째다. 완성도는 좋은 콘텐츠를 선별하는 중요한 기준이긴 하지만, 빈틈이 보여도 마음이 동할 수 있다. 예를 들면 16부작 드라마가 뒷심이 부족했고, 그중에 너무 마음에 들지 않는 캐릭터가 있었어도, 대사 한 줄만 좋았으면 가장 좋았던 것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바꾸어 말하면, 나는 종종 이유 없이 마음이 가는 것들을 설명하기 위한 언어를 찾아야만 했다. 우리가 보는 대부분의 콘텐츠가 필요한 영양소를 모두 갖춘 완전식품이 아니라는 점도 첫째 기준을 정한 이유다. p.121
예전에 비평 워크숍을 참여해 본 경험이 있다. 미리 작품을 접한 다음, 어떤 부분이 기억에 남았고 좋았으며, 아쉬운 점이 있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다. 결론부터 말하면 즐겁고 유익한 시간으로 남아있지만, 진행하면서 꽤 애를 먹은 적이 있다. 막상 내가 가진 생각들을 나누자니 은근 신경이 쓰였다. 작품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는데 주관적인 의견을 말하자니 생각보다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실제로 작품을 한 번만 본 채로 리뷰를 작성하는 데에 두려움을 갖는다. 한 번밖에 볼 수 없는 상황이라면 다른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 글을 썼는지, 작품과 관련해서 읽어보면 좋은 자료가 있는지라도 반드시 찾아봐야 할 것 같다. 콘텐츠에 대한 생각을 설득력 있게 전달하겠다는 책임감을 갖는 건 바람직한 자세이긴 하나, 과연 내 생각을 여과 없이 제대로 전달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면 어딘가 잘못된 게 아닐까. 쓰고 싶은 글이 아니라, (뭔지는 모르지만) 써야 하는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콘텐츠에 대하여 모든 걸 알고 있지 않으면 글을 쓰지 못한다는 완벽주의적인 생각이 존재함을 깨달았다. 완벽주의적인 사고가 나를 더욱 성장할 수 있게 해준다기보다는, 결과물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부정적인 영향을 줄 때가 더욱 많다. 우리가 보는 대부분의 콘텐츠가 필요한 영양소를 모두 갖춘 완전식품이 아니라는 말은 꽤나 울림을 준다. 마음의 부담을 덜고 콘텐츠를 대할 필요를 느낀다. 진정으로 좋았던 부분을 캐치하고, 이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것이 당장 콘텐츠를 만들 때 필요한 마음 같다.
일본은 기본적으로 음향에 깐깐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나라여서 어떤 팀이 무대에 오르든 기본 이상의 사운드가 구현된다는 리뷰가 내내 머리에 맴돌았다. 그 리뷰를 읽고 나니 입맛이 썼다. 모르고 살아도 괜찮았을 감각을 알게 된 사람은 이를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과 자신 사이에 은밀한 위계를 만든다. 섬세하고 예민한 안목과 무례하고 오만한 성정. 전자를 갖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후자에 가까워지는 경우를 자주 마주한다. 음향이 뭉개져 들린다는 걸 의식하지 못한 채로 공연장을 빠져나왔던 나는, 모두가 기본 이상의 무언가를 경험하기 위해 떠날 수는 없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p33
나는 결코 예민한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둔한 사람에 가깝다. 주변을 힘들게 했으면 힘들게 했지, 주변 때문에 힘들어지는 성격은 아니다. 안목도 마찬가지다. 콘텐츠를 접할 때도 둔하고 유한 시각으로 살펴본다. 정말 지루해서 못 보겠다는 마음이 들지 않으면 웬만하면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준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느끼는 편이다.
만족스러운 상태로 다른 사람들의 리뷰를 살펴볼 때 종종 당황한다. 일례로 어떤 음악을 듣고 만족스러웠을 때, 장르나 음향적 특성을 문제로 콘텐츠를 뾰족하게 비판하는 글을 보면 부끄러운 마음이 들 때가 있다. 내게 좋았던 부분이 남들에게는 형편없는 부분이 될 때, 그리고 그 차이가 예민한 안목에서 비롯될 때 좋다는 말을 아끼곤 한다.
