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이 만든다, 프로의 차이
“탁!”
수화기를 내려놓는 소리 하나가 귓가를 울리며 불쾌함을 남겼다. 대리운전 상담원과의 통화는 무난했지만, 전화를 끊는 순간의 ‘탁’ 소리는 전화를 건 내게 불필요한 감정을 남겼다.
'상담원이 화가 났나? 기분이 나빴나?'
'전화 예절을 모르는 거 아냐? 회사는 기본 교육도 안하나?'
수화기의 '탁'소리는 상담원의 태도, 회사의 교육 수준, 고객에 대한 배려 부족까지 단번에 의심하게 만들었다.
요즘에는 대부분 스마트폰으로 통화하니 수화기를 내려놓는 소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를 것 같다. 사무실에 있는 일반 전화기를 이용하다 보면 수화기를 내려놓을 때 수화기를 부딪히는 소리가 상대방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그래서 ‘항상 상대방이 전화 끊는 것을 확인하고 수화기를 내려놓는다’, ‘먼저 끊어야 하는 경우에는 손가락으로 전화기 송화 고리를 누르고 수화기를 내려놓는다’ 등의 교육을 받기도 했다.
전화 예절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다. 조심스럽게 전화를 끊는 행동은 예절이기도 했지만, 상대에 대한 존중이고 배려이기도 했다. 더불어 나의 이미지를 실추시킬 기회를 차단하기 위한 방어막이기도 했다. 통화 잘 끝내고 마지막 한 순간에 기분 나쁘게 만들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
나는 최소한의 기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을 뿐이다. 기본을 알고 있는지, 그 기본을 실천할 수 있는지가 정말 일 잘하는 프로다운 모습의 시작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신입사원 교육을 마치고 현업에 배치된 분이 질문했다.
“직장예절은 왜 배우는 건가요? 현실에서는 아무도 지키지 않던데요.”
현업에 가보니 직장 예절 지키는 선배 한 명도 없고, 교육과는 다른 현실 세계를 경험했다고 한다.
나는 과연 어떤 대답을 했어야 했을까?
그 질문은 직장생활의 본질을 잘 보여준다. 많은 신입들은 교육과 현실의 괴리에서 혼란을 겪는다. 하지만 우리가 배운 기본은 바로 ‘결정적인 순간’을 위한 준비이다. 평소에는 ‘요’체를 쓰고 반말이 섞일 수 있지만, 회의실 문을 열고, 고객을 만나고, 임원을 대하는 순간에는 전혀 다른 언어와 태도가 필요하다.
회사에 입사한 후에 기본기를 얘기할 때, 입사하면 말투부터 바꿀 것을 당부하곤 한다. 대학생 말투 버리고 직장에 맞는 화법을 갖추자는 말이다. 일상에는 ‘요’체를 많이 사용한다. ‘오늘 보고드릴 내용은 실적현황이고요, ㅇㅇ팀장을 대신에게 제가 발표하려고 해요.’라는 말투는 회의실 안에서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 말투에 임원들의 눈쌀이 찌뿌려진다. 기본이 실천되지 않은 상황에 대한 불쾌함은 인사팀과 팀장에게 질책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거래처에 미팅을 갔을 때도 이런 상황은 발생한다. 명함을 받자 마자 지갑 또는 가방 속으로 쏘옥 집어넣고 있다. 심지어는 바지 뒷주머니에 꾸욱 집어넣기도 한다. 반면 거래처 사장님은 명함을 반듯하게 책상 위에 올려두고 대화를 시작한다. 그 순간 동행했던 팀장의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은 덤이다.
디지털과 소통이 원활해진 시대가 되면서 직장 문화도 수평적 소통과 창의적 분위기를 강조한다. 위계를 낮추고 관계를 구축하려는 노력이다. 즉, Formal을 강조했던 조직문화에 informal한 상황이 자리매김했다. 수평적이고 창의적인 조직문화가 성과를 높일 수 있다고 했고, 새로운 세대의 문화를 수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존의 formal한 문화는 여전히 남아있다. 직장은 여전히 위계 기반의 구조로 형성되어 있고, 그에 따라 역할과 책임이 나뉘어 있다. Informal이 formal을 대체한 것이 아니라 여전히 조직은 formal한 곳이라는 의미이다.
조직은 여전히 ‘관계의 질서’ 위에 서 있으며, 그 안에서의 소통은 상황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 일을 잘하고 좋은 성과를 낸다는 것은 상황적 맥락 속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직장은 구조와 관계로 형성된 사회이고, 일과 성과도 그 안에서 비롯된다. 상황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의미는 그 관계를 잘 이해하고 관계에 맞는 언어와 태도, 행동을 보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상황에서 자신의 방식으로 캐주얼하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진정한 ‘자기다움’은 아니다. 일이라는 공식적인 맥락에서는 자신의 프로페셔널함을 보여줄 수 있는 언어와 태도, 그리고 행동이 필요하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기본이다. 수평적인 조직문화에서도 우리가 알고 실천해야 할 기본이라는 것이 있다. 결국 일을 잘한다는 것은 단순히 결과를 내는 것이 아니라, 관계 안에서 맥락을 이해하고 적절한 언어와 태도, 행동을 보이는 사람이다. 성과는 기본이 되어야 하고, 기본기를 갖춘 과정은 당신의 가치를 더욱 빛나게 만든다.
신입사원 교육 후에 비즈니스 매너 교육이 도움이 안된다고 말했던 후배에게 나는 대답했다.
“당신은 기본을 알고 있잖아요. 그리고 그 기본이 당신의 영향력을 높여줄 거예요. 선배가 보여주는 모습이 현실일 수는 있지만, 그게 기본은 아닙니다. 기본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은 분명히 다릅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고맙다며 인사를 했다.
기본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강력한 무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