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창피했던 모범생 누나의 고백
새 학기, 3학년이 되어 새로운 반에 올라간 아들이 자기 전 내게 말했다.
“엄마, 저는 쉬는 시간에 혼자 있어요. 친구가 없어요. 저 불쌍하죠?”
그 한마디에 나는 밤새 잠을 설쳤다. 매 학기 시작 때마다 친구 관계로 힘들어하는 아이라는 걸, 딱 두 달 뒤면 언제 그랬냐는 듯 누구보다 개구쟁이로 지낼 아이라는 걸 뻔히 아는데도 나는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나도 엄마가 되어 아이의 일에는 온 마음이 갈기갈기 흔들리는데, 우리 엄마는 그날의 내 동생을 보며 얼마나 마음이 힘들었을까.
문득 24년 전, 엄마가 내게 건넸던 '반칙' 같은 부탁이 떠올랐다.
어떤 날, 엄마는 식탁에 앉아 한숨을 쉬셨다. 나는 늘 엄마 곁을 맴돌며 온종일 엄마와 붙어있는 아이였다. 집에 있을 때도 내 엉덩이는 늘 엄마 몸 어딘가에 닿아 있길 원했고, 엄마손을 조물딱 조물딱 만지면서 엄마와 이야기하는 게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엄마가 거실에서 통화를 하면 몰래 안방으로 들어가 수화기를 슬쩍 들어 올렸다. 엄마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왜 한숨을 쉬는지 모든 신경이 엄마에게 가 있었기에 그 이유도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엄마의 한숨 섞인 시선 끝에는 작은방에서 혼자 상상 놀이를 즐기는, 나보다 두 살 어린 남동생이 있었다.
그렇게 엄마가 한숨을 쉰 지 얼마나 지났을까. 엄마는 큰 결심을 한 듯 나를 식탁으로 불렀다. 언니는 친구들과 노느라 늘 집에 없었고, 동생은 방에서 혼자 노니 결국 엄마 곁엔 나뿐이었다. 엄마의 입에서 나올 소리가 어쩐지 불안했다. 이미 엄마의 눈동자엔 ‘제발, 부탁해 예진아’라는 간절함이 가득했다. 마치 칠판에 이름을 적힌 아이가 내게 지워달라고 보내는 눈빛 같았다.
"예진아, 동생이랑 방과 후 같이 하면 어떨까? 네가 좋아하는 미술 시간 말이야. 예진이가 미술도 잘하니까 동생 좀 봐주면 좋을 것 같은데, 어때?"
머릿속에 삐뽀삐뽀 빨간불이 켜졌다. 아무도 동생을 데려오지 않는데 나만 유별난 애가 되는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렸다. 나는 애써 침착하게 왜 엄마 말을 들어줄 수 없는지 힐끔거리며 대답했다.
"동생은 더 일찍 끝나서 나랑 시간이 안 맞는데? 동생은 점심도 못 먹잖아..."
그러자 엄마의 눈이 반짝였다. 강요는 아니였다. 부탁이였다. 하지만 그 눈빛은 내게 ‘반칙’이었다. 나는 한 번도 엄마 말을 안 들은 적이 없는 착한 딸이었으니까. 엄마의 간절한 마음이 내게도 고스란히 전달되어, 나는 싫었어도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생은 도시락통을 들고 점심시간이면 우리 반을 찾아왔다. 청남방에 체크 멜빵바지를 입은 토실토실한 동생. 엄마는 왜 안 그래도 통통한 아이에게 체크무늬를 입혀 더 뚱뚱하게 보이게 했을까. 완벽한 반장인 나에게 동생은 창피했다.
동생은 우리 반 앞문에서 들어오지도 못하고 쭈뼛쭈뼛 서 있었다. "여기가 누나 반이야. 들어와." 내 말에 동생은 부끄러운 듯 베실베실 웃으면서도 놀이공원에 온 아이처럼 신기한 듯 주위를 둘러봤다. 집에서는 나를 본체만체하며 자기 방으로 휙 들어가 버리던 녀석이었다. 오로지 자기 자신 말고는 세상에 관심이 없는 줄 알았는데, 동생이 내 친구들의 관심을 즐기고 있다는 사실은 꽤 충격이었다.
놀랐다. 걱정하는 엄마에게 동생은 혼자 노는걸 좋아하잖아. 동생이 친구들을 안 좋아하는거야. 라고 말한적 있었는데..실은 동생도 누군가의 관심을 이토록 좋아하는 아이였다니. 동생의 미소에 지금껏 없던 걱정이 생겼다.
점심시간, 동생이 조심스레 도시락 지퍼를 열었다. 그 순간 고소한 돈가스 튀김 냄새가 교실 안 급식 냄새를 단숨에 뒤덮었다. 알록달록한 달걀말이 한쪽에 뿌려진 케첩까지, 누가 봐도 예쁘고 맛있는 도시락이었다. 개구쟁이 남자애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었다.
"와, 도시락 뭐야? 나도 한 입만 먹어보자, 제발!"
숫기 없던 동생은 형들의 반응이 재밌는지 씩 미소를 지었다. 하루하루 갈수록 동생의 도시락은 우리 반의 인기 메뉴가 되었고, 나는 처음엔 "내 동생 먹어야 한다고!" 하며 애들을 쫓아내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동생이 내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누나, 형아들도 좀 줘도 돼?"
누가 봐도 나눠주고 싶어 안달 난 눈치였다. 엄마의 도시락 덕분에 동생의 기가 잔뜩 살았다. 살짝 올라간 녀석의 어깨를 보는데 그날따라 동생이 참 귀엽게 보였다. 원래 우리 집에서는 돼지라고 불렀는데 말이다. 동생은 방과 후 미술 시간에도 내 옆에 딱 붙어 나를 졸졸 따라다녔다.
통통하고 숫기 없던 내 동생. 그 시절, 내 교실 문을 쭈뼛거리며 열던 그 녀석이 훗날 누나에게 월급을 주는 날이 올 줄을 내가 감히 상상이나 했을까. 내게는 마냥 귀찮고 챙겨야만 했던 '작은 짐' 같았던 아이가, 이제는 한 가정을 일구어 세 배나 큰 기쁨을 키워내고 있다.
가끔 내 비위를 거스르는 동생에게 생색 좀 내보고 싶어 시작한 글이었다. 하지만 글을 써 내려갈수록 나는 엄마의 아침 속으로 깊이 빠져들었다. 엄마는 도대체 언제 일어나 그 도시락을 그토록 예쁘게 쌀 수 있었을까. 내게 동생을 부탁하기까지, 선생님께 고개를 숙여 사정하기까지, 아들의 외로움을 눈치채고 밤잠 설쳤을 그 시간들까지.
이제야 알 것 같다. 자식을 향해 꾹꾹 눌러 담았던 그 마음이 얼마나 크고 무거웠는지. 나 또한 엄마가 되어 아들의 한마디에 밤을 지새우고 있지만, 결국 엄마는 또 한 번, 엄마가 된 나를 이겼다.
짜샤, 우린, 엄마한테 정말 잘해야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