나에게만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호불호가 확실한 앨범이 나올 때, 사람들은 좋은지 나쁜지를 끊임없이 논쟁한다. 그러다 저명한 평론지에서 높거나 낮은 점수를 주면, 반대의 의견을 내던 사람들은 어디론가 사라진다. 평론지에서의 점수가 자신이 부여한 점수와 일치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더욱 커진다. 물론 와중에도 소신을 굽히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나누는 사람도 분명 존재하지만 말이다.
섬세하고 예민한 안목을 갖추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무례하고 오만해지는 경우를 자주 마주한다는 글은 취향을 대하는 나의 마음에 경각심을 가져다준다. 가끔 공신력 있는 사람들이 어떤 콘텐츠를 두고 내린 평가가 나의 평가와 겹칠 때 드는 은근히 즐거운 마음이 콘텐츠를 접하면서 즐거운 마음을 앞지를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질문을 던져야겠다. 과연 얼마나 진실한 마음으로 즐기고 있는 지 말이다.
마지막은 이 비판이 해야 하는 일인지, 할 수 있는 일인지, 아니면 그냥 하고 싶은 일인지 가려보는 것이다. 단점을 말하기 전에 세 개의 원으로 이루어진 벤다이어그램을 차분하게 그려볼 필요가 있다. 어떤 창작물에 윤리적인 문제가 있다면, 특히 필요 이상의 공격성, 가학성, 선정성이 있다면 크게 말해야 한다. 이건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잘못되었다는 걸 알리려 더 많은 사람의 목소리를 모으기 위해서라도 분명히 단점이라고 말해야 한다. 해야 하는 일에 해당하는 경우다. 문제를 정확하게 포착하고 공론화시키는 데 탁월한 사람도 있다. 할 수 있는 일에 해당하는 경우다. 그러나 그냥 하고 싶어서 하는 경우도 있다. 창작자의 지속가능한 활동을 원하는 마음에서 출발하는 피드백은 도움이 된다. 그게 아니라 단지 '나라면 그렇게 만들지는 않았을 텐데'를 참지 않고 바로 표현해버리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나는 그걸 '안 한' 사람이고, 창작자는 그걸 '한' 사람이다. p77
비평글에 매료되어 도전해보겠다고 다짐한 뒤 처음 썼던 글은 지금도 읽으라고 하면 읽기 어렵다. 손발이 펴지지 않을 만큼 어색하고 부자연스럽다. 그 이유는 어설프게 비판을 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무의식적으로 작품의 흠결을 잡아내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였다. 내가 했던 비판들은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하고 싶은 비판이었다.
심지어 비판이 하고 싶었던 이유조차 납득이 가지 않는다. 콘텐츠를 객관적이고 냉정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으로 비치고 싶었던 마음이 컸다. 당시에는 비평에 있어서 평가가 가장 중요한 핵심이며, 작품의 단점을 반드시 언급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비평에 대한 비평을 의식하는 글을 썼다.
콘텐츠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여러 번 작품을 보다 보면 아쉬운 점을 발견하는 사람도 종종 존재한다. 단점에 대해 언급한다는 것이 콘텐츠를 관용적으로 바라보는 자세가 결핍되어 있어서는 아니다. 진정한 애정을 표현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 도리 수 있다. 이 경우,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비판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콘텐츠를 소비하는 사람이 갑이라는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서나, 비판적이고 객관적인 시선을 탑재한 자아를 뽐내기 위한 비판은 지양해야 한다.
<콘텐츠 만드는 마음>에 담긴 저자의 진심을 통해 콘텐츠를 만드는 나의 진심을 돌아보게 된다. 읽으면서 글을 쓸 때, 배보다 배꼽이 더욱 커지는 마음을 포착하던 때가 떠오른다. 문화 예술을 매개로 글을 쓰는 걸 좋아해서 에디터가 되고 싶다고 꿈꿔왔지만, 가끔 글을 쓰기 위해 문화 예술을 접하는 내 모습을 발견할 때도 있다. 주객이 전도된 상태에서 글을 쓸 때는 평소에는 몰랐던 강박에 휩싸이는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원작이 되는 콘텐츠만큼이나 콘텐츠에 대한 글이 사람들로부터 기다려지려면 어떻게 쓰여야 할까. 서해인 작가는 책을 통해 콘텐츠를 향한 자신의 꾸밈없는 섬세한 생각을 공유하는 게 정답이라고 외치는 것 같다. 그의 진솔한 자세가 담긴 글에서 신뢰성이 느껴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