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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림그릿 박종숙 Apr 11. 2024

떠남의 미학

나는 최근 미스터 트로트 때문에 가요에 대한 관심이 있었던 차에 나훈아의 마지막 콘서트가 열린다고 들었다. 나훈아가 소속사를 통해 공개한 '고마웠습니다!'라는 제목의 편지를 읽었다. "마이크를 내려놓는다는 것이 이렇게 용기가 필요할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다"라며 "박수 칠 때 떠나라는 쉽고 간단한 말의 깊은 진리의 뜻을 저는 따르고자 한다"라고 되어 있었다. 역시 나훈아 다운 말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이어 "세월의 숫자만큼이나 가슴에 쌓인 많은 이야기들을 다 할 수 없기에 '고마웠습니다!'라는 마지막 인사말에 저의 진심과 사랑 그리고 감사함을 모두 담았다"라고 썼다. 역시 거장의 말이다. 초등학교 시절 TV에서 남진과 나훈아를 보며 자랐다. 모든 면에 뛰어난 그들의 행보가 어린 나이에도 늘 동경의 대상이었다. 개인적으로 나훈아 오빠가 남진 오빠보다 더 괜찮다고 느꼈지만, 주로 따라 부르는 노래는 남진 오빠의 노래였다. 노래로 그 시대의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가수들이다. 내가 자주 부른 곡은 남진 가수의 '저 푸른 초원 위에'였다. 내향적이긴 했지만,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친구들 앞에서 남진의 노래를 신나게 불러대던 아이였다.


남진과 다르게 나훈아는 이혼과 결혼 등 가정사의 어려움이 있었지만 여전히 그의 노래는 독보적이다. 한국에 이런 멋진 가수가 있어서 자랑스럽다. 물론 남진도 마찬가지다. 그는 안정적인 가정을 이루었고 지금까지 큰 스캔들 없이 반듯한 삶을 살고 계신다. 나훈아의 삶은 굴곡이 많았지만, 그는 계속 작사, 작곡을 해왔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가 만든 곡은 명곡이 많아 트로트 가수들이 자주 부른다. 들을 때마다 그의 인생의 깊이를 느낀다. 그만큼 돈도 많이 버시겠지만, 난 가수로서 그분들이 좋은 어른의 역할을 해왔다고 생각한다. 그 존재만으로 말이다.



나훈아의 이야기를 한 것은 나도 은퇴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떠남이 멋있는 걸까? 나의 떠남은 정해진 은퇴 나이에 따라 나가는 것이지만, 가수는 평생 할 수 있는 것인데 내려놓는다는 것이니 당연히 나와 다르다. 베일에 싸여 살던 그가 가수 인생의 마무리를 준비하고 있다는 면에서는 나와 같다. 언젠가는 지속적으로 해왔던 일과 이별해야 할 때가 있다. 나훈아는 그의 팬들에게 편지로 마지막 콘서트로 사랑의 보답을 하려 한다. 뼛속까지 가수니까 말이다.


6월 말 전에 직장을 떠나야 하는데, 가까운 이들과 어떻게 이별을 해야 할지 고민이다. 어물쩍하다 보면 제대로 인사도 못한 채 나올 수 있다. 인사를 해야 한다면 일찍 서둘러 만남을 약속해야 한다. 어떤 선배는 나갈 때 주위 지인들에게 손수건을 선물했다. 거기에 글을 썼는데, 자신으로 인해 마음 상한 것이 있다면 이해해 달라고 했다. 그리고 그동안 너무 고마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어떤 분은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사라진 분도 계셨지만, 그동안 살갑게 지내온 지인들이 선배의 수고에 대한 조촐한 파티를 열어주었다. 서로를 챙겨주는 모습들이 아름다웠다.


오랫동안 기독선교회에서 함께 섬겨왔던 친구는 1년 공로연수를 신청했다. 그래서 작년 말에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녀와 함께한 멤버들이 약간의 돈을 모아 금열쇠를 선물했다. 직장 내 기독선교회에서도 예쁜 공로 선물을 주었다. 예상치 못한 선물에 어찌나 친구가 우는지 옆에 있는 내가 당황스러웠다. 


어쨌든 나도 슬슬 지인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어떻게 할지 결정해야 한다. 물론 세종시에서 머물기 때문에, 서둘지 않아도 되겠지만, 다들 직장을 나가면 그리 연락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이제는 떠난 사람인데 왠지 직장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에게 전화해서 만나자는 말을 하기가 내키지 않을 것 같다. 과한 염려이지만 전화를 걸었는데 상대방이 바쁘다고 말하면 그것 자체로 불편해질 것 같다. 굳이 그런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다.


내년은 내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나에 대한 수식어도 바뀔 것이다. 직장인이 아닌 은퇴자로, 하고 있는 일은 가정주부로 바뀔 것이다. 여기에 새로운 직업이 하나 추가될 것이다. 글 쓰는 사람, '작가'이다. 비매품이지만 책 한 권을 내었고 당당히 ISBN를 받았다. 사실 은퇴 후에 일을 해야 한다면 보수는 많지 않더라도 4대 보험이 되는 곳에서 일을 하고 싶다. 그러나 긴 인생을 살아온 만큼, 이제는 돈을 좇는 삶이 아닌 좀 더 의미 있는 일에 시간을 보내고 싶다. 내게 작가라는 타이틀은 지속적으로 글을 쓰겠다는 것이고 글을 통해 말하겠다는 의미이다. 글쓰기로 통해 성장을 멈추지 않겠다는 선포이다. 또한 내 책을 읽어줄  독자와의 만남을 기대하는 준비 기간이다.


매일 꿈꾸는 소박한 꿈이 결국 나만의 색깔, 브랜드를 만들어갈 것이다. 아직 시간이 걸리겠지만, 초조해하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바로 근육을 만드는 일이다. 건강뿐만 아니라 독서와 글쓰기 근육을 키워야 한다. 하고 싶은 일에는 마땅히 땀과 인내가 따른다. 쉽게 얻어지는 일은 결국 자기 것이 아닐 수 있다. 이렇게 글을 쓰고 선포하다 보니 "나는 작가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한 스타트라인에 서있는 것 같다." 오늘도 외쳐본다.

"박작가,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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