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오늘 점심 약속 있니?"
마침 오늘 점심을 어떻게 할지 고민 중이었는데 흔쾌히 약속을 잡았다. 직장 구내식당 메뉴가 괜찮아 친구와 식사를 하고 카페에서 차를 마셨다.
친구는 올해 6월 오랜 직장 일을 끝내고 1년간 공로연수를 들어간다. 그래서인지 친구는 부쩍 감정의 변화를 겪고 있다. 친구는 서울에 집이 있어 세종시까지 출퇴근을 해왔다. 이제 직장 일을 떠나 자신만의 시간을 가진다는 의미에서 즐거운 일이지만 떠날 때가 되니 그 마음이 그리 쉽지 않은 것 같다.
친구는 같이 일하는 직원과 주로 식사를 주로 하는 편인데, 요즘 그 직원이 자기를 왕따시키는 것 같다며 화가 나있었다. 밥 먹으러 가는데 치사하게 자기만 쏙 빼고 가더란다. 자신이 혼자 먹을 것을 뻔히 알면서 말도 없이 나가는 그 직원의 행동에 마음 상했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의 친구 이야기를 해주었다. 직장 내에서 이런 식으로 왕따를 당하다가 결국 우울증이 와서 직장을 나오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 일이 오히려 친구에게 감정이입이 되어 예민해진 것 같았다. 사람들은 표현하지 않을 뿐 자신의 외로움을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찾으려 한다.
서운함이 드는 것도 나이와 상관이 있는 걸까? 사람들도 곧 나갈 사람이니 함부로 대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나이가 들수록 입은 다물고 지갑은 열라'라고 하지만, 그것만으로 해결되지는 않은 것 같다. 친구가 예민한 부분도 있지만 물 흐르듯 그냥 받아들여하는 나이가 되었다. 그녀는 직장맘으로 아이 셋을 키웠다. 오랜 직장 생활 동안, 그녀가 출산 시 쓸 수 있는 2~3개월 쉬는 것 말고는 한 번도 휴직을 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옛날에는 지금처럼 육아휴직제도가 잘 되어 있지 않아 출산 후 누군가 키워주지 않으면 직장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열심히 살아온 그녀는 은근 부자다. 이제 쉬면서 집안 살림에 집중해 보고 싶단다. 그 이후에 천천히 일을 찾아볼 생각이라고 했다.
남자와 여자의 특성을 보면 남자는 목표 지향적이지만 여자는 관계지향적이다. 그래서인지 여자들은 사람들과의 관계에 예민한 편이다. 요즘 나는 누군가 약속을 잡는 것도 불편해서 혼밥을 선호할 때도 있다. 구내식당에서 간단히 식사하고 점심시간에 책을 읽거나 산책을 한다. 혼자 쉬는 그 시간이 편하다. 그러나 친구는 나와 입장이 다르다. 오랫동안 같은 공간에서 둘이 근무해왔고, 같이 식사를 해왔다. 당연히 배신감이 들었을 것이다.
직장과 이별을 준비하고 있는 나 또한 다르지 않다. 사람들과 관계에서 감정의 변화를 겪는다. 다만 뒤늦게 찾은 독서와 글쓰기가 내게 평화를 준다. 별 볼일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할 일이 있는 사람은 당당하다. 읽어야 할 책, 읽고 싶은 책이 많은 사람, 책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싶은 사람, 글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은 꿈을 가졌기에, 나이가 들수록 누추해지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너 잘하고 있어'라고 나에게 속삭인다.
직장 식사 후 조금만 걸어가면 세종국립도서관이 있다. 도서관에 가는 날은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배불리 먹지 않는다. 책 내음이 가득한 그곳, 친구를 만나러 가듯 나의 발걸음은 가볍다. 길가에 핀 꽃도 정겹다. 저기 파란 하늘에 두둥실 배 띄웠다. 도서관 호가 출항한다. 저 배 타고 바람을 느끼며 여유롭게 책을 읽으며 행복해하는 모습을 상상한다.
도서관에 들어오면 벌써 책 내음이 느껴진다. 여전히 읽어야 할 책, 읽고 싶은 책, 도저히 읽지 못할 것만 같은 책이 이렇게 많다니…. 그 놀라움에 잠시 어지러워진다. 그럼에도 안도감이 드는 것은 그곳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세계의 모든 지식이 나에게 흘러 들것 같아서이다. 도서관이 주는 차분함이 나의 수위 높은 불안감을 잠재워준다.
오늘은 어떤 책을 읽을까? 작가는 어디로 나를 데려다줄까~믿음이 실재가 되기까지 꿈꾸며 살아온 삶. 정신없는 세상 속에서 좀 늦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들. 따스한 마음 한가득, 그리고 지속할 인내만 있다면 꿈은 이루어진다. 현상을 보지 않고 믿음으로 살면 꿈은 현실이 될 것이다.
달콤한 시간을 보내고 다시 사무실로 향한다. 1시간의 휴식이 내게 다시 일할 힘을 준다. 이제 일을 하자. 책이 내게 가르쳐 준 지혜를 생각하며, 내게 주어진 이 공간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