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밤바람
미역귀와 복연 할매
“이놈의 자식! 이게 누고?
**이 아들아이가?”
“할매 잡아 보이소!”
그래 놓고 이쪽에서 저쪽으로 풀쩍 뛰어넘었다.
봄볕에 거무스름한 나신들이 꼬들꼬들 말라갔다. 갱문(바닷가)에 일렬로 드러누운 미역 위로 소금기를 머금은 봄바람이 쏴~ 했다.
이맘때면 바다에서 건져 올린 미역을 말리느라 동네는 쉴 틈 없이 분주했다.
물이 빠지면 미역을 채취한다고 사람들에게 알리는 확성기가 요란하게 떠들었다. 이렇게 공동으로 수확한 미역은 마을 전체가 공평하게 나누었다.
물이 줄줄 흐르는 생미역은 무겁기도 하지만 보관하기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골고루 헤쳐서 잘 관리하지 않으면 누렇게 떠서 흐물흐물해지고 색깔이 변해 상품 가치가 없었다.
더러 시장에 바로 내다 팔기도 했지만,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섬에서 노를 저어 육지까지 가야 하고 십 리 길을 다시 걸어야 했다. 그것도 장날을 맞추지 않으면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이래저래 낭패한 일이었다.
시장에 가더라도 체중에 맞먹는 무게를 머리에 얹고 날랐으니 골병이 들어도 수백 번은 들었을 것이다. 그런 무게를 감당하면서 버티던 삶이 당시 섬 어머니들의 일상이었다. 그렇다고 후한 보상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생미역 한 대야 실컷 고생해서 팔아봤자 강냉이 한 되 튀기고, 벼르고 벼르던 아버지 양말 두어 켤레 사면 그만이었다. 노동의 가치에 비해 결과가 초라하니 미역 수확은 썩 구미가 당기는 작업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공동으로 하는 일에 빠질 수 없으니 울며 겨자 먹기 식이라도 참여해야 했다.
그렇다 보니 가장 좋은 방법은 미역을 말리는 것이었다. 건조만 잘하면 오래 보관을 할 수 있고 가격도 훨씬 후하게 받을 수 있었다. 더군다나 무거운 미역을 읍내 장에까지 나르지 않아도 되니 일거양득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미역 널기가 시작되면 갱문은 시끌벅적했다. 맨땅에 먼저 가마니나 덕석을 널찍하게 깔았다. 자갈밭이나 모래사장에는 그대로 타래를 지어 말렸다. 드물게는 발을 깔기도 했지만, 당시는 귀했다.
쪼그리고 앉아 일일이 손으로 길이와 폭을 맞춰가며 모양을 냈다. 아예 퍼지고 앉아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 이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열을 지어 드러누운 미역은 마치 운동장에서 조례하는 아이들이 줄을 선 것처럼 반듯했다.
두께도 일정했다. 너무 두텁게 하면 속이 잘 마르지 않아 애를 먹었다. 그렇다고 얇게 해 버리면 뒤집기가 힘들고 마르면 쉽게 부서져 버렸다. 이런 것을 골고루 염두에 두고 미역을 널어야 했다.
보기보다 꽤 숙련을 요구하는 까다로운 작업이었다. 손이 서툰 아낙들은 제대로 모양을 낸다고 손끝이 바들바들했다.
이런 가운데 유독 출중한 솜씨를 발휘하는 한 분이 계셨다. 바로 복연이 할매였다.
산더미같이 쌓인 미역도 복연이 할매 손만 같다 하면 일사천리로 해치웠다.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이 방면의 으뜸가는 장인이었다.
마을에서는 ‘지붕 이우기 하면 태구 아저씨, 미역 손질은 단연코 복연이 할매’를 최고로 쳐 주었다.
여기에는 비법이라고까지 할 순 없지만, 할매만의 독특한 노하우가 있었다.
할매가 가장 중시하는 것은 미역에 달린 귀 다리였다. 대부분 사람은 모양내기가 사납다고 이것을 떼어버렸지만, 할매는 그러지 않았다.
우선 튼실한 미역귀가 달린 미역을 신경 써서 골랐다. 길게 뻗은 줄기에 무성하게 이파리가 딸린 것은 언제나 할매의 선별 대상 첫 순위였다.
이것을 양쪽 끄트머리에 두고 안쪽을 향해 가지런히 펼치면 타래의 모양이 순식간에 잡혔다. 이때 양쪽 끝 지점의 중심을 잡아주는 것이 미역귀였다. 듬석듬석 비는 공간에는 잔 미역이나 알맞게 자른 미역으로 적당히 메꾸어 주면 타래는 훌륭하게 완성되었다.
