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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성이 취미 May 05. 2021

외동이 외동아들을 키웁니다

고작 한 명일뿐인데, 외동을 키우는 엄마의 마음자세

저에게는 올해 6살이 된

저를 꼭 닮은 아들이 하나 있습니다.


더 낳을 생각은 없나고요?

아이에게 친구를 만들어줘야 하지 않냐고요?

사실 작년에는 마음이 조금 기울긴 했습니다.


최근에는 친구들의 둘째 소식이 더 자주 들려옵니다.  

낳아보니 둘째는 그냥 사랑이라며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둘째요...?

흠, 내 그릇에는 하나도 벅차고 넘친다는 생각.

두 번을 세 번을 생각해 봐도 결국은 단념을 하고 맙니다.


하지만 확실한 한 가지는 하나보다는 둘이, 둘보다는 셋이 좋을 것 같긴 합니다.

(형제가 많은 집에서 자란 분들은 좀 다른 생각일까요?)

눈을 뜨면서부터 엄마를 찾아대고 심심해를 달고 사는 아들을 보니 친구 같은 형제의 필요성은 부정하고 싶어도 결코 부정이 되지 않는 현실입니다.


사회생활이 시작되는 유치원을 들어가기도 전에 이미 가정에서 본능적으로 체득화된 사회성이라든가,

으르렁 하루가 멀다 하고 싸워대지만 중요한 순간에는 변신로봇처럼 제자리를 찾아 한 몸이 되는 결속력.

혼자인 아이는 경험하지 못할 세계입니다.


이렇게나 잘 알면서도 왜 외동이냐 물으신다면 육아는 너무나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6년이 지난 지금도 저의 육아는 시행착오의 연속입니다.

고작 6살인데 선택과 결정의 순간은 왜 이리 많으며, 내가 하는 행동과 말을 그대로 따라 해 버리는 아이 앞에서 부모라는 내 자리가 참으로 부담스럽고, 조심스럽고 또 무겁습니다.


아직 나라는 존재는 무르기 짝이 없어  갈팡질팡~ 어려움에 직면할 때면 신의 영역에서 누군가 딱 부러지게 정답은 3번! 이렇게 알려줬으면 좋겠는데... 이런 어리바리한 내가 아이의 세상을 열어줘야 한다니, 게다가 부담스럽기 짝이 없게 아이의 세상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주는 엄마가 나라니...(뒷목을 잡고 싶은 심정입니다.)


굳이 그렇게까지 빡빡하게 생각할 필요 있냐는 누군가의 조언처럼 육아에서 부담감을 애써 지워버린다 해도 일상에서 느닷없이 튀어나오는 '아차!'의 순간은 기운을 쏙 빼버립니다.  


뭘 이렇게 잊고 사는 게 많은지.

반대로 말하면, 뭘 이렇게 기억하고 챙겨야 할 것들이 많은가요? 하필 까맣게 잊었던 것들은 왜 지하철 안에서만 떠오르는지! ( 아놔 이를 어째) 허겁지겁 전화를 걸어 도움과 양해를 구하는 내가 원망스러워집니다.  


수두룩하게 놓치고 지나쳐버린 것들 때문에 드는 자괴감과 아이에 대한 미안함. 유치원이나 시터 이모님에게 연락이라도 올 때면 바짝 긴장이 됩니다.

 '어디라도 다친 건가?' , ' 준비물을 안 챙겨줬던가? '

 몸이 회사에 묶여 있으니 혹시 모를 상황에 즉각 대응하지 못할까 덜컥 겁부터 납니다.  




저는 엄마를 닮았습니다.

 

엄마는 제가 유치원에 갈 즈음에 일을 시작했습니다.

어려서 기억하는 엄마는 늘 부지런했고 성실했고 쉼 없이 움직였습니다. 체력이 좋아 다행이지 지금껏 크게 아프지 않고 일정을 소화해 냈던 엄마는 새삼스레 참 대단합니다. 지금 생각해도 내 몸이 두 개라도 엄마만큼 해낼 자신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딸에게는 짜증 한번 내지 않는 다정한 엄마, 참 좋은 엄마였습니다.

