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짐의 상대성
놀이터에 갈 때면 지갑에서 천 원을 꺼내 주머니에 넣었다. 놀다 보면 과자가 먹고 싶어 지니까. 학교 끝나고 가방을 내려놓고 TV를 틀었는데, 오늘따라 좋아하는 만화는 하지 않았다. 베란다 문을 열고 놀이터를 바라보았는데 오늘따라 아무도 없었다.
고민하다 잠바를 입고 천 원을 챙겨 놀이터로 달려갔다. 혼자 그네를 타며 누군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때 하늘을 가르는 비행기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나는 비행기가 구름 너머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고개를 젖히고 넋을 놓은 채 쳐다보았다. 그 거대한 소리가 잠잠해질 때쯤, 내 또래로 보이는 한 아이가 놀이터로 들어왔다.
마음은 벌써 같이 놀 생각에 신났지만, 처음 보는 아이여서 조심스러웠다. 그네를 더 힘껏 탔다. 그랬더니 역시나 내 옆 그네로 슬며시 다가와 앉았다. 하늘과 땅을 자유롭게 넘나들다가 은근슬쩍 나는 활짝 웃으며 먼저 말을 건넸다.
“안녕! 너는 몇 살이야?”
그 친구는 쑥스럽다는 듯 작게 대답했다.
“나는 11살.”
“나도 11살인데! 우리 친구다!
내가 마음먹고 먼저 다가갔을 때 웃지 않았던 친구는 없었다. 그렇게 나랑 같이 놀 친구와 신나게 뛰어다녔다. 한참을 놀던 친구는 집에 잠시 갔다 온다며 놀이터 밖을 나갔다.
다시 홀로 그네에 앉아 있으니 배가 고파졌다. 놀이터 입구 슈퍼마켓으로 달려갔다. 뭘 사 먹을까 고민하다가 ‘미쯔’가 눈에 들어왔다. 작고 네모난 그 달달구리 과자를 참 좋아했다. 내 주머니에는 천 원이 있었고, 미쯔 한 봉지는 300원이었다.
‘친구가 다시 오려나?’
두 개를 살까 고민했지만, 집에 간 친구가 다시 돌아올 확률은 늘 반반이었다. 에잇, 하나만 사자. 천 원을 내밀어 오백 원 하나, 백 원 두 개를 거슬러 받았다. 미쯔 한 봉지를 들고 신나게 다시 놀이터로 향했다.
그런데, 친구가 다시 돌아와 있었다. 슈퍼마켓을 다녀온 그 짧은 시간이었지만 저 멀리서 내게 뛰어오는 친구가 너무나 반가웠다. 날 보더니 환하게 웃으며 다가오는 그 아이 앞에서 나는 신이 나 미쯔를 흔들며 씩 웃었다. 친구에게 세수할 때처럼 두 손을 모아 움푹하게 만들라고 했다. 그러고는 봉지를 뜯어 친구의 손바닥에 어림잡아 절반쯤 들이부었다.
친구가 제 손바닥에 쌓인 미쯔를 보더니 내 눈을 바라보았다.
“이렇게나 많이 줘도 괜찮아?”
그 아이의 얼굴은 뭐랄까, 내 생일날 몰래 편지와 선물을 써준 친구를 마주했을 때 내가 지은 표정과 닮아 있었다.
놀라움과 감동받은 마음 그 사이.
그 깊은 눈동자를 보는 순간, 어떤 바늘이 내 몸을 찌르기 시작했다. 소리를 지를 만큼은 아니었지만, 따끔따끔 운동화에 모래가 들어간 것처럼 불편하게 나를 괴롭혔다.
내 주머니에는 여전히도 달랑달랑 동전이 남아있었다.
나의 '겨우 절반'이 누군가에겐 '이만큼이나'가 될 수 있다는 그 가짐의 상대성.
그날 내가 깨닫게 된 그 지점이 나를 오래오래 아프게 했다.
24년이 흐른 지금, 그 친구가 남자아이였는지 여자아이였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맑았던 순수한 눈동자만은 여전히 선명하다.
나는 여전히 부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