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판지우개] 선생님이 오기 직전, 나는 이름을 지웠다

미움받고 싶지 않아요.

by 사소한수집가
관계의 생존법





초등학교 4학년, 그 시절 반장의 권력은 칠판 앞에 나와 분필을 잡는 데 있었다. 선생님께서 용무로 자리를 비우시면 반장을 앞에 세웠다. 떠드는 사람의 이름을 적어야 했다. 반 친구들은 내가 분필을 들고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면 나의 시선에 입을 꽉 다물었다. 친구들이 내 눈치를 살피는 게 은근한 반장의 즐거움이었다.


​그중에서도 몰래 떠들려고 하는 친구가 있으면, 그 친구에게 조용히 하라는 눈빛을 강하게 보내고 이름을 적을 거라는 경고를 주었다. 그러면 친구는 손으로 비는 듯한 행위를 했고, 나는 어깨가 으쓱거리는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 그래도 칠판에 이름 하나 적지 않으면 친구들의 눈치 보는 힘이 약해져서, 어느 소곤소곤 소리부터 시작해 나비의 날갯짓이 태풍이 되는 것처럼 눈 깜짝하면 교실은 북적북적 시끄러워졌다.


​그럴 땐 방법이 없다. 마지막에 가장 큰 목소리가 확인된 친구 이름 석 자를 칠판에 또박또박 쓰면, 교실은 언제 그랬냐는 듯 한순간에 물을 적신 것처럼 조용해졌다.


​복도에서 또박또박 구두 소리가 들리면 나는 친구들을 싹 한번 둘러보고는, 칠판지우개로 있는 힘껏 이름을 깨끗하게 지웠다. 이름이 적혔던 친구들의 안심 어린 눈빛, 고맙다는 눈빛을 받고는 선생님이 들어오셨을 때 "떠든 친구 없었어요."라며 내 할 일을 마치고 자리로 들어갔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을까. 한 번은 선생님께서 쉬는 시간에 교무실로 오라고 말씀하셨다. 선생님은 반장으로서 힘든 부분은 없는지 물어보시고는, 내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물으셨다.



​"예진아, 왜 친구들 이름을 다 지우는 거야?"



​나는 선생님의 눈을 피하고 한참 뜸을 들이다 아주 작게 말했다.



"저는 친구들한테 미움받고 싶지 않아요."



​선생님께서는 "그랬구나" 한마디 하시고는 웃어주셨다. 그 이후부터 선생님께서는 자리를 비우실 때 부반장을 불러 칠판에 이름을 적으라고 하셨다. 부반장인 친구는 친구들의 이름을 쓰는 데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선생님이 오실 때까지 이름은 지워지지 않았고, 선생님은 칠판에 적힌 이름을 호명하며 손바닥에 매를 드셨다.

선생님의 매 치는 소리에 내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맞은 친구들은 부반장을 살짝 흘기곤 했는데, 부반장은 내 말을 잘 들으라는 듯 으쓱댔다. 나는 나의 권력을 포기하는 편이 차라리 다행스러웠다. 맞은 친구들의 원망 어린 눈빛을 보는 건, 내가 준비물을 챙기지 못한 것보다 더 괴로운 일일 거라는 걸 내 스스로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부터 누군가에게 미움을 사는 일이 죽기보다 싫었습니다. 그 미움이 언젠가 반드시 어떤 형태로든 되돌아온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칠판에 적힌 이름을 지워주는 나의 '비밀스러운 배려'는 단순한 착함이 아니었습니다. 그건 관계라는 판 위에서 기꺼이 몇 수를 내다보는 쪽이었지요. 이름이 지워진 친구들은 급식 시간에 소시지 반찬을 슬쩍 내 식판에 더 얹어주기도 했고, 무엇보다 내 이름 뒤에 친구들의 단단한 신뢰가 쌓이는 것을 온몸의 주파수로 느낄 수 있었으니까요.

​누군가는 저를 다정하고 착한 사람이라 말하지만, 글쎄요. 사실 저는 현재의 미움을 감당할 용기가 부족한 사람일 뿐입니다. 미래의 적을 만들지 않으려 부단히 애쓰는 것, 그것은 철저히 나를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어릴 적 칠판을 지우던 그 아이는 지금도 제 안에 그대로 살고 있습니다. 미움이라는 감정이 얼마나 강력하고 무서운 것인지, 겪어보지 않아도 그 무게를 일찍이 알아버렸던 아이. 어쩌면 제가 지금까지 크게 미움받지 않고 살아온 건, 그저 저만의 아주 치밀하고도 안전한 생존 방법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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