힘들 만도 한데 유독 티를 내지 않고 매사 열심히인 엄마가 안쓰러울 때도 많았습니다.


얌전한 딸아이 하나 키우는 것.

그 어린 딸의 눈에는 엄마의 삶이 매우 버거웠는데, 아이가 둘이었다면 엄마는 어땠까요? 그랬다면 오히려 전업을 선택했었을까요?

그랬다 해도 형편상 엄마는 일을 해야 했고 아이가 둘이었다면 엄마의 얼마 되지 않은 여유시간을 다시 반으로 쪼개 썼을 테지요. 그래서 동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나 봅니다.


그런 시간들을 보내며 엄마는 위태롭게 커리어를 이어왔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그때의 그 일을 하고 계십니다. 엄마의 노력 덕인지 다행히도 집안은 어느 정도 여유를 찾았습니다. 저도 성인이 되어 가정을 꾸렸고 사회에서 내 밥벌이 정도는 하고 살만큼 제 몫을 하는 중입니다.


결과적으로 엄마의 옛날의 그 선택은 성공입니다.


그런데 이런 엄마를 보며 자란 저는 솔직히 아이를 둘이나 키울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많지는 않지만 정기적인 수입을 포기할 자신도 없으며, 둘을 낳고 회사를 다닐 엄두는 더더욱 나지 않으며 무엇보다 주부의 제 모습이 상상이 가질 않습니다. 본 적이 없는 학습되지 않은 그림이기 때문일까요?

힘들다, 지친다, 그만하고 싶다 하면서도 선뜻 선택이 어렵습니다.

   

저는 늘 보아오던 모습대로 엄마의 모습을 그대로 살아가고 있는 셈입니다. 이렇게 엄마를 따라 산다면 지금은 비록 힘들어도 엄마처럼 좋은 선택이었음을 증명할 날이 올 거라는 은근한 기대도 호기롭게 품고 있습니다.




다른 집과 한눈에 비교되는 엄마라는 역할의 부재는 일찌감치 단념했습니다.

회사를 그만두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았던 저는 투정을 부려봐야 아빠와 엄마만 곤란해질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되려 엄마의 마음과 고단함을 헤아려주고 싶었습니다. 집안일을 자진해서 하기도 했고 많은 일들을 도움 없이 혼자 하는 법을 연습했습니다.  엄마는 바쁘니까-라는 이유로 엄마에게 털어놓았을 법한 고민들도 자체적으로 생략해 버렸습니다. 자발적으로 앞장서서 자립심을 부단히 키워나갔던 것 같습니다.


심심했고, 외로웠고,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도 종종 있었지만 별다른 도리가 없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별것이 아닌 일들이 되는 게 다반사라 견뎌온 제 자신에게 기특함을 느낀 적도 있습니다. 조용하고 텅 빈 집은 분명 별로였지만 그 어색한 고요함이 오히려 편해졌을 때는 저도 제법 나이를 먹고 난 후였습니다.


엄마는 아직도 누군가를 만나면 저를 두고 '착한 딸'이라고 소개합니다. 사윗감과 만나는 첫자리에서도 딸 때문에 속 섞어본 적이 없을 만큼 마음이 착하고 속이 깊은 아이라는 말로 좋은 신부임을 돌려 표현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그 말은 제가 그다지 좋아하는 말은 아닙니다.

'철'이라는 엄마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 철이 들려면 어려서부터 크고 작은 상처들과 단련 과정이 분명 있었을 테고 혼자서 속이 참 시끄러웠을 텐데... 어린 시절의 고단했던 마음을 들키는 것 같아 자존심이 상하고 부끄러 칭찬을 받는 것 같으면서도 고개가 떨구어집니다.


엄마는 형제가 많은 집에서 태어나고 자라 아마도 나의 마음을 잘 모르는 듯합니다.

엄마의 친정은 요즘 말로 핵인싸. 그 자체입니다. 외할머니는 동네에서 제일 큰 슈퍼를 운영했고 그 앞 널찍한 평상은 동네 아이들의 아지트였습니다. 주변에 사람 치이는 건 일도 아니었을 엄마의 유년시절은 안 봐도 왁자지껄 소리가 들려오는 듯합니다.

