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매] 그날, 선생님은 왜 때리지 않았던걸까?

평판에 목숨 거는 이유, 그건 언젠가 나를 구할 비상구일지 모른다.

by 사소한수집가
그날, 아무도 맞지 않았다.




​우리 반 담임 선생님은 정말 예뻤다. 여리여리하고 큰 키에 긴 생머리, 웃음이 예쁜 선생님이셨다. 그런 선생님의 반전은 일명 ‘사랑의 매’를 드는 순간, 180도 달라졌다. 우리 반 개구쟁이들도 선생님께서 정색할 때만큼은 숨을 죽였다.

나무로 된 긴 막대기, 잡는 부분은 두껍고 맞는 부분은 점차 얇아지는 매였다. 숙제를 안 했거나 교과서를 가져오지 않았을 때, 선생님은 아침에 교실에 들어설 때의 미소를 거두고 무표정한 얼굴로 매를 드셨다.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둔탁한 소리가 아이들의 작은 손바닥을 사정없이 때렸다.


​선생님께서 숙제를 하지 않은 친구들을 일어서라고 할 때면, 나도 손바닥에 땀이 고이고 긴장되었다. 일어선 친구들은 가까운 순서대로 맞았다. 친구가 손을 내밀며 선생님의 눈치를 살피는 모습, 그리고 둔탁한 소리와 함께 친구의 눈이 찡긋 감기고 고통에 입이 벌어지는 모습. 그 잇새로 새어 나온 신음소리는 그저 바라보는 내게도 고통스러웠다.


​2학기가 끝나갈 무렵이 되자, 선생님께 매를 맞지 않은 친구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우리 반에서 매 안 맞아 본 건 반장뿐이래’라는 말이 떠돌았다.

그 말은 무서웠다. 절대로 어겨서는 안 될 엄격한 법처럼 다가와 나를 압박했다. 나 또한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더 강하게 몰아세웠다. 사실 나는 집에서 물건을 흘리고 다니기 일쑤인 덜렁대는 아이였지만, 학교 책상 앞에만 앉으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알림장을 보고 또 보고, 가방 속 준비물을 두 번, 세 번 확인했다. ‘한 번도 틀리지 않는 아이’라는 틀 안에 나를 가두기 위해 매일 가슴을 졸이며 애를 썼던 것이다.


​어느 날도 마찬가지로 선생님께서 숙제를 안 한 친구들을 자리에 서라고 하셨다. 칠판에 적힌 숙제 페이지를 확인하는 그 순간, 나는 내 공책에 숙제가 되어있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창밖으로는 열린 창문을 통해 운동장에서 들려오는 호루라기 소리와 아이들의 피구 하는 함성이 뒤섞여 들어오고 있었다. 분명 꽤 더운 날이었다. 그러나 숙제를 안 했다는 사실을 직면한 찰나, 거짓말처럼 모든 소음이 사라졌다.


​교실 안은 순식간에 진공 상태가 되었다. 오직 내 눈동자가 페이지 위를 움직이는 소리만 들리는 듯했다. 교과서를 넘기는 손끝에는 어느새 축축한 땀이 묻어났고, 입고 있던 청바지는 살갗을 조이며 눅눅하게 달라붙었다. 나는 믿을 수 없어서, 내 페이지를 여러 번 확인하며 뒷장도 넘겨봤지만 무슨 일에선지 흔적 없이 깨끗했다.

내가 드르륵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그 짧은 시간은 다른 친구들과는 다른 시간의 흐름 속에 있었다. 째깍, 째깍. 초침 소리가 고막을 때렸다. 반에서 과반수 이상 친구들이 일어서 있었다. 이렇게 많은 친구들이 일어선건 처음이었다. 선생님은 일어선 친구들 모두를 찬찬히 훑으셨다. 나도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다.


​그 찰나의 순간, 지금도 잊히지 않는 무언가가 느껴졌다. 선생님께서는 소곤거리는 친구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신 뒤, 곧바로 칠판에 분필을 드시고는 모두 앉으라고 하셨다. 그리고는 어떠한 설명도 없이 수업을 이어가셨다. 수업은 시작됐고, 그 시간 내가 무엇을 배웠는지 도저히 기억나지 않았다. 의자에 앉아 후들거리던 다리가 의자 다릿발에 맥없이 기대어 있던 그 감각만이 선명했다.



선생님께서 왜 그날 원칙을 접고 매를 내려놓으셨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주진 않으셨다. 다만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던 찰나의 공기, 그리고 교실을 가득 메운 '일어선 아이들'의 숫자를 떠올리면 이제야 조금은 짐작이 간다.
​반장인 나조차 숙제를 해오지 못할 만큼, 그날 우리 반 아이들 모두는 지쳤었을지 모른다. 선생님은 아마 매를 들기 전, 먼저 우리를 헤아리셨던 게 아닐까. 어쩌면 그 침묵은 '너희가 평소보다 많이 지쳤구나'라는 무언의 이해였을 것이다.

지금 나도 한 아이의 부모가 되어 숙제를 거르고 잠든 아이의 얼굴을 본다. 아이의 얼굴을 지그시 보고는 '오늘 많이 피곤했나 보다'라며 이불을 덮어주곤 한다. 하지만 그런 이해가 가능한 것은, 아이가 평소 보여주었던 성실함이라는 신뢰가 저변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어릴 적 나는 선생님이 나를 '봐주었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 다시 짚어보니, 그날 나를 구한 것은 나였다. 내가 평소에 성실히 쌓아온 신뢰가 없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수도 있었을 것도 같다.

​평판이란 타인의 눈치를 보는 허례허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언젠가 내가 무너지는 순간, 나를 변호해 줄 유일한 비상구였다. 그날 선생님은 나의 '결과물'이 아닌, 내가 그동안 걸어온 '과정'을 보셨던 것일지도 모른다. 성실함이란 그렇게, 때로는 가장 예상치 못한 순간에 우리를 구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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