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그때 왜 자꾸 같은 애니메이션만 보셨나요
유독 지치는 날, 남편과 아이가 모두 잠든 새벽이면 나는 이불을 조심히 걷어내고 발뒤꿈치를 들어 살금살금 문을 닫고 거실로 나온다. 리모컨을 눌러 볼륨을 '1'로 맞추고, 애니메이션을 켠다. 쉬이익 바람 소리와 끼익-끼익- 쇠붙이 덩어리가 움직이는 소리, 그 뒤로 회색빛 안개가 서서히 걷히며 보이는 연두색 들판과 오두막집.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오면 매번 같은 지점에서 전율이 일고, 나는 오늘도 새로운 세계에 초대받는다.
적막하고 고요한 차가운 공기 속에서 화면을 가득 채운 아름다운 색채를 멍하니 바라본다. 그 시간 속에서 나는 비로소 숨을 고른다. 화면 속 하울과 소피가 하늘을 걷고, 다시 한번 들려오는 아름답고 아련한 음율이 나를 20여 년 전의 교실로 데려갔다.
초등학교 4학년, 우리 담임 선생님은 아침 자습 시간이나 점심시간이면 어김없이 애니메이션을 틀어주셨다. 1년 내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보여주셨는데, 질릴 법도 하건만 나는 매번 좋았다. 하지만 정작 내 시선을 끈 건 화면 속 주인공들이 아니라, 교탁 책상에 앉아서 보는 선생님 모습이었다.
선생님은 다른 선생님들처럼 애니메이션을 틀어주고 교무실로 향하는 대신, 모니터 앞에 턱을 괴고 앉아 익숙한 장면을 응시하곤 하셨다. 너무 재밌어서 뚫어지게 집중하는 눈빛은 아니었다. 그저 멍하니, 졸음과 고요 사이 어딘가에 머무르는 신비한 표정. 11살의 내 눈에는 그 모습이 무척 신기했다. 좋아하는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어디론가 다녀온 듯한 그 표정 말이다.
여자친구들에게 인기 최고였던 우리반 선생님은 긴 생머리에 꽃향기가 솔솔 풍겼다. 쉬는 시간마다 다여섯명의 여자친구들이 교탁으로 달려가 '선생님 미용실'을 열었다. 그 중 나도 한명이었다. 너나 할 것 없이 선생님의 긴 머리를 사이좋게 땋고 예쁜 끈으로 묶어주었다. 뒤엉킨 머리를 손마디마디 빗 삼아 빗어주며 재잘거리는 우리 틈에서, 선생님은 단 한 번도 "그만해라" 하신 적이 없었다. 쓰러지듯 고개 숙여 엎드려 계시면서도, 그 소란스러운 애정을 온몸으로 받아내셨다.
어렸을 때 신비롭게만 보이던 선생님의 표정을 하고 있는 나를 보며, 선생님의 하루가 얼마나 지쳤을지 그 고단함이 느껴졌다. 온몸이 방전된 듯한 체력 속에서도 아이들의 손길을 제지하지 않은 선생님의 마음은 얼마나 큰 사랑이었는지
힘들고 지칠 때면, 왜 새벽에 홀로 앉아 멍하니 애니메이션을 틀어놓는지 고민해 본 적이 있다. 알고 보니 그것은 계산적인 세상 속에서도 순수함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나만의 작은 의식, 아니 나를 지키기 위한 평화로운 치유 방식이었다. 도대체 언제부터 이런 방식을 가지게 된 건가 생각해보니, 그 시절 선생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선생님의 치유 방식을 나도 모르게 닮아온 것이다.
지금의 나는 그 시절 선생님보다 나이가 많다. 손끝에 힘이 다 빠져나간 듯한 새벽, 아이 한 명이 나를 부르는 소리에도 견디기 힘들 때가 있는데, 그때 우리에게 둘러싸여 긴 머리를 내줬던 선생님의 다정함은 당체 어디서 나온 건지 존경스럽다. 그 따뜻한 사랑을 충만하게 주셨던 선생님을 나도 닮고 싶었나 보다.
선생님, 여전히 애니메이션을 좋아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