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 엄마를 위한 8,900원짜리 생일선물

엄마, 내가 만들어준 팔찌 어디 있어?

by 사소한수집가
아들 학교 앞 문방구. 여전히 꼬마 숙녀들의 마음을 훔치는 명당자리




​“엄마, 내가 그때 공예 시간에 만들어준 팔찌 어디 있어?”



​하원 길, 아들의 뜬금없는 질문에 동공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분명 팔찌를 채워주던 그날, 나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석이라도 받은 양 오버액션을 다 하며 감동받았노라 고백했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노랑, 분홍, 하늘색... 알록달록한 플라스틱 비즈는 내 손목에 너무 작았고, 밖에 차고 다니기에는 난처했다. 아이가 잠든 사이 슬쩍 풀러 어딘가에 두었는데...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원망 가득한 아들의 눈빛을 마주하는 순간,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큰일 났다. 이거 못 찾으면 며칠을 볶일 텐데.’


​아들의 서슬 퍼런 추궁을 피해 집 안 구석구석을 뒤지다 보니, 문득 30년 전 내가 우리 엄마에게 보냈던 그 서운한 눈빛이 떠올랐다. 내 인생 가장 억울했던 8,900원짜리 반지 사건 말이다.




​엄마의 생일이 오기 몇 달 전부터 나는 용돈을 모았다. 당시 우리 집은 용돈을 ‘상점 벌점’ 제도로 받았다. 예를 들어 독서 한 권에 500원, 싸우면 벌금 1,000원 하는 식이었다.


​나는 매일 이불도 개고 청소도 하고, 학교에 다녀오면 독서부터 했다. 냉장고에 붙여둔 스케치북 한 장에 내가 상점을 채울 때면 소중히 금액을 적었다. 월요일마다 엄마가 용돈을 줬는데, 용돈 받는 날을 기다리는 건 나뿐이었다.


​언니와 동생은 용돈에 아쉬울 게 없었다. 왜냐하면 엄마 방에 있는 노랑 돼지저금통 때문이었다. 언니는 틈만 나면 엄마 아빠 없을 때마다 돼지저금통을 족집게로 공략하거나, 엄지손가락에 힘을 줘서 틈을 벌려 저금통을 흔들어댔다.


​짤랑거리며 딸려 나오는 동전 소리가 내 양심을 긁는 것 같아 나는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왜 저러는 거야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치사하게 이르진 않았다. 그저 동생인 내가 언니를 한심하게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내 마음속 선물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동네에서 가장 큰 문구점 계산대 옆, 줄지어 서 있던 반짝이는 반지. 가격은 무려 8,900원. 내게는 전 재산이나 다름없었다. 생일 전날, 나는 소중히 모은 돈을 품고 문구점으로 달려갔다. 수많은 반지 중 가장 다이아몬드처럼 빛나는 녀석을 골랐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엄마의 반지 사이즈를 몰랐던 것이다. 나는 내 손가락에 끼워보고, 내려놨다가, 다시 끼워보기를 얼마나 했나 모르겠다. 한참을 망설인 끝에 결국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작으면 안 들어가지만, 크면 어떻게든 되겠지!’


나는 가장 큰 사이즈를 골라 떨리는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 아침, 콧노래를 부르며 거실로 나갔을 때였다. 주방에서 엄마의 톤 높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 이걸 정말 네가 다 했어?”


불안한 예감에 달려가 보니, 엄마가 언니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듯 쳐다보고 있었다. 언니가 새벽에 일어나 엄마를 위해 고기까지 듬뿍 넣은 미역국을 끓인 것이다. 엄마 눈에는 오직 언니뿐이었다.


​‘흥! 돼지저금통에서 뽑은 돈으로 산 건데.’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짜잔, 프러포즈하듯 반지 케이스를 건넸다. 하지만 엄마의 반응은 내 예상과 완전히 빗나갔다. 엄마는 당황하며 반지를 끼워보더니 “어떡하지? 엄마 손에 크네” 하셨다. 반지는 엄마의 엄지손가락에서도 훌러덩 빠져버렸다. 내가 몇 달간 기대했던 장면은 이게 아니었다. 나는 패닉에 빠졌다.


​시간이 흘러 교복을 입을 때쯤, 엄마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우리가 준 생일 선물 중 어떤 게 제일 감동이었냐고. 엄마는 망설임 없이 언니가 미역국을 끓여준 날을 꼽았다. 단단히 뿔이 난 내가 “내가 준 반지는 기억해?” 하니 그제야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며 말을 흐리셨다.



아들의 팔찌를 찾기 위해 서랍장 뒤를 뒤지다 보니 쿡 하고 웃음이 났다. 30년 전 엄마의 그 당황스러운 표정이 이제야 이해가 갔기 때문이다.


​엄마에게 그 반지는 지금 내 손에 든 이 작고 알록달록한 팔찌 같은 존재였겠구나. 끼고 다닐 수도, 그렇다고 버릴 수도 없는 애틋하고도 난처한 사랑의 덩어리. 정직하게 모은 내 8,900원보다, 엄마 눈엔 고사리 같은 손으로 만들어준 언니의 미역국이 엄마에겐 더 절실한 정성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이제야 엄마가 되어 깨닫는다.



​“찾았다! 여기 있네!”


​침대 밑에서 먼지 쌓인 팔찌를 건져 올려 팔목에 찼다. 내일은 엄마한테 전화해서 괴롭혀야겠다.


“엄마, 근데 내가 옛날에 생일 선물로 줬던 반지 왜 간직하지 않았어?”


​나는 엄마의 마음을 알게 됐지만, 난 여전히 엄마의 딸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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