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고양이가 막 나를 울리네

<피터의 고양이 수업>

by 무아노

고양이가 쓴 원고를 책으로 만든 책』는 이전에 서평 했던 책이다. The silent Miaow라는 원제를 고양이가 쓴 원고를 책으로 만든 책이라는 내용을 반영해 재치 있는 제목을 붙인 번역가 조동섭, 그리고 고양이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기발한 상상력을 보여준 폴 갈리코, 두 사람 모두에게 감탄했다.


폴 갈리코의 책을 더 찾아보니 번역가 조동섭이 원제 『Jennie』를 『피터의 고양이 수업』으로 번역한 것이 있었다. 원래도 읽었을 텐데 책소개에서 '어느 날, 길고양이를 향해 달려가던 피터는 자동차에 치인 후 고양이로 변하고 만다.'는 문구가 강렬하게 다가왔다.

주인공이 트럭에 치여 다른 존재로 깨어난다는 설정은 요즘 웹소설과 웹툰에서 너무 익숙한 장면이다. 그런데 이 소설이 1950년에 나왔다는 걸 알고 깜짝 놀랐다. 차원이동은 아니지만 고양이의 시선으로 본 세상은 '이세계'와 비슷해 가히 클리셰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주인공 피터는 군인 아버지와 아이에게 무심한 어머니 사이에서 자랐다. 어느 날, 고양이를 좋아하던 피터는 새끼 고양이에게 가려다가 석탄 트럭에 치여 다른 차원으로 가진 않고, 흰 고양이가 됐다. 집에 고양이가 들어왔다 생각한 유모는 피터를 쫓아낸다.

피터는 런던을 방황하다 노랑 고양이 '뎀지'를 만나 반죽음 상태가 되고 얼굴과 목이 하얀 고양이 '제니'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다. 제니는 인간에서 고양이가 된 피터를 위해 고양이라면 알아 할 정보를 알려주는데 그건 그들이 스코틀랜드의 글래스고에 가는 배 위에서도 이어진다.

글래스고 여행을 끝내고 런던으로 돌아온 두 고양이는 헤어질 위기에 처한다. 피터가 혼자 살아보기로 결심했을 때 제니는 피터에게 돌아왔다. 그렇게 행복하게 지낼 것 같던 고양이로서의 삶은 '뎀지'가 제니를 노리면서 깨지고 만다.


피터가 다시 인간이 되는지는 혹시나 책을 읽을 미래의 독자를 위해 남겨두겠다. 엄밀히 따지자면 이건 차원이동물이 아니지만 내가 비슷하게 생각한 터라 인간(본래 살던 차원)으로 다시 돌아오는 게 정말 궁금했다. 그리고 내가 생각한 결말은 아니었으나 나름 괜찮았다.


결말이 나름 괜찮다 했지만 그게 책 자체에 대한 평가는 아니다. 소설은 무척 재미있다. 소설을 읽으며 가슴이 아리면서 눈물이 날뻔한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리고 이건 작가가 이야기에 몰입시키고 등장인물을 사랑할 수밖에 없게끔 썼다는 뜻일 것이다.

어린 나이에 의젓한 피터는 고양이가 된 자신과 제니의 가르침을 겸허히 받아들인다. 제니의 애정이 피터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것은 감동적이며 글래스고에 배를 타고 가는 동안 선원들에 대한 유머스러운 묘사들은 읽는 내내 미소 짓게 한다.

인물뿐 아니라 고양이의 특성, 1940년대의 런던을 생생하게 글로 그려낸 것은 그가 정말 대단한 작가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작가가 모든 분야를 완벽히 알아야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좋아하는 요소를 넣어 진심으로 쓸 때 그 글은 독자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재미없었지만 서평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