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라디오 자서전’ 수업이 열렸다.
이 수업에 참여한 이유는 단순했다.
가르치는 선생님이 탁월하다는 소문, 그리고 ‘방송’이라는 말이 주는 묘한 끌림 때문이었다.
사실 이 수업 직전에 ‘스피치’ 수업을 먼저 들었다.
복식호흡을 연습하며 주어진 영상에 맞춰 목소리를 녹음했고,
선생님은 내 목소리에 이렇게 말했다.
“목소리에 힘이 없어요.”
복식호흡이 잘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조금 민망했지만, 그래도 이 배움을 바탕으로
내 인생 이야기를 목소리로 풀어낼 수 있다는 점은 충분히 해볼 만했다.
돌아보면 나는 본의 아니게 자서전 같은 작업을 꽤 해왔다.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도서관에서 시행한 ‘자서전 쓰기’ 수업 이후였다.
그때 얻은 자신감 덕분에 이후 여러 번 공저 작업에도 참여했다.
라디오 자서전 수업에서 선생님은
자서전을 쓸 수 있는 다양한 방식과 방향을 제시해 주셨다.
하지만 20~30분, 음악과 함께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한 사람의 인생을 모두 담아내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더 많이 덜어내고, 고르고, 다듬어야 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깨달았다.
글 앞에 다시 앉아 있는 내가, 생각보다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자신을 드러낸다는 건, 거창한 고백이 아니라
이렇게 조심스럽게 나를 인정하는 일이었다.
수업에 참여한 사람들의 삶은 정말 다양했다.
한 분은 짧은 이야기 안에 천당과 지옥을 오간 삶을 담아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내 원고를 조금 수정했다.
내 글의 중심은 꿈에 대한 이야기이다 보니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아팠던 부분은 살짝 건너
삶을 비교적 ‘아름답게’ 기록했었다.
다시 돌아보니, 그 삶은 내가 원했던 모습이기도 했다.
퇴직 후 가장 큰 고민은 단 하나였다.
“내가 다시 사회에서 돈을 벌 수 있을까?”
SNS로 뭔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찾았지만
거기서 정체된 체로 나만의 빌딩을 세워가지 못했다.
절박하지 않아서일까?
그러다 올해 나는 새로운 일자리를 찾았다.
다문화강사로, 책 읽어주는 문화봉사단으로, 기자로 일하며
비록 작지만 보수를 받았다.
하지만 그 과정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강사라는 새로운 일은 내게 큰 도전이었다.
그럼에도 아이들과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또다른 기쁨을 주었고, 나의 재능을 발견하는 일어었다.
수십 번 외우고, 또 외우고,
수영장에 가서 물속을 걸으며 혼잣말로 교안을 읊조렸다.
지나가던 사람이 나를 이상하게 바라봤다.
충분히 이해된다. 나라도 그랬을 테니까.
그렇게 고비를 하나씩 넘겨왔다.
아름다운이야기할머니에도 도전했다.
첫 번째는 떨어졌고, 올해는 신청했지만
다문화강사 일과 함께 병행할 자신이 없어 포기했다.
암송에 대한 부담, 예전 같지 않은 기억력도 솔직히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을 시험해 보고 싶은 마음은 여전히 남아 있다.
다시 라디오 자서전 이야기로 돌아오면,
사람들의 이야기는 참 재미있었다.
남편을 따라 유학을 가서 겪었던 외로움, 만남..
각자의 우여곡절을 안고 살아온 사람들.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았다고 해서
우리는 그들을 이상하게 보지 않는다.
오히려 응원하게 된다.
그런데도 막상 내 이야기를 꺼내려 하면 부끄러워진다.
사람들이 내 삶에 관심도 없을 텐데 말이다.
아마 유명인이었다면 조금 달랐을까.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삶을 들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인생도 소중하지 않은 삶은 없구나."
그래서 나의 라디오 자서전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6. 클로징
� BGM — Variations on the kanon
오늘 제 이야기를 끝까지 함께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호흡]
지나온 기억의 퍼즐을 하나씩 맞추다 보면
어느 순간... 알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내가 어떤 사람으로 자라왔는지,
난 어떤 줄기에서 흘러온 삶이었는지를요. [호흡]
2025년을 돌아보면
저는 제 삶을 한 페이지씩 다시 펼쳐 읽은 한 해였습니다.
어린 시절의 별빛과 바다,
중년의 분주함,
그리고 다시 시작된 배움의 시간들,
그 모든 것이
지금의 저에게 작은 길을 내주었습니다.
2026년에는
조금 더 담담하게, 조금 더 여유롭게, 때론 유쾌하게
제 이야기를 써 내려가 보려고 합니다.
오늘 제 이야기를 들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여러분의 삶도 각자의 속도로
고요하게 단단하게 흐르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저는 박종숙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수업을 통해 알게 된 사람 중,
고향 이야기를 하다 자연스럽게 말을 나누게 된 분이 있다.
나는 강릉, 그분은 속초.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나랑 비슷한 면이 많았다.
자서전, 웹툰, 스피치 수업을 함께 들으며
몇 번 얼굴을 마주쳤던 사이다.
평소라면 수업이 끝나면 인사만 하고 헤어졌을 텐데,
이번에는 자서전이라는 공통의 주제가 있어
조금 더 이야기가 이어졌다.
책과 글쓰기를 좋아하고,
곧 퇴직을 앞두고 있으며
방송 일에도 관심이 있다고 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눈 것은 아니지만,
서로 알아가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사람을 알아가는 일은 늘 조심스럽다.
꼭 가까워져야만 의미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이야기를 잠시 나눌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그날의 수업은 충분했다.
이번 마지막 수업시간에는 우리만의 작은 파티를 열었다.
그날 감동은 우리를 지도하셨던 선생님이
각사람을 생각하면서 쓴 손편지와 책 선물이었다.
이렇게 따뜻한 수업이 있을까?
수업만 받고 헤어지던 사람들과 만남에서
서로 이야기를 통해 거리가 잠시 가까워졌고
조금 더 마음을 열수 있는 사람을 만났다는 것이 제일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