손이 빠르고 거침이 없는 할매는 언제나 자기 일을 먼저 마쳤다. 그리고 아직 일을 끝내지 못한 주위 사람들을 꼭 도와주었다. 그만큼 품이 넉넉하여 젊은 사람들로부터 칭찬과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그러니 복연이 할매 손길이 간 미역을 찾아내면 십중팔구 미역귀가 있었다.
이것을 기가 막히게 찾아내는 녀석의 혜안 또한 할매의 손놀림에 버금가는 것이었다.
아침에 널어놓은 미역이 봄볕에 말라가며 하굣길 무렵에는 소금간이 어렸다. 미역귀는 야들야들하게 마르면서 흰 우렁이 생기는 이때가 가장 맛있었다.
쫀득하고 짭조름한 미역귀의 참을 수 없는 유혹은 녀석의 하굣길을 언제나 이쪽으로 이끌었다.
할매의 경계 대상 1호가 뜬 것이다. 더구나 의중을 알아차린 다른 녀석들도 함께 따라오는 바람에 녀석들이 쓸고 간 자리는 쑥대밭이 됐다.
온통 미역귀 천지였다. 입맛대로, 눈 맛대로, 기분대로 마음껏 고를 수 있는 이 순간만큼은 행복했다.
집에 가봤자, 정지(부엌) 앞에 걸린 소쿠리를 기웃거리며 찰기 없는 보리밥이나 한 입 넣는 게 고작일 텐데, 복연이 할매가 고마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낌새를 알아챈 할매가 지팡이를 휘두르며 다가섰다. 따라온 녀석들이 내빼느라 허겁지겁했다. 그러나 녀석은 되레 느긋했다. 고무신이 벗겨진 줄도 모르고 줄행랑쳤던 녀석들이 다시 찾으러 올 때까지도 태연했다.
녀석의 여유는 까닭이 있었다. 복연이 할매는 칠은 집 할매처럼 무자비하게 작대기를 휘두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마저 뜯어야 하는 미역귀도 포기할 수 없는 이유 중에 하나였다.
그래도 타래를 헝클지 않으려고 최대한 숙였던 대가리를 아래로 더 처박았다. 앞니와 송곳니를 번갈아 들이댔다. 질겅질겅 뜯기도 하고 손으로 비비 꼬기도 했지만, 할매가 쫓아오니 마음만 급할 뿐 미역귀는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에이! 이놈.”
할매가 엉거주춤 지팡이를 내려쳤다. 녀석이 잽싸게 피했다. 입에 물고 있던 미역 줄기가 함께 들썩였다. 전열을 잃은 미역 타래가 부스럭거리며 떨어져 나갔다.
녀석이 가마니의 반대편으로 폴짝 뛰어넘었다.
아직 설마른 미역 타래가 만신창으로 딸려오며 속살을 드러냈다. 헝클어진 부스러기가 가마니 위에서 온통 산들거렸다.
말문이 막히는지 휘젓던 작대기로 땅을 짚은 할매가 물끄러미 녀석을 쳐다보며 혀를 찼다. 따라 넘어갈 수도 없으니 기만 찼다
“저~~~ 저~~ 놈~!
니, 이놈, 사람 되기는 글렀다.”
넝글넝글 도망치던 녀석이 뒤를 홱 돌아보며 할매의 심지를 또 돋우었다.
“할매, 잡아 보이소!”
저쪽 타작마당에서 칠은 집 할매가 뚫어지라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복장이 터질 듯 서 있는 복연이 할매의 허연 귀밑머리가 봄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렸다.
그날 해 질 무렵이었다. 삽짝을 들어오시며 엄마를 부르는 복연이 할매 목소리가 들렸다.
드디어 올 것이 또 왔구나!
양심에 찔린 녀석은 못 들은 채 방에서 꿈적도 하지 않았다.
마루에 걸터앉았는지 복연이 할매가 엄마에게 가만가만 건네는 소리가 들렸다.
“애가, 얼마나 먹고 싶었으면 그랬겠니?
마! 아무 소리 하지 말고 이것 주어라.”
따뜻한 밤바람 같은 할머니의 목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듯하다. 복연이 할머니가 두고 가신 산대 미(짚으로 엮어서 만든 작은 바구니)에는 미역귀가 수북이 담겨 있었다. 아까 낮에 미처 뜯지 못한 것이었다.
어안이 벙벙한 녀석의 눈이 휘둥그레 졌다.
납득이 가지 않는 복잡한 심경을 숨기려고 이래저래 미역귀만 만지작거렸다. 철없는 부끄러움이 갑자기 무안으로 다가왔다.
그날 밤늦게까지 오물거린 아구통은 다음 날 아침이 되도록 얼얼했다. 무서운 선생님이 내준 산수 숙제도 그날 밤 당연히 하지 못했다.
밤바람이 봄바람보다 더 푸르고 따뜻하다는 것을 그날 처음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