엄마는 언니 오빠 동생들과 어우러져 굳이 친구가 필요하지도 않았고, 부모는 그저 생계를 유지하는 소득원의 역할을 다 하면 그뿐,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면 충분한 그런 가정을 경험했습니다.


이제 와서 나의 홀로서기에 소모된 애씀을 알아주기 바라며 때가 지나버린 응석에 대한 보상을 바라는 건 아닙니다. 엄마가 내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할지라도 당시 그럴만한 경제적 이유가 있었을 테니 엄마를 원망하는 것도 결코 아닙니다.


사이에 간극이 있다면 엄마와 나.

둘의 가정환경이 극명하게 달랐을 뿐입니다.

 



지금의 저는 엄마와 아주 비슷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모든 부재는 상대적입니다.  

어떤 자식이라고 부모에 대한 아쉬움이 없을까요?

그런 이유 때문인지 외동아이를 키우는 저는 아들에게서도 제 모습을 자주 발견합니다.  


"나는 이모가 데리러 와서 너희 집에 놀러 갈 수 없어"

"엄마 출근하니깐 저는 유치원으로 출근해야 해요"


알레르기로 난리가 난 아침. 고민 끝에 결국 출근을 하고 유치원을 보냈던 날, 조심스럽게 전화를 걸어 물으니 선생님은 '출근'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아이가 너무 귀여웠다며 아이의 말을 그대로 전해주었습니다.    

 

우리 아들은 상황 파악을 너무도 잘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그럴 의도는 전혀 없었겠지만 전화 말미에는 끝내 눈물이 왈칵 쏟아질 만큼 마음이 아팠습니다.   

우리 아들이 나의 어린 시절 속에 있는 것 같았습니다.


예민함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고 싶습니다. 혹시 내가 아이에게 너무 바쁜 척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아이에게 마음을 열 틈조차 주지 않는 건 아닌지. 저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많은 염려들로 걱정이 앞섭니다.


솔직하게는 내 어린 시절의 감정을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습니다. 빠릿빠릿하게 눈치를 채고 어른스럽게 구는 아이를 보면 어린 시절의 저를 떠올리게 합니다. 철이 너무 빨리 들어버린 아이는 오히려 제 마음을 더 마음 아프게 합니다.




스스로 하는 건 좋지만 혼자 모든 걸 감당할 필요는 없어.

어떤 결정에서 가장 중요한 건 너야.

엄마 아빠의 가장 큰 바람은 네가 행복한 거야.

(쓰고 보니 다른 부모들과 다를 바가 없어 민망해지네요)


나의 아들은 아이다움이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아이가 되었으면 합니다. 저 또한 스스럼없이 고민을 말하고 의지할 수 있는 어렵지 않은 부모가 되고 싶습니다.  


지금은 비록 아쉬움으로 기억되는 나의 어린 시절의 한 조각들.

어쩌면 일희일비하지 않고 어려움을 슬기롭게 극복해 나갈 수 있는 지혜를 만들고, 단련된 마음은 외유내강의  나를 만들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굳이 너무 일찍부터 그것을 알게 하고 싶진 않습니다.


육아를 하며 이런저런 생각들이 많습니다.

앞만 보고 가기에도 바쁜데 저는 자꾸 뒤를 돌아 엄마와 나를 생각하게 됩니다. 엄마와 어린 시절의 나. 그리고 나의 아들. 그 가운데 제가 있습니다.

  

착한 마음, 겸손과 배려가 돋보였고 사랑과 미안함이 많았던 엄마를 배워봅니다. 나는 나대로 어른이 되어 바라본 어린 시절의 나를 교훈 삼아 새롭게 아이를 대합니다.

  

소란스럽지 않게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엄마가 되기를.

담대하지만 마음이 넉넉하고 온기 있는 아이로 자라기를.

딸과 손자를 보며 성실한 삶을 위로받는 엄마가 있기를.      


오늘도 소리 없는 힘찬 응원을 나의 아들과 엄마